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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juGrapher Aug 01. 2016

64. 제주의 옛 마을

성읍민속마을

기억은 온전히 쌓여 미래로 향한다.


제주는 자연의 땅이지만 또한 역사의 땅이다.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땀이 지금의 제주를 만들었다. 그러나 안타깝다. 많은 제주의 과거가 단절됐다. 제주도 곳곳에 박물관도 있고 옛 성터도 있고 민속촌도 있지만, 100년 전의 제주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성읍민속마을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제주는 과거가 없는 현재만 있는 곳이 될 뻔했다. 제주 곳곳이 그렇듯이 성읍민속마을도 제주 4.3과 연결된다. 성읍민속마을만이 제주 4.3을 견디고 현재까지 남은 유일한 제주 전통마을이다. 예전에는 중산간지역에 여러 마을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4.3 때 모든 마을이 파괴됐다고 한다. 다행히 성읍에는 경찰서가 있던 곳이라 폭도(?)가 없다고 판단해서 파괴하지 않고 남겨놨다고 한다. 이게 사실인지 아니면 그냥 지어낸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제주에 남은 유일한 옛 마을이 성읍민속마을이다.


성읍민속마을이 아름다운 건 현재까지 남은 옛 마을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허상뿐인 민속마을들이 많은데, 성읍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최근에는 빈집들도 많이 눈에 띄지만 생명력이 여전히 이어지는 곳이다. 옛 선조들이 살았던 곳이 아니라, 현재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제주 여행을 오면 필히 가봐야 하는 유명한 관광지들이 여럿 있다. 어떤 곳은 때를 맞춰서 찾아가야 하는 곳도 있다. 유채꽃이 폈을 때는 어디를 가야 하고, 청보리를 보기 위해서는 또 어디를 가야 하고, 가을 억새를 즐기기 위해서는 또 어디를 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성읍민속마을은 관광지로 적합한 곳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계절 어느 때에 찾아가더라도 실패하지 않는 곳이 성읍민속마을이다. 대규모 꽃밭은 없지만 철마다 제주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꽃들을 마을 길모퉁에서 발견한다. 종합 선물세트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성읍민속마을을 찾아가면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언제든 실패하지는 않는다. 바다가 조금 멀다는 것만 제외하고...

초가 지붕, 흙담, 돌담 그리고 넝쿨
초가지붕 골목

사진을 편집하면서 처음에는 골목길에 핀 봉숭아를 중심으로 크롭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초가 위에 까치 한 쌍이 있는 것을 보고 까치를 살리는 방향으로 크롭했다. 사실 까치는 제주의 새가 아니다. 까마귀가 제주의 새다. 원래 제주에는 까치가 살고 있지 않았는데, 십수 년 전에 어느 대기업(아시아나)가 행사를 하면서 까치 몇 마리를 방사했던 것이 번식을 거듭해서 제주도 전역을 뒤덮었다. 원래 제주를 지키던 까마귀는 까치의 등살에 밀려나버렸다. 초가지붕 위의 까치 모습이 얼핏 정겹게 여겨지겠지만 제주에서는 이질적인 잘못된 광경이다.

초가와 돌담

돌담 뒤로 자라는 식물의 이름은 예전에 들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예로부터 초가 밑에 이 식물을 키워서 잎을 따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곶자왈 등의 숲에 들어가면 간혹 이 식물을 보는 경우가 있는데, 그곳은 원래 집이 있던 곳이라고 보면 된다. 어쩌면 4.3 때 사라졌던 옛 마을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뒷골목
정의현 객사
돌담 너머의 향교
6월의 메밀꽃 필 무렵
길모퉁에 무리지어 핀 흰꽃나도샤프란
말 모양 의자
유채가 필 때... 사진에는 이걸 찍을 때의 느낌이 없어서 아쉽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

성읍민속마을 뒤로 (북동쪽) 영주산이라는 오름이 하나 있다. 주변을 지날 때마다 한번 가봐야지라고 계속 생각만 하다가 어느 토요일에 그냥 찾아갔다. 오름 능선 중간부터 정상까지 이어진 계단이 마치 하늘로 나를 이끄는 것 같다.

주변 공터의 들꽃

그리고 대문 사진처럼 제주의 옛 하르방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성읍민속마을이다. 흔히 알고 있는 하르방 모양과는 많이 다르다. 원래 제주성과 성읍성, 그리고 대정성의 문 앞에 놓여있던 조각상이 하르방인데, 대정과 성읍의 하르방은 크기도 생각보다 작고 모양도 많이 다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하르방은 제주시에 있던 건데, 제주 목관아의 모든 하르방이 그런 모양을 한 것도 아니다. 실제 하르방은 총 48기를 만든 것 같은데 (추정), 47기만이 현존하고 서울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2개가 전시돼있고 제주에는 총 45개가 남아있다. 제주 목관아 내에도 몇 개의 하르방이 있고, 아라동에 있는 제주대학교 정문 앞에도 2기가 서있다.


** 장소 추천받습니다. (여기 사진도 찍어주세요/올려주세요.)

T: http://bahnsvill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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