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불안정하고 힘든 시절이지만, 동네 책방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로망이고 현재 진행형인 삶이다. 오늘도 전국 곳곳에서 600여 개의 동네 책방이 운영 중이다.
동네 책방은 꽤 오래전부터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니게 됐다. 독서 모임, 북 토크, 작가와의 만남 등 책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활동과 여행, 음악, 영화, 음식 등 여러 주제 아래 문화 행사를 열고, 글쓰기와 드로잉, 책 만들기, 전문 스터디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타인과의 관계는 최소화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찾고 소비하는 커뮤니티 공간이 된 것이다. 책과 개인, 공간과 개인, 개인과 개인, 사회와 개인의 관계가 시작되고 이어지는 공간 말이다. 끈끈한 연대는 왠지 불편하고, 각자의 독립성을 중시하는 요즘이다. 그러나 혼자 고립되어 외롭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다. 새로운 연결, 느슨한 관계가 필요해진 것에 가깝다.
또다시 동네 책방은 변하고 있다. 커뮤니티 공간 역할은 유지하며, 콘텐츠 생산 플랫폼으로 나아가고 있다. 책방 간 협업을 통해 마켓, 공연, 전시, 행사를 기획·운영하고,책방과 출판사, 책방과 창작자, 책방과 동네 주민이 함께 독립 출판물이나 로컬 매거진, 팟캐스트와 유튜브 콘텐츠 등을 생산한다. 동네 책방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콘텐츠 유형은 첫째, 블라인드 북이다.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책을 큐레이션해 판매하는 블라인드 북이 책방의 콘텐츠가 되었다. 서울 인사동의 ‘부쿠서점’에서 매월 가장 많이 판매되는 책은 <부쿠의 비밀책>이다. 연남동의 ‘서점 리스본’은 매월 200여 명에게 ‘비밀책 세트’를 발송하며, 여행 작가가 운영하는 신월동의 ‘새벽감성1집’은 매월 다른 키워드로 선정한 ‘감성 블라인드 북’을 판매한다. 이외에 많은 동네 책방이 책 큐레이션을 바탕으로 한 블라인드 북을 콘텐츠화하고 있다.
둘째는 출판이다. 책방이자 출판사로 작가를 발굴하고, 출판물을 만들어 유통한다. 출판사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책방은 서울 망원동의 ‘이후진프레스’와 해방촌의 ‘별책부록’, 홍대의 ‘gaga77page’ 등이다. 대구의 ‘더폴락’, 순천의 ‘심다책방’, 꾸준히 사진집을 출간하는 제주의 ‘라바북스’도 있다. 로컬 매거진을 만드는 용인의 ‘우주소년’과 청주의 ‘앨리스의 별별책방’ 외에 경주의 ‘어서어서’도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세 번째는 팟캐스트나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 콘텐츠다. 사회학자 노명우가 운영하는 ‘니은서점’의 책 소개 영상인 ‘월간 북텐더 책 추천’, 독립 출판물 전문 책방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 5년간 운영 중인 ‘스몰포켓’ 등을 비롯해 이 분야의 콘텐츠는 점차 늘고 있다.
왜 동네 책방은 콘텐츠 생산자가 되었을까? 사회·문화적 요인이나 개인의 욕망과 책방 주요 고객층 변화 등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것은 네 가지다. 첫째, 부수적인 수익 창출이다. 북 토크나 커뮤니티 프로그램 운영은 책방에 꾸준한 수익을 가져오기 어렵다. 이미 너무 많은 책방이 운영하고 있어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둘째는 책방 운영자의 자아실현 또는 자기표현을 위한 창작 활동이다. 최근 개점하는 동네 책방 운영자 대다수는 30대다. 이들은 사회 경험을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이상 했으며, 이미 창작 활동을 해온 경우도 많다. 셋째, 사이드 프로젝트로의 확장이다. 책방을 중심으로 맺은 인적 네트워크, 즉 동네 주민, 독립 출판 제작자, 그림 창작자 등이 취미로, 재미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다품종 소량 생산 소비 시장에 적합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 다양성이 존중받고, 소수의 취향이 소비되는 시대다. 책방에서 생산하는 독립 출판물 또는 굿즈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주문 수량만큼 제작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영상, 음성 콘텐츠 역시 특정 독자 또는 고객의 취향을 위해 만들어진다.
