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자원과 브랜딩이 만나다
- 고미 크립톤엑스 제주지역본부장
로컬이라고 부르는 것들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찾고, 또 얻고 있는가. 이전의 로컬, 로컬 브랜드는 지역 사람들이 사는 방식과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特産)’의 의미가 강했지만 지금은 거기에 현재와 가치가 보태지며 성장과 가능성을 여는 임팩트로 영향력이 커졌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로컬은 ‘삶’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다. 창업 생태계 영역에서도 그 기준은 달라지지 않는다. 접근 방법이 다양해지고 또 진화할 뿐이다.
누가 하기 전에 ‘주변’에서
몇 년 전 제주센터가 주관한 ‘2021 로컬브랜딩스쿨’에 한림공원(대표 송상섭)이 등장했다. 제주 대표 관광시설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지난 과정은 로컬 크리에이터로 시작해 브랜드로 성장한 사례다. 창업자인 송봉규 선생은 1970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엑스포만국박람회에서 제2차 세계 대전 후 일본 재건 과정을 보고 ‘할 일’을 찾았다. 협재굴과 해수욕장, 비양도 일대를 대상으로 한 한림지구 종합관광개발계획 추진이라는 큰 그림을 보기는 했지만 1970년대 그리고 주인을 찾지 못해 유찰을 거듭하던 읍 지역의 모래땅을 사들인다는 과감한 결정은 환영받지 못했다. 다들 ‘안 된다’고 했지만 2,000트럭 분량의 흙을 복토하고 개당 30원에 수입한 야자 종자를 뿌리는 것으로 시작해 현재 아홉 가지 테마공간과 마이스 인프라 등을 갖춘 한림공원을 만들었다. 제주 하면 떠오르는 단어 중에 ‘한림’이 앞 대열에 서게 된 배경이 됐고, 한림은 물론 제주 전체를 아우르는 사회 공헌 활동 등으로 조임쇠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촘촘하고 긴밀한 연결 ‘여행’하다
제주는 섬이라는 지리환경적 배경으로 다른 곳에는 없는 풍부한 재료를 가지고 있고, 전통적으로 공동체가 발달한 제주의 인문사회적 특성은 ‘지역화’라는 단어에 한 몸처럼 스며들었다. 기존 경제학 관점에서 로컬 제주는 시장이 작고, 1·3차 산업 중심의 자본 누수가 심한 산업 구조로 한계가 있었지만 로컬 관점에서는 이것이 장점으로 바뀐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긴밀한 연결, 특히 세대를 아울러 촘촘하게 짜인 지역사회 안에서의 협력과 의지는 배후시장의 한계를 극복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험난하기는 했지만 관광지 시장으로의 사전 경험은 로컬 브랜드를 키우는 히든카드로 쓰인다.
흔한 성공 공식으로는 채울 수 없는
고유 정체성과 지역 특성을 담은 콘셉트. 꾸준한 가치공유로 로컬 브랜드가 성장하고, 다시 그 매력을 좇아 유입 인구가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제주 이야기를 하자면 자체 시장이 크지 않고 원재료 수급 등의 한계가 있다 보니 소량이라도 좋은 제품을 만들거나 가치 발굴 또는 스토리텔링을 위한 진한 연구를 한다. 그렇게 빚은 적절한 브랜드 스토리와 지역의 조화는 공감으로 연결되고 고객충성도와 지지도로 이어진다.
가장 지역적인 것은 남들과는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성비를 넘어 가심비, 취향과 가치를 소비하는 흐름이 탄력을 받으면서 기업이 지방 소도시 홍보나 농산물 소비, 환경 문제 해결 등으로 협업하는 일이 확연히 늘었다.
단순한 시작으로 아름다운 진화를
로컬은 사실상 유기체다. 다윈의 진화론과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흔히 알려진 생물계를 포함한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이나 진화는 단절이나 불연속성을 보이지 않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냉혹한 생존경쟁 속에서 자연에 적응한 것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도태된다는 이론들이 아니라 <종의 기원>에 적은 말이 그렇다. “그처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가장 아름답고 가장 화려한 수많은 모습의 생명들이 진화했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니.” 로컬 생태계를 설명하는 데 이만큼 적합한 말을 찾기 어렵다.
제주를 중심으로 한 로컬 브랜드는 여전히 진화 중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거나 뒷걸음을 하고 있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기본이다. 로컬이란 정의에 발 묶여 보지 못하거나 하지 못하는 것들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로컬브랜드의 속성은 ‘성공’이 아니라 ‘감동’과 ‘공감’이다. ‘홍보만 잘하면’, ‘입소문만 타면’의 효과는 일시적이다. 감동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들고 필요한 사람들과 접촉면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소비 활동이 일어난다. 이것이 다시 생산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바로 로컬 브랜드다.
제주맥주는 끊임없이 확장 중인 수제맥주 시장에서 대표 자리를 확고히 구축하고 있다. 제주맥주의 ‘제주 위트 에일’은 지역적 특색을 담아내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제주산 유기농 감귤 껍질로 향을 살렸고 흑돼지구이, 고기국수 등 제주 향토 음식과 어울리는 맛을 어필했다.
그 과정에 제주라는 지역이 지닌 청정·신선한 이미지를 브랜드에 입히면서 국내 수제 맥주는 물론 해외 맥주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해외 맥주 브랜드와 비교해 ‘생산 후 한 달 이내 소비’가 가능하도록 한 차별 포인트가 첫 공략 포인트였다면 지금은 동네에서 제주 감성을 또는 제주에서 느꼈던 추억을 곱씹을 수 있는 시각과 후각, 미각을 자극하는 것으로 로컬 브랜드가 주는 매력을 검증하고 있다.
배러댄서프는 제주다운 라이프스타일을 로컬 브랜드로 만들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사업 모델로 삼았다. 그 안에 담긴 철학, ‘자연이 곁을 내어줄 때까지’의 느슨하고 자유로운 생활 방식을 공유하는 것으로 비즈니스까지 하는 꿈같은 일을 구현했다.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할 것’은 전설적인 등반가이자 서퍼 그리고 환경운동가인 이본 쉬나드가 파타고니아를 설립한 1973년부터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는 원칙이다. 파타고니아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일은 제주와 버무려지며 보다 유연해졌다. 서핑에서 시작했지만 서프보드, 웨트슈트, 왁스 등 전문용품부터 티셔츠, 모자, 비치타월, 캠핑용품, 홈웨어를 넘어 문화콘텐츠와 공간 체험, 플랫폼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서핑으로 문화를 얘기하는데 그 연결고리가 제주와 생활하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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