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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커넥트 Aug 10. 2020

‘당신의과수원’
오성훈의 스타트업 일지 ep.2

제주에서 스타트업하고 술은 못해요

도시인을 위한 과일나무 멤버십 서비스로, 농업 분야 공유 경제 리더로 자리매김한 ‘당신의과수원’ 오성훈 대표가 털어놓는 창업과 운영에 관한 솔직담백한 경영 일기, 그 두 번째.


제주에서 스타트업을 한다는 건

바다에 둘러싸인 섬에서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도시에서 일터가 제주라고 말한다면 꽤 주목받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대학 시절, 누군가 집이 제주라고 하면 막연히 동경하는 마음을 품곤 했다. 제주에서 스타트업하는 사연이야말로 육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그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술 부르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런데 아쉽게도 난 술을 잘 못 마신다.


시드머니가 찾아왔다, 셋째 아이와 함께

스타트업을 하며 가장 기뻤던 순간을 꼽으라면 ‘엔젤투자’가 확정된 때라고 말하겠다. 현재 당신의과수원의 사업 상황은 고객과 매출이 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시기가 아니라, 데스 밸리* 구간을 지나는 시기이기에 매출보다는 지원 사업에 선정되거나, 투자가 확정되었을 때 얻는 기쁨과 만족이 크다. 2018년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처음으로 시행하는 시드머니(엔젤투자) 사업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마치 부상처럼 ‘시드베이비’가 찾아왔다. 어쩌면 시드베이비가 먼저고 시드머니가 부상인지도 모르겠다. 세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사업을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주는 상 말이다. 스타트업에 발을 들인 후, 영장받고 바로 군대에 입소하는 듯한 느낌을 강력하게 받았다. 첫째와 둘째 아이를 아내와 함께 양육했고,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제대가 머지않은(!) 듯했다. 차츰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쪼개 저녁에는 기업가들과 네트워킹을 하려고 계획했다. 그런데 웬걸, 셋째가 생겨버렸다. 다자녀 아빠에게 스타트업의 길은 녹록지 않음을 깨달았다. 저녁 술과 모임은 유보되었다. 일찍 들어가야 하므로.


*데스 밸리(Death Valley) 벤처기업이 연구·개발(R&D)에 성공한 후에도 자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맞는 도산 위기를 일컫는다. 통상 창업 후 3~5년 정도 기간을 의미한다(출처 연합인포맥스).


당신의과수원의 탄생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한밤중에 쓴 연애편지를 다음 날 아침 다시 보면 형편없이 느껴지는 것처럼, 창업자가 무릎을 탁 치며 떠올린 아이디어는 시간이 지나 객관적으로 검증하다 보면 진즉 누군가 사업화했거나, 현재 진행 중인 아이템일 가능성이 높다. 당신의과수원의 아이디어 소스인 과일나무 분양은 20년 전부터 있었다. 사과나무 분양, 배나무 분양, 귤나무 분양 등 농가에서 개별적으로 해온 분양의 역사는 깊다. 하지만 농가 혹은 지자체가 진행하는 분양 모델에는 고객 관점에서 볼 때 분명한 한계점이 있었다. 과일나무 분양은 매우 매력적인 모델이다. 하지만 농사일로 바쁜 농부가 고객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들다는 점, 분양과 수확 과정에 고객과의 접점이 없다는 점 등 여러 가지 현실의 어려움이 있었다. 이를 고객 관점에서 해결한다면 승산이 있으리라고 봤다. 과일나무 분양을 ‘소유 경험’이라는 당시 핫했던 공유 경제 개념으로 접근해, 상품과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배송하는 정기 구독 모델을 갖춘 당신의과수원은 그렇게 탄생했다.


스타트업 작명소를 꿈꾸며

브랜드의 이름은 비즈니스 성격과 주제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 좋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브랜드 네이밍은 스타트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으며, 브랜드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영향을 미친다. 다행히 나는 이름 짓고 카피 쓰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나중에 ‘스타트업 작명소’를 차리고 싶을 정도로 네이밍은 즐거움이자 생활이다. 한글로 브랜드 이름을 짓게 된 건 이전 직장이름에서 받은 영향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책의 숲 푸른숲, 브랜드스토리텔링 컴퍼니 봄바람처럼 부르기 좋고 듣기 좋은, 한글로 구성된 브랜드명이 대부분이었다. 여기에 사업의 기틀이자 주요 관심사이던 공유경제를 접목했고, ‘과수원, 공유’ 콘셉트의 브랜드 이름 당신의과수원이 탄생했다.


하고 싶은 대로 

스타트업해도 괜찮아

사업을 위해 준비한 것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제주에 처음 와서 ‘각’을 잡고 준비할 때는 지원 사업이며 대출이며 어느 것도 잘되질 않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생계를 위해 농사를 짓자고 마음먹었다. 감귤 과수원을 임대했고, 수익을 고려해 고객 관점에서 몇 가지 시도한 것이 즐겁고 재미있었다. 당시 성과를 가지고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인큐베이팅을 받았는데, 자영업 1년 차의 여러 시도와 노력 덕분에 스타트업계를 다각적으로 이해하고, 사업 확장의 계기로 삼을 수 있었음을 깨달았다. 당신의과수원 초기 자금은 개인 자본금 1000만 원과 시드머니 3000만 원을 더해 시작했다. 시드머니를 받고, 개인 사업자에서 법인으로 전환했으며, 주식회사로서의 절차를 밟아나갔다. 그리고 엔젤투자를 받은 다음, 한국벤처투자 매칭 펀드에 신청했고, 여기 선정되어 6000만 원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총 1억 원의 초기 사업 자금을 마련했다. 지역에서 스타트업을 하려면 여러 기관과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인큐베이팅(입주)과 엑셀러레이팅(투자) 단계를 거치자, 제주관광공사와 JDC 등 도내 주요 기관에서 지원받는 것에 어느 정도 노하우가 생겼다. 이후 당신의과수원은 전국 단위 확장성을 인정받았고, 한국관광공사와 농업기술실용화재단, 중소벤처기업부 등 로컬을 넘어 정부 부처 지원을 통해 멤버십과 플랫폼 고도화를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의과수원의 여름날

제주에 장마가 올 때쯤 풋귤에 살이 오른다. 귤이 너무 많이 달리면 귤나무에 무리가 가기에 적과(과일을 따는 것)를 해야 한다. 풋귤을 따면서 찰나에 지나지 않을 싱그러운 꽃향기를 맡는다. 8월과 9월 사이, 풋귤을 수확해 풋귤청을 담고 이를 회원에게 보낸다. 스타트업에 여름은 힘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하는 시기다. 무더위에 지치지 않도록 몸 관리, 멘탈 관리도 필수다. 내게 여름은 어떤지 묻는다면, 껄껄 웃으면서 대답할 것이다. 체력도 멘탈도 형편없어요. 그래도 이 여름도 잘 버텨야죠, 라고.






오성훈 2017년 도시인을 위한 귤나무 멤버십 서비스를 제공하는 ‘당신의과수원’을 창립했다. 전 세계 과수원과 사람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목표로 운영·확장하고 있다.



기획 및 발행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제작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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