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혁신 창업 생태계 조성 지역의 힘으로
스타트업은 혁신적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하면서 막대한 가치를 창출하고 지역혁신을 이끌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지역의 혁신역량을 키우지 않고 이뤄지는 스타트업의 양적 확대는 자칫 모래성에 그칠 위험도 상존한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스타트업아일랜드 제주 개인투자조합’을 추진하는 이유다. 제주센터는 올해 처음 시도되는 개인투자조합 1호로 참여한 투자조합원 중 3인을 초청해 ‘도민자본 기반 투자 생태계를 논하다’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고미 투자조합 1호가 출범을 앞두면서 많은 도민들이 출범 배경을 궁금해하고 있어요.
전정환 스타트업은 새로운 혁신적 아이디어로 시도하고 그것이 검증됐을 때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이에요. 서울에서는 30년 전 다음·네이버가 생길 때부터 싹터서 지금은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가 만들어졌죠. 주로 청년들이 자본이 없을 때 시작해 20년 이상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스타트업 생태계가 만들어졌어요. 제주에도 IT기업 등이 이전해왔지만 스타트업 생태계 관점에서 볼 때 연결은 부족했죠. 도민기업도 혁신형 창업보다 기존의 자영업 같은 창업이 많았어요.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설립된 2015년에도 스타트업은 거의 없었지만 이때부터 서서히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부터 제주센터가 지방정부 출연금으로 스타트업당 5000만 원 내외의 시드머니 직접 투자를 전국에서 유일하게 시작해 17개 기업에 초기자금 마련에 도움을 줬고, 시드머니 투자기업에 대한 개인의 후속 엔젤투자도 이어졌어요. 그다음 단계가 바로 ‘투자조합’입니다. 스타트업아일랜드제주 투자조합은 지역자본을 기반으로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해 성장시키고 회수·재투자로 또 다른 스타트업을 키우는 선순환, 스타트업 친화적인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고미 이번 1호 투자자들은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전정환 많은 분들이 ‘도민 자본의 선순환’이라는 투자조합의 취지에 동의하며 흔쾌히 참여를 결정해 주셨어요. 현재 도민들이 부동산이나 주식 등에 투자를 하고 있는데,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일단 기업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투자자도 공부하며 기업에 대한 지지자가 되고, 성장하게 되면 후배 기업들에게 다시 투자를 하게 됩니다. 선순환 고리가 형성돼 공공 의존이 아닌 지역의 힘에 의한 경제적·사회적 자본이 만들어지는 거죠.
고미 제주에서는 먼저 도움을 주겠다고 선뜻 나서는 경우가 많지 않잖아요. 직접 참여한 조합원에게 들어보는 것이 2호, 3호 투자조합 등장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고덕훈 육가공으로 시작해 창업 7년 차를 맞은 지금은 무역회사에 가깝게 성장했지만 제주센터의 투자 사업을 보면서 ‘올해 사업을 시작했더라면…’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예전에는 스타트업 투자가 전혀 없었어요. 대출을 받고 시작할 수밖에 없는데, 매우 위험한 방식이죠. 지금은 투자 환경이 많이 좋아졌어요.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추진하는 투자조합은 장기적으로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한 개인투자모임이기 때문에 큰 이익을 바라기보다 후배 기업들을 위한 마중물 역할에 공감해 투자에 참여하게 됐어요. 센터장으로부터 이제는 후배들을 도울 차례로, 창업 과정에서 느꼈던 것을 이야기해달라는 부탁도 있었고요.
오경수 제주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또 재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을 위한 조력자이자 서포터, 마중물의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작게나마 투자조합에 참여하게 됐죠. 투자조합을 결성하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목적도 있었고요. 제주미래가치포럼 의장을 하면서도 서울의 노하우와 정보를 어떻게든 제주도로 전달할 수 있는 있도록 세미나와 포럼 등으로 노력해왔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와 있는데 제주도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습니다. 대기업은 자금이 풍부한 반면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은 자본이 각 단계별로 투입되지 못해서 사라지는 기업이 많아요. 안타깝게도 제주에는 대기업이 없어 대기업과의 상생모델도 불가능하죠. 대기업 시절 네트워크를 활용해 정보와 사람, 돈을 제주도에 끌어오자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고미 작은 식당을 내는 것도 시작부터 주변의 도움이 절실해요. 정은숙 정책위원장님은 어떤 것에 마음이 움직이셨나요?
