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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주담기

77. 제주에 논이 있다고?

서구포 하논분화구

by JejuGrapher

제주는 화산섬이라 땅이 물을 간수하지 못한다. 그래서 밭농사는 가능하지만 논농사는 불가능하다.


...라는 것이 그냥 상식처럼 내 머리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구좌 당근, 우도 땅콩, 메밀, 보리, 귤 등 제주에서 유명한 농산물은 모두 밭에서 자라는 것들이다. 그런데 제주에도 논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의아했다. 제주의 서쪽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벼가 자라는 풍경을 볼 수는 있다. 그런데 그건 물이 가득한 논에서 벼를 키우는 게 아니라, 마른 밭에서 밭벼를 키우는 거다. 어디에 논이 있다는 걸까? 그런데 의외로 서귀포에서 자주 지나다녔던 길 옆으로 논이 있었다. 단지 내가 그 안쪽으로 들어가 보지 않았을 뿐이다.


하논이라는 지역이 있다. '넓은 논'이란 의미다. 서귀포 외돌개가 있는 곳 바로 안쪽으로 오름이 하나 있고 더 안쪽으로 큰 분화구가 있다. 하논분화구다. 한반도에 존재하는 유일한 마르형 분화구, 즉 수생 분화구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가장 큰 분화구다. 글을 적으면서 검색을 해보니 산굼부리도 마르형 분화구라고 한다. 바로 앞에 유일한 마르 분화구라는 얘기는 바로 취소한다. 어쨌든 한반도에서 가장 큰 분화구는 맞다. 오래전에는 이곳에 숲과 숲지가 형성돼있었지만, 지금은 개간을 해서 논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논농사를 하는 곳이다.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곳이라서 원래대로 습지나 숲으로 아직 남아있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은 여러 사람들의 생활터전이 됐다.

하논분화구

처음 하논분화구를 찾았을 때는 가을걷이가 끝난 후였다. 이렇게 큰 분화구가 바로 옆에 있었는데 늘 지나치면서 놓쳐버렸다.

분화구 둘레에는 귤농사를 짓고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후의 하논
초겨울에 귤은 익어간다.

여름이 돼서 다시 하논을 찾았다.

벼가 자라고 있어서 분화구 전체가 푸르다.
웅덩이에 물도 한가득 차 있다.
논 사이를 흐르는 도랑
개구리밥도 자라고 있다.
논 사이로 난 농로

지금은 고향집 주변이 밭으로 많이 변했지만 어릴 적에는 논이 많았다. 그래서 이런 넓은 논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해진다. 어릴 때는 무엇이 소중한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시절이 참 소중하다.

농부의 걸음
분화구 능선에서 내려다본 모습

가을걷이를 시작하기 전의 황금 들녘을 다시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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