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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juGrapher May 02. 2017

봄이 분다

봄바람이 여름을 몰고 왔다

바람이 분다. 따뜻한 봄바람인가 했더니 벌써 여름이다.

잘 가라는 인사도 건네기 전에 나의 봄은 또 멀어져 갔다.


특정 시기에 특정 지역에 가면 필히 가봐야 할 장소가 있다.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소문을 듣고 기대했던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본전을 뽑았다는 생각이 들 수가 있다. 봄에 제주도를 오면서 기대했던 장면은 어떤 것일까? 노란 유채꽃이 펼쳐진 광야라든가 하얀 벚꽃이 길게 이어진 전농로나 녹산로 같은 벚꽃길 등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4월 말이나 5월 초면 화려하던 유채꽃과 벚꽃은 이미 저버린 지 오래다. 그러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지금 제주에서 어떤 모습을 기대해야 할까?


겨울 내내 유채꽃과 벚꽃이 만개한 제주도를 기다렸건만, 저는 오히려 유채꽃과 벚꽃이 모두 지고 연둣빛 나뭇잎이 새로 돋아나는 지금이 더 좋습니다. 화사한 유채꽃 뒤로 누른 지난 억새가 그대로 보이고, 하얀 벚꽃과 어울리지 않는 고동색의 앙상한 나무숲보다는 지금처럼 연두색으로 산야가 덮인 모습이 좋습니다. 미세먼지 때문에 사진으로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서 별도의 사진은 첨부하지 않았지만, 아래에서부터 층층이 다른 색으로 변해가는 지금의 한라산은 참 아름답습니다. 봄과 여행의 경계에 있는 지금은 꽃보다는 새삭을 찾아서 제주도를 돌아다니면 기대치 않았던 자연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겨우내 붉던 동백꽃도 이제 그 시기가 끝나갑니다.

4월 말과 5월 초에의 제주를 찾으면 으레 가는 곳이 가파도입니다. 이때 가파도에 들어가는 이유는 섬 전체를 뒤덮은 청보리밭 사이를 걷기 위함입니다. 청보리를 보기 위해서 굳이 제주도, 그것도 가파도까지 올 이유는 없을지 몰라도 제주도에 왔다면 가파도에 들어가면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파도에 들어가지 않아도 좀 덜 알려진 길로 가다 보면 청보리밭을 자주 만납니다. 이젠 면적이 많이 줄었지만 내도동의 청보리밭이 대표적입니다. 지난 3년 동안 매년 가파도에 들어갔었는데 올해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보리밭에 핀 유채꽃과 갯무

새싹이 모두 연두색이라는 것은 편견입니다. 나름 시골에서 20년을 넘게 살았지만 연두색이 아닌 새싹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주는 이런 저의 한정된 지식의 폭을 넓혔습니다. 은빛/금빛의 새싹도 있고 노란 새싹도 있고 또 붉은 새싹도 있습니다. 특히 홍가시나무는 신기합니다. 멀리서 보면 꽃이 핀 것도 같고 그냥 불이 붙은 것도 같습니다. 붉은 새싹이 참 신기합니다. 작년부터 탐라대학교와 평화로 옆의 홍가시 군락지가 입소문을 탔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붉은 새싹이 돋았습니다. 하지만, 탐라대학교의 홍가시나무는 지난겨울 사이에 동사를 했는지 아니면 홍가시병이 돌았는지 1/3 정도는 거의 고사 상태입니다. 여전히 신기하지만 제주의 명소가 한 곳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걱정도 듭니다.

탐라대학교 홍가시나무길은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개인적으로 4월 말과 5월 초에 제주도를 찾는다면 필히 가봐야 할 곳으로 녹차밭을 추천합니다. 너른 녹차밭에서 새로 돋아나는 연두색 녹차잎으로 지금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오설록 서광다원이 가장 유명하지만 제주도에는 열 곳 이상의 녹차밭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조천의 다희연, 성읍의 오늘은녹차한잔, 서귀포의 제주다원이나 서귀다원 등은 여행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입니다. 개인적으로 오설록 한남다원과 도순다원을 좋아하지만 여행객들이 들어가 보기에는 조금 외진 곳에 있습니다.

