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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커넥트 Dec 29. 2020

로컬과 커뮤니티, 그리고 나의 미래

마을 커뮤니티 빌더이자 사회적기업가로 활동해온 임경수가 2020년 새 협동조합 이장을 설립했다. 지난 삶의 궤적을 돌아보는 그가 보내온 로컬과 커뮤니티, 로컬리티에 이르는 진득한 성찰.


20년 전

로컬크리에이터


『‘이-마을(e-Maul)’은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박사 11명이 만든 대학 내 벤처기업 인터넷 ‘이장’이 환경 친화적인 상품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운영하는 사이버 마을. 지난 9월 15일 문을 연 이-마을이 첫 번째로 제공하고 있는 정보는 유기 농산물 생산자 정보다. (중략) 전국을 누비며 골라 뽑은 유기농 생산자 90여 명의 농사 철학, 농사 방법, 생산물 등이 글과 사진, 동영상으로 올라와 있다.』

– ‘환경농사 궁금하면 ‘이-마을’에 들르세요’, 한겨레, 1999년 12월 15일


20년 전, 세간이 관심을 두지 않던 농촌 곳곳을 뒤져가며,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던 유기 농업의 생산자를 찾아다닐 당시 했던 일이다. 학부에서 화학공학을, 석사과정에서 대기오염을 공부했지만, ‘가방끈’의 종착점은 유기 농업이었다. 그렇게 유기 농업을 통해 새로운 농촌을 꿈꿨다.『인터넷 이장 대표 임경수 씨는 소비지와 생산자의 직접적인 만남이 잦아져야 진정한 도농 교류가 이루어지고 우리 사회에 공생적 농촌 문화가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20년이 지났건만, 그때 꿈꿨던 새로운 농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듯하다.


무작정 호주에서

만난 ‘퍼머컬처’


2000년 1월 3일,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았다며 한 방송사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가 머릿속을 흔들어버렸다. 농업 생산과 에너지에 관한 박사 논문을 쓰면서 친환경 농업 분야에서도 화석에너지 사용 비율이 높아 에너지 관점에서는 그다지 생태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찾지 못했던 까닭에 마치 갚을 수 없는 돈을 빌려 쓴 것처럼 가슴앓이를 하던 터였다. 그런데 그날 다큐멘터리가 보여준 호주의 생태 마을 ‘크리스털 워터스(Crystal Waters)’에서는 화석연료를 쓰지 않고 농사를 지었고, 더 나아가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생활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저 중력에 이끌리듯 인터넷 이장에 쌓여 있는 여러 가지 일을 묻어두고 그해 6월 호주로 날아갔다.


크리스털 워터스는 1970년대 목초지와 산림으로 이루어진 토지를 사들인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만든, 작고 아름다운 생태 공동체 마을이다. 그리고 이 마을의 계획과 설계, 그리고 생활의 지침이 된 것이 ‘퍼머컬처(permaculture)’다. 퍼머컬처는 호주 남부 섬 출신인 생태 계획가 빌 모리슨(Bill Mollison)이 전 세계를 여행 다니면서 수집한, 전통적이며 생태적인 지혜와 기존의 지식 체계를 엮은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가이드북’이라 할 수 있다. 나는 크리스털 워터스의 교육과정에 참여해 퍼머컬처를 배웠다. 퍼머컬처는 ‘permanent’와 ‘agriculture’의 합성어인데, 그 내용은 단지 농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속 가능한 농업, 지속 가능한 마을,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다양한 방법과 절차를 제시한다. 농업, 건축, 조경 분야의 각종 기술뿐 아니라 협동조합 같은 경제활동과 주민 조직을 만드는 공동체 활동에 관한 내용까지 두루 포함하고 있다. 그때 나는 퍼머컬처에서 공부한, 공학적이고 기술적인 지식이 장차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얼마나 많고 다양한 일을 엮어낼 수 있을까 상상하며 가슴이 콩닥거리는 것을 느꼈다. 퍼머컬처는 이후 나의 삶에 있어 마르지 않는 자양분이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침반이 되었다.


