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훈 위벤처스 대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전 세계적으로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됐다. 이제는 스타트업도 ESG경영이 선택 아닌 필수가 된 시대.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벤처캐피털 위벤처스가 업계 최초로 ESG위원회를 신설했다. 위벤처스 하태훈 대표이사를 통해 ESG위원회의 역할과 스타트업 ESG 경영 및 투자의 미래를 들어봤다.
지난 1월 위벤처스가 벤처캐피털 업계 최초로 ESG위원회를 정식 출범했습니다. ESG위원회를 신설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지난해 초부터 ESG에 관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왔습니다. 위벤처스도 벤처캐피털로서 ESG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서스틴베스트’라는 국내 주요 ESG 평가 업체에 연락해 전 직원들이 세 차례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만큼 ESG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었다는 거죠.
ESG는 단순히 착한 기업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이제는 기업의 가치에 큰 영향을 주고 있죠. 특히 단순히 재무 상황과 사업성을 넘어 기업의 존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실제로 ESG 관련 리스크가 발생해 하루 사이에 기업의 가치가 몇천억 원이나 하락한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회 전반적으로 ESG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니, 이제 무엇이 ESG인가에 대한 공동의 합의나 기준이 있어야 하잖아요. 이런 기준을 도출해보고자 1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ESG위원회를 만든 겁니다. ESG위원회는 위원장인 저를 비롯해 환경 분야의 전문가인 조명래 전 환경부 장관, 사회 분야를 잘 알고 적극적으로 활동하셨던 김인선 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나 이사회 운영에 관한 법 등을 잘 알고 계신 양지훈 변호사로 구성돼 있습니다. 전문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해 각 분야 외부 전문가를 위원으로 위촉했지요.
ESG위원회를 출범하게 된 배경과 이유를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ESG위원회의 역할은 무엇인지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1년에 2~4번 정도 ESG위원회가 열립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ESG준칙 설정이죠. 세세한 기준을 정하기보다는 앞으로 ESG 관련 평가에 반영되어야 할 것들을 수립합니다. 기업의 ESG경영이 어떤지를 평가할 때 정량화할 부분이나 추가할 분야에 대해서도 다루죠. 간단하게 말해 스타트업이 앞으로 ESG 경영을 실천할 때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ESG준칙을 설정할 때는 무엇보다 지금의 사회 환경이나 스타트업이 처한 현실을 고려합니다. ESG위원회가 스타트업이 지켜야 할 불변의 규범을 만드는 건 아니니까요. 소비자나 투자자가 기업을 판단할 때 비즈니스가 환경이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지배구조가 어떤지 등을 생각하잖아요. 수익성이 기업 평가의 기준이었던 과거와 많이 달라졌죠. 예전에는 은행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돼도 소비자들이 주거래 은행을 옮기는 일이 드물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하잖아요. 비윤리적인 사건을 일으킨 대기업이나 프랜차이즈를 대상으로 불매운동도 빈번하게 일어나고요. 위벤처스가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니, 예상치 못한 리스크가 발생하지 않도록 ESG위원회를 통해 스타트업들의 경영 지표와 관리의 중요성을 도출해 나가고 있습니다.
ESG준칙을 지속적으로 보완·수정해 나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평가 기준을 너무 높게 설정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기준이 높으면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부담감을 느끼고 ESG경영을 쉽게 실천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결국 ESG경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기업으로 평가받게 되고 투자 유치에도 영향을 미치겠죠. 굳이 ESG경영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여느 스타트업처럼 투자받고 큰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요. 무엇보다 투자가 위축되지 않는 선에서 ESG를 실천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습니다.
ESG위원회에서는 앞으로 새롭게 반영되어야 할 분야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를 들어 기업이 환경 문제에 책임감을 느끼게 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세계적으로 환경 규제의 허들이 점점 높아지고 있잖아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환경 관련 정책이 생길 수도 있고요. 이런 부분을 고려하기 위해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각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를 위원으로 구성한 겁니다. 미리 대응해야지, 막상 정책이 시행된 이후라면 늦습니다.
ESG가 중요해진 만큼 최근에는 스타트업도 ESG경영에 나서고 있는데요. 어느 단계부터 ESG경영을 생각해야 할까요?
스타트업이 창업 초기부터 ESG경영을 준비하고 실천해 가는 건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자금이나 규모면에서 성장하고 있는 단계이니 당장 ESG를 실천하라고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렵죠. 하지만 향후 규모가 커지고 영향력이 강해졌을 때를 대비해 준비해야 할 필요성은 분명 있습니다. 산업 분야와 규모에 따라 필요한 부분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제는 어떤 기업이든 ESG경영의 확산 추세를 거스른다면 큰 리스크를 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처음부터 환경, 사회, 지배구조 이 모든 분야에서 ESG를 실천할 필요는 없어요. 현실적으로 그러기도 어렵고요. 먼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됩니다. 우선은 사업 영역과 관련된 것부터 시작하는 거죠. 예를 들어 제조업 중심의 스타트업에서는 환경보호에 관한 이슈가 중요하겠지만, 금융업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덜하거든요. 제조업 분야의 스타트업은 환경보호나 근로자 안전 등을, 금융업 분야의 스타트업은 개인정보 보호 등을 먼저 신경 쓰면 되죠. 비즈니스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ESG 세 분야에서 모두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회사보다, 필요한 한 가지를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회사의 성과가 더 좋다는 하버드대학교의 논문도 있습니다. 전부 만점 받을 필요가 없다는 거죠. 자기 비즈니스가 아닌 부분에서는 당장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미래를 위해서 지금부터 ESG를 준비해야 하는 건 맞지만, 현재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당장 ESG를 준비하기에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특히 상대적으로 재무 상황이 좋지 못한 곳일수록 더 그럴 것 같아요.