정은숙 저는 이주 7년 차 도민이자 젠더정책 연구자인데, 경제학 전공자이기도 해요. 주식 등 여러 투자도 꾸준히 해왔고요. 젠더정책을 하면서 살펴보니 투자나 스타트업 경제 분야에서 성별 격차가 굉장히 심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노동 등 기존의 임금격차 문제는 많이 인식하지만 50대 여성 입장에서 투자 분야는 물론 나 역시 사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죠. 우리 세대는 전혀 배우지 못했는데, 남성들은 사회적으로 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요. 그에 대한 안타까움과 달라져야 한다는 문제 인식이 출발점이었어요. 투자, 창업에 대해 2030세대에도 성별 격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미 스타트업은 대기업과 달리 단계를 밟고 올라가잖아요. 도전을 위한 판을 깔아주고 지원이 들어가는데, 기본적인 조건 외에도 자양분이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어요. 오경수 의장님은 어떻게 보세요?
오경수 삼성에서 벤처를 만들어 CEO를 할 때 엘빈 토플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벤처기업의 생리를 묻는 질문에 그 분이 답해준 것이 있어요. 먼저 창업하는 시드머니를 투자하는 사람과 성공모델 전략 등을 플래닝 하는 사람, 비즈니스모델을 따라 연구 개발하는 사람이 균등해야 벤처가 성공한다는 겁니다. 직원 투자에 외부 투자도 받아야 하고, 스타트업 비즈니스모델이 국내·외에서 경쟁 가능한 모델이냐, 역량 있는 개발자가 포진해 있느냐를 따져봐야 하는 거죠. 자본 측면에서는 실리콘밸리든 어디든 창업, 개발, 마케팅까지 돈이 투입되는데 제주도도 각 단계마다 투입이 준비돼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제주는 특히 자금을 투입하는 기반이 열악합니다. 제주의 자산가들이 새로운 시대 흐름을 이해하기보다 부동산, 건설 이야기만 하고 있어요. 그들이 창업 생태계로 들어와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영역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30년을 IT 분야에 근무하면서 이번 투자조합의 마중물로서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투자조합 1호로 사인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죠.
고미 스타트업 창업 경험이 있는 고덕훈 대표님이 느끼는 아쉬움은 또 다를 것 같아요.
고덕훈 저는 안전한 제주산 먹거리를 찾는 시대가 반드시 올 것으로 생각해 마흔 살이었던 2014년 영농조합법인 탐라인을 설립했습니다. 제주산 청정 원물의 생산부터 가공, 유통, 판매 서비스까지 총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어요. 제주돼지를 시작으로 지난해 홍콩에 5년간 2000만 달러 수출 계약을 맺었고, 제주 수출인의 날에 수출 대상도 받았습니다. 시작할 때는 1차 산업이고 39세 이하 청년도 아니라서 스타트업으로서 공공 지원을 받는 데 어려움이 컸어요. 제조업 특성상 기반 시설 구축 등 자본이 많이 필요했지만 투자를 받지 못했고, 모두 개인 대출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도 쉽지 않았지만 그나마 제주에서만 살아오면서 스물여덟 살부터 사업을 경험해왔기 때문에 이주민이나 청년에 비해 나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투자를 받는 것의 좋은 점은 투자자도 열심히 도와주게 된다는 점이에요. 모든 투자자는 기업을 고를 때 신중하게 선택하지만 일단 선택이 이뤄지면 투자한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게 되거든요.
고미 후배들에게 조언 한 말씀해 주세요.
고덕훈 예비창업자들은 창업과 개업을 구분해야 합니다. 대부분은 사실 개업인데 다 창업한다고 말을 합니다. 창업은 새로운 아이템이나 기술, 서비스, 판매 방식 등 스타트업의 범주에 들어야 해요. 투자조합이 아닌 벤처캐피털의 경우 돈이 될 것 같으면 투자를 하지만 사실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자기자본으로 5년 걸릴 것을 3년으로 앞당겨야 할 이유가 있다면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는 것도 좋지만 대신 경영에 영향을 받거나 지분이 줄어들 수 있어요. 경영 경험이 부족한 경우 투자받는다는 것에 흥분해서 계약서 내용을 잘 확인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익률 배분 등을 잘 확인해야 합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대담자
전정환 제주센터장, 고미 제민일보 편집국장, 오경수 제주미래가치포럼 의장, 정은숙 제주여민회 정책위원장, 고덕훈 영농조합법인 탐라인 대표
기획 및 발행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제작 세일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