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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커넥트 Dec 28. 2020

그들이 제주에서 커뮤니티를 만든 이유-베케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모이면 즐겁다. 그 자체로 힘이 난다. 이에 더해 커뮤니티 활동으로 꿈꾸는 지역의 미래를 앞당기고, 참여하는 모두를 고루 이롭게 하고 싶다는 기획자들을 만났다. 카카오패밀리 김정아와 베케 김봉찬이 말하는 로컬에서 커뮤니티를 만든 까닭.


제주를 살리는 정원 공부

베케 김봉찬 대표

생태 정원 카페 베케는 2020년 제주 여행의 ‘핫플’ 중 하나였습니다. 베케를 운영하고 전국 곳곳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에도 ‘제주에서 공부하는 정원 모임(이하 제공정모)’을 열고 있지요.

자연을 답사하며 식생과 생태계를 공부하는 모임이에요. 5년 전부터 한 달에 두 번씩 꾸준히 하고 있죠. 대부분 한국에 공공 정원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로변 화단이나 가로수처럼 녹지가 조성된 곳은 모두 공원이거든요. 제공정모는 서귀포 시민이 주체가 되어 공공 정원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어요. 곁에 있는 공공 정원을 ‘관’이 아니라 시민 스스로 기획하고 가꾸면 멋지지 않을까요? 다음 세대에 의미 있는 경관을 남기는 일이기도 하고요.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섣불리 나설 수는 없으니 10년 정도 함께 공부하는 것을 계획했고, 올해로 5년 차니 절반 가까이 온 셈이죠.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나요?

매달 스터디와 답사를 한 번씩 합니다. 선착순으로 신청자를 받는데, 스터디는 주제를 정해 참여자 중 한 명이 발표하고 함께 공부하는 시간이에요. 설강화, 원추리 등 이달의 식물을 선정해 특성부터 생태, 식재 방법까지 전반적인 지식을 쌓아요. 답사 때는 제주의 자연으로 떠납니다. 곶자왈이나 오름 등을 방문해 제가 해설하고, 찬찬히 둘러보며 회원들과 대화를 나눠요. 자연에서 느낀 것을 공유하는 시간이죠. 종종 외부에서 정원사를 연사로 데려와 특강을 열고, 평강식물원이나 국립수목원처럼 육지의 정원 또한 찾아갑니다. 제공정모와 별도로 ‘자연에서 공부하는 정원 모임(이하 자공정모)’을 운영하는데, 자공정모는 해외 정원 여행을 가기도 했어요.


자공정모와 제공정모의 차이점은요.

신청자를 골라 받지는 않지만, 자공정모는 전문가를 위한 프로그램에 가깝습니다. 분기마다 1박 2일 워크숍 형태로 진행해요. 낮에는 곶자왈과 오름, 습지, 해변 등을 탐방하고, 저녁에는 세미나를 엽니다. 예술가나 조경가 등 패널 역할을 하는 전문가 회원의 참여율이 높은 편이지만, 모임의 시작은 소박했어요. 종종 직원들과 시간 날 때 한라산이나 오름에 가 정원 공부를 해요. 정원 식물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식물의 고향을 아는 게 중요하거든요. 원래 살던 곳을 살펴보는 의미 외에, 디자인 감각을 익히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답사 후 SNS에 올렸는데, 그걸 본 누군가가 여러 사람이 함께 갈 수 없는지 묻더군요. 이를 계기로 아마추어부터 프로까지, 자연을 깊이 있게 알고 싶은 회원을 모았어요.


이전에도 ‘제주자생식물동호회’, ‘곶자왈 사람들’ 등 여러 커뮤니티를 만든 이력이 있지요.

1992년, 제주 자생식물의 생태를 공부하자고 만든 모임이 제주자생식물동호회입니다. 지인도 있었지만 관심 있는 사람 누구나 참여하도록 했어요. 당시만 해도 자연을 다니며 식물을 공부하는 모임이 거의 없었어요. 15년 넘게 도내외를 탐사하며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곶자왈 사람들은 성격이 조금 다른데, 곶자왈 개발을 막기 위해 만든 시민 운동 단체예요. 골프장을 짓느라 곶자왈을 마구 밀어내던 시기라, 당시 신문기자였던 김효철, 곶자왈을 연구하던 송시태 선생과 공동 대표를 맡아 단체를 만들었어요.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중간에 나와야 했지만, 곶자왈 탐사로 발견한 희귀 식물에 대한 글을 지역 신문에 연재하며 곶자왈 보존의 중요성을 알렸죠.


모임을 나와야 했던 이유가 있나요?

곶자왈 보존을 외치는 환경보호 단체 활동과 조경 일이 어느 순간 부딪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규모 큰 조경 작업을 의뢰하는 사람은 대부분 개발업자예요. 정원을 조성하는 일 자체는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에요. 훼손이 아닌 방식으로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개발 역시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한쪽에서는 곶자왈 보존을 외치며 다른 쪽에서는 개발업자와 일하는 것이 영 불편하더군요. 죄책감이랄까. 이후 10년간 제주에선 조경 작업을 하지 않고, 육지 프로젝트만 맡았죠. 곶자왈 사람들은 그간 잘 활동해왔고, 돌아온 후론 이사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와 별도로 잘할 수 있는 ‘교육’의 방식으로 자연의 소중함을 알릴 수 있겠다 싶어 정원 공부 모임을 만든 게 아닐까 해요.


정원 공부를 통해 자연보호까지 도모하는 것인가요?

자연스럽게 서로 연결되는 것이죠. 식물을 들여다보고, 자연을 뜯어 공부하다 보면 그 중요성을 알게 돼요.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니 밀어버리는 방식으로 개발하려는 거라고 생각해요. 또 곶자왈을 그대로 보존(만)하자는 이야기와는 달라요.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 가치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매만질 수 있어요. 그게 바로 생태 기술이에요. 자연 고유의 아름다움을 발현시켜서 사람들이 공감하게 만들고, 자연스레 소중함을 깨닫는, 이를 경험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 “제주는 곶자왈 없으면 안 돼” 하고 외치게 만드는, 그런 디자인이 가능해요. 아직 임자를 못 만났을 뿐이죠. 그러니 계속해서 함께 공부하려는 것이고요.


모임을 오래 운영하는 일은 쉽지 않을 텐데, 이어가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공부 모임에서는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모임을 두려워해요. 지식이 얕으면 와서 배울 수 있지만, 많이 안다고 생각하면 자기 수준이 탄로 날 수 있다고 긴장하거든요. 함께 공부하기 위해서는 잘 안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끝없이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해요. 지식의 거대한 세계에서 우리가 아는 건 한 점 모래에 지나지 않을 걸요.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는지가 중요하죠. 공부 모임은 앞으로 계속할 텐데, 어느 시점부터는 나도 모르는 것을 주제로 삼을 계획입니다. 왜 그것이 궁금한지 설명하고, 다 같이 답을 찾는 거예요. 무궁무진한 세계가 열리겠지요.


지역 커뮤니티로서 제공정모에 어떤 기대를 갖고 있나요?

모임을 오래 이어가고 싶고요. 누군가 이어서 해주면 더 좋겠네요. 이러한 커뮤니티로 제공정모만 있을 필요는

없지요. 서울에선 서공정모를, 부산에서는 부공정모를 만들면 어떨까요. 각자 지역에서 공부하다가 한번씩 모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실제 제공정모를 만들며 꿈꾼 일이기도 합니다. 꼭 제공정모의 방식을 따를 필요도 없고요. 선도적으로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고, 여기에 자극받아 각 지역에서 정원 공부 모임이 활성화된다면 더 바랄 게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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