필자가 운영 중인 ‘책방 연희’를 살펴보자. 책방 연희는 서울 홍대입구역 경의선책거리 인근에 있는 독립 서점이자 도시 인문학 서점이다. 2017년 개점했을 때부터 전시, 북 토크, 워크숍 등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2017~2018년에 작가와의 만남, 독서 모임 중심의 프로그램에 이어, 2019~2020년에는 글쓰기, 드로잉, 인디자인, 책 만들기 등 정기 클래스와 창업 세미나, 콘텐츠 관련 세미나를 주로 열었다. 2020년 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온라인 독서 모임을 시작으로 엄마들의 글쓰기, 독립 출판 제작 스터디, 에세이 쓰기 클래스를 비대면으로 진행한 것이다. 2019년 말부터 서울 외 지역에 있거나 공간을 방문할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온라인 모임을 기획했는데, 코로나19 사태와 겹쳐 2020년 초부터 진행 중이다. 책방에서 꾸준히 인기 있는 클래스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모임이다. 인기 있는 세미나 역시 콘텐츠 창작과 관련돼 있다.
책방 연희의 콘텐츠 생산 유형을 나누어보았다. 우선 공간 자체가 콘텐츠다. 책방 연희는 경의선책거리에 위치하지만, 제주 애월의 한 커피숍에 ‘숍 인 숍’ 개념의 ‘책방 애월’을 운영하고, 영화제나 전시장 등에서 책방 연희 공간을 경험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클래스와 커뮤니티 모임을 통해 콘텐츠를 생산한다. 독립 출판 모임과 에세이 쓰기, 인디자인 클래스를 통해 독립 출판물을 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창작자가 생겨나고, 때로 기성 출판으로 이어진다. ‘동네 스토리집 프로젝트’처럼 동네 주민, 창작자와 함께 개인의 동네 기억을 출판물로 만들기도 한다.
책방 벽면을 활용한 전시 역시 콘텐츠다. 출판사 또는 신진 창작자와 함께 기획하는데, 책방 연희에서 시작한 전시가 여러 책방 전시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온라인 콘텐츠도 빼놓을 수 없다. 책방에서는 매월 한두 번 운영자의 편지와 함께 책방 소식과 콘텐츠를 소개하는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뉴스레터 자체가 콘텐츠가 된 사례로, 지난여름에는 작품을 홍보하기 어려운 독립 출판 작가의 창작물을 매주 발송하는 온라인 정기 구독 서비스 ‘연희레터’를 베타 테스터로 진행했다.
최근에는 여행의 의미를 찾고 참신한 방법으로 독자와 동행하는 작은 출판사 ‘방’과 ‘로컬 에세이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에세이스트, 사진작가, 여행 크리에이터, 일러스트레이터 등 12명이 모여 서울과 제주의 동네에 관한 이야기를 자신의 에피소드와 같이 담는다. 강릉, 부산, 인천 등 도시를 옮겨가며 계속 출간하고, 전시와 북 토크도 연계할 계획이다.
책방에서 생산하는 콘텐츠는 ‘관계 맺기’에서 시작한다. 책방 운영자 혼자 골방에 앉아 생산할 수 없다. 책방을 중심으로 맺은 관계가 커뮤니티로 이어지고, 커뮤니티를 통해 맺은 관계가 콘텐츠를 생산한다. 그렇게 책방은 창작자와 콘텐츠가 모이고 연결되는 플랫폼이 되어간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책방들이 이 모든 일을 하는 이유는 지속 가능한 책방을 위해서라는 점이다. 콘텐츠 기획사나 제작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며 책방을 유지하기 위해 커뮤니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많은 동네 책방이 각자의 로컬에서 관계 맺기의 공간으로, 콘텐츠 생산 플랫폼으로 오래도록 남아주기를 바란다.
구선아 독립 서점 겸 도시 인문학 서점 ‘책방 연희’와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스튜디오 어반앤북을 운영한다. <때론 대충 살고 가끔은 완벽하게 살아>, <퇴근 후, 동네 책방> 등을 썼고, <꽃의 파리행>, <이상의 도쿄행>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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