아직 ESG경영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ESG를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비슷하거나 비즈니스 외적인 부분으로 여깁니다. 사회적 기업이나 소셜벤처에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환경보호, 직원 복지 등을 위해서 많은 돈과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이죠.
물론 ESG를 위해서 자본이 필요한 부분도 있어요. 아까 말씀드린 예시처럼 회사의 보안을 강화하거나, 직원 복지를 늘리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지만, 소규모 스타트업이 ESG경영에 과하게 자금을 투자할 필요는 없어요. 아직은 사회적 영향력이 크지 않은 상태이니,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받는 타격이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이죠. 크게 성장한 이후 규모와 영향력이 커지고 자금이 확보되면 당연히 리스크 예방을 위해서 투자해야 하는 게 맞고요.
ESG경영이 기업의 성장이나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나중에 발생할 수도 있는 리스크를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중요할 수 있겠네요?
기업이 사업을 잘 영위하고, 마케팅을 잘해서 큰 수익을 내는 것은 비즈니스를 이어가기 위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신경 쓰지 않으면 어느 한순간 무너질 수 있어요. 이 부분은 이미 많은 분들도 인지하고 있고요. 이전까지는 오염 물질 배출이나 강도 높은 노동을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며 넘겨 왔지만, 지금은 천문학적인 벌금에 처하거나 영업정지를 당할 수 있잖아요. 우리 인식과 정책 등 다양한 요소가 변하면서, 특정 사건에 대해 이전보다 책임져야 할 것들이 더 많아졌으니 ESG경영에 집중하는 게 안전합니다.
이때 생기는 의문은 ‘그럼 ESG경영이 잘 되고 있는지를 어떻게 측정하냐’입니다. ESG 하면 항상 따라오는 중요한 화두인데요. 사실 ESG경영의 성과를 측정할 필요는 없어요. 목적이 리스크 예방이니 기업에 특별한 타격이 없고, 기업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면 충분한 거죠. 그리고 기업으로서는 부담감을 느끼기보다 ESG경영으로 비즈니스를 안전하게 이어갈 수 있다는 것에 집중해야 해야 합니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죠. ESG는 연말에 있는 연탄 배달이나 길거리 청소 등이 아니에요. 기업이 좋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 무리해서 ESG경영을 표방한다면 한다면 자칫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으로 변질될 수도 있고요. 또 비즈니스가 아닌 법이나 규제라고 생각을 하는 순간 ESG경영을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최근에는 투자에도 ESG경영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투자 시 기업의 ESG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ESG투자라고 하면 친환경 기업이나 사회적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적극적인 ESG투자라면 맞는 말이에요. 투자를 통해 직접적으로 환경 문제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인 거죠. 최근에는 이런 방식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단순히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이런 문제를 인류가 해결해 나가야 하니 그 분야의 시장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ESG투자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특정한 영역에 투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투자 여부를 평가할 때도 ESG 모든 분야에서 리스크가 발생할 확률이 얼마나 낮은지를 고려해야 하죠. 투자함에 있어서 기업의 ESG 영역에 대해서 미리 검토하고, 지금 있는 문제들이 기업의 가치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기업이 지금의 리스크를 어떻게 개선하려고 하는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게 위벤처스가 나름대로 정한 기준이고요.
사회 전반적으로 빠르게 변화가 이뤄지고, 불확실성이 높아졌는데요. 앞으로 ESG경영도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합니다.
세계 주요 기업이 ESG를 경영의 기준으로 삼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 우리나라도 2025년부터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회사의 ESG 공시 의무화를 도입할 예정이에요. 그렇게 되면 2030년부터는 ESG경영에 대한 평가가 모든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됩니다. 상장 심사를 할 때부터 각 회사 내 ESG 활동과 경영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평가할 것이고요. 근데 그런 것들을 상장할 때 준비할 수는 없잖아요. 창업 초기부터 중요성을 인지하고 천천히 대응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 훨씬 낫다고 봅니다. 규모가 크고 지배 구조가 어느 정도 굳어진 상태에서는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어렵죠. 그래서 초기 스타트업들이 ESG경영을 실천해 나가기가 더 쉬운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밴처캐피털 최초로 ESG위원회를 설립하신 만큼 책임감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위벤처스와 ESG위원회가 스타트업의 ESG경영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하고자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ESG위원회는 앞으로도 기업이 겪을 수 있는 리스크나 위험 요소를 미리 파악해 예방법과 해결책을 제시해 나갈 예정입니다. 그러면 창업자들은 본업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겠죠. 현재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역량을 키울 수 있고, 자연스럽게 위험요소도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활동을 위벤처스의 ESG위원회가 꾸준하게 이어간다면 업종별, 규모별 다양한 사례가 나올 것이고, 나아가 해마다 선도 사례를 담은 백서도 만들어 볼 계획입니다. 앞으로도 위벤처스 ESG위원회는 ESG 준칙에 따른 투자 및 성과 관리 체계를 통해 지속 가능한 기업을 발굴하고 성공적으로 육성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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