사회적기업가로

10년


『임경수 주식회사 이장 대표이사는 생태적 삶의 가치를 기업 활동을 통해 사회에 전파하는 벤처 지식인이다. 대학원 시절부터 “내 꿈은 마을의 ‘이장’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던 그가 이끄는 ‘이장’은 이름 그대로 이장 역할을 자임하며 마을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 ‘2006년 개천절 특집: 주목받는 차세대 인물 30인’, 문화일보, 2006년 10월 6일


간혹 사회적 경제와 관련된 모임에 나가면 사회적기업가의 원조가 아니라, 화석으로 불리곤 한다. 호주에서 돌아와 2001년 인터넷 이장을 주식회사 이장으로 전환했는데, 사회적기업이라는 개념조차 없을 때 ‘생태 가치를 지향하는 회사’, ‘직원들이 가슴 뛰는 회사’ 등의 슬로건을 썼기 때문이다. 주식회사 이장 시절 100여 곳이 넘는 농촌을 컨설팅했고, 30여 지자체의 지역 개발 프로젝트를 기획했으며, 세 곳의 지역 지사와 2개의 자회사를 만들었다. 그 바람에 이사를 여섯 번이나 해야 했는데, 손수 운전하면 다녔던 자동차 마일리지가 택시에 버금가서 당시에 만난 자동차공업사 사장은 내 직업을 궁금해하기도 했다.


사회적기업가로 활동한 10년 동안 놓치지 않은 단어는 ‘공동체’다. 이제는 많은 컨설팅 회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주민 워크숍이지만, 이를 농촌에 처음 적용해 주민 참여형 농촌 계획을 시도했다. 충남 서천의 산너울 전원마을은 주민 참여 설계(Community Based Design)를 실현한 사례다. 하물며 회사부터 공동체 방식으로 운영했으니까. 그러나 어려움은 꽤 따랐던 모양이다. 10년간 회사를 운영한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나의 대답은 이러했다.


『회사라는 데가 사회에도 보탬이 돼야 하고, 젊은 사람들이 자기 성장도 할 수 있어야 하고, 돈도 벌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 ‘신동호가 만난 사람:농촌을 컨설팅하는 임경수 (주)이장 대표’, 경향신문, 2009년 12월 15일


정책화된 마을 만들기에 흥미를 잃어갈 즈음, 로컬 푸드와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완주군과 인연이 되었고, 아예 이사를 했다. 그동안 생업의 내용은 여전히 교육이나 컨설팅이었지만, 지내보니 10년 차 완주군 고산면민이라는 것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고산면은 팬데믹 상황에서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유튜브 경진대회로 만날 수 없는 이웃의 안부를 확인했고, 코로나19가 잠잠한 틈새에는 야외 영화 상영제를 열어 이웃과 눈을 맞추었으며, 학교에 가지 못해 급식을 못 먹는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행정 지원 없이 ‘반찬 나눔’을 했다. 다른 이들은 이것을 보며 마을이라 하고 공동체라 하지만, 정착 고산 주민들은 굳이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마을이라 하기엔 느슨하고 공동체라 하기엔 엄격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말을 가져다붙였다. 고산면에는 ‘로컬리티(locality)’가 있다. 로컬리티를 두고 인문학자들은 ‘삶의 터로서 로컬이라는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시간을 통해 축적한 경험과 다양성의 총체’라 정의한다. 보다 이해하기 쉽게 보태자면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떠올리면 된다.


농촌

주민으로 10년,

새로이 로컬리티와 로컬 푸드


로컬리티는 시장이나 자본, 비즈니스의 개념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언뜻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시장과 자본은 지역의 로컬리티를 훼손한다. 완주군이 로컬 푸드 부문에서 성공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농산물을 시장 상품으로 보지 않았고, 지역사회의 로컬리티를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앞으로 많은 로컬 비즈니스가 로컬리티에 기반을 두기를 바란다. 젊은 로컬크리에이터들이 로컬리티를 강화하는 촉진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로컬리티가 남아 있는 건강한 지역사회가 많아지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새로운 시작,

협동조합 이장


아직은 조합원이 10명이 채 안 되지만, 지역에서 로컬리티를 만들어가는 활동가 플랫폼으로 새 협동조합을 시작했다. 누구나 지역의 다양한 활동과 비즈니스 경험을 나누며 실험하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그 첫 번째 실험은 고산면 지역 자산화 프로젝트다. 고산면의 활동가와 청년들이 돈을 모아 작은 집을 함께 짓고 있는데, 이 경험이 협동조합 이장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고,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들을 응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회적기업가로 10년, 농촌 주민이자 활동가로 10년을 살았다. 향후 10년을 어떻게 살아갈지, 내 삶이지만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10년에 대한 기대는 충분하다.






임경수 2020년 전북 완주군 고산면에 협동조합 이장을 설립해 주민 자치와 지역 자산화 사업에 힘쓰고 있다. 마을 전체를 커뮤니티화해 마을의 성장을 디자인했으며, 커뮤니티를 통해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풀무학교 교사를 거쳐 2010년까지 이장 대표를 맡았고 2011년 퍼머컬처대학 프로그램을 고안했으며,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와 전주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장 등을 역임했다.


기획 및 발행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제작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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