오설록 서광다원

바람에 흔들리는 녹차잎을 동영상으로 담았습니다. 도로변에서 찍은 것이라서  자동차 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카메라 렌즈 소음 등으로 시끄럽습니다. 볼륨을 줄이고 보실 것을 권합니다. (소음주의)

오설록 서광다원

처음 이 글을 적을 때 아래 사진은 굳이 포함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또 언급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글의 흐름과 관계는 없지만 적습니다. 제주도에 유명한 관광지가 많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장소는 사유지입니다. 넓은 목장이나 목초지가 도시인들에게는 이색적이고 신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외진 곳에 있더라도 조금만 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그래서 최근에 사유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경고문이 붙거나 철조망이 쳐지는 곳들이 늘고 있습니다. -- 이런 현상에 저의 역할이 없었다고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 여러 번 밝혔지만 제가 좋아했던 삼다수목장과 새별오름 나홀로나무도 그런 곳입니다. 입소문이 나면서 여행객들이 몰려들어 울타리를 무너뜨리고 목초지를 훼손하는 경우가 꾸준히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목장주들이 울타리를 다시 치고 출입을 자제하라는 경고문을 붙입니다. 삼다수목장은 이제 출입을 하는 사람들이 없어졌지만, 새별오름 나홀로나무는 경고문이 붙기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습니다. 예전에는 목초지 사이로 50cm 정도의 좁은 길 정도만 있었는데, 이제는 1m가 넘는 흙이 훤히 다 보이는 큰 길이 생겼습니다. 원래는 도로변 갓길도 없어서 차를 정차하기도 미안했었던 곳인데, 지금은 갓길에 풀도 자라지 않는 곳이 됐습니다. 늘 끔찍한 상상을 하게 됩니다. 언젠가 저 나무가 잘려서 없어지는 상상을...

경고문을 무시하고 여전히 사람들로 붐빈다.

4월 초에 하얀 벚꽃이 만개했다면, 4월 중후반부에는 핑크색 겹벚꽃이 만개합니다. 꽃만을 본다면 겹벚꽃이 더 예쁜데 제대로 된 군락지가 없는 것이 흠입니다. 오라CC로 들어가는 길에 예쁘게 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바로 찾아갔습니다. 마침 바람이 불면서 꽃잎이 떨어졌습니다.

오라CC가는 길

위의 사진과 연결되는 동영상을 올리려고 했지만, 용량이 조금 커서 (참고. 브런치는 200MB 제한) 다른 영상을 올립니다. (소음주의)

꽃비 (오라CC)

토요일은 제주도의 서쪽을 돌아다니고, 일요일에는 동쪽을 돌았습니다. 성읍 주변에 무밭 사진을 찍기 위해서입니다. 재작년에는 하얀 무꽃을 예쁘게 찍었는데, 작년에는 무밭이 없어서 실망하였더랍니다. 하지만 올해 다시 무밭이 있다는 정보를 얻은 후에 바로 찾아갔습니다.

성읍의 무밭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사진에 담기 어려워 동영상으로 남겼습니다. 아래부터는 영상을 찍을 때 리코딩을 제외했기 때문에 무음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무꽃
바람에 일렁니는 보리와 갯무와 풍력발전기

무밭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 '수산 한 못 (도보 50분)'이라는 표지를 보고 예전부터 궁금하던 터라 어떤 곳인가 찾아가 봤습니다. 지도에서 호수로 보이는 곳이 근처에 있어서 무작정 걸어 가봤는데 그곳은 수산 한 못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검색을 해보니 차를 타고 멀리 돌아가면 바로 접근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수산 한 못은 사시사철 물이 고인 작은 호수입니다. 그래서 옛날 몽골족들이 이곳에서 말에게 물을 먹였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수산 한 못

돌아오는 길에 저녁 일몰 사진을 찍고 싶었습니다. 미세먼지가 심해서 예쁜 일몰을 기대할 수는 없었지만, 70-200mm 렌즈를 구매한 이후에 일몰이나 일출 사진을 찍은 적이 없어서 200mm에서 화각이 어느 정도 나오는지 확인차 그냥 찍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수산리에서 용눈이오름을 경유해서 북쪽 해안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용눈이오름 옆으로 펼쳐진 보리밭과 풍력발전기의 모습이 평화로워서 또 잠시 정차했습니다.

보리밭과 풍력발전기

눈치채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사진의 풍력발전기는 저 위의 무밭 사진/영상에 등장하는 풍력발전기입니다. 이 풍력발전 단지를 사이에 두고 남쪽에서 북쪽으로 찍은 것이 무밭 사진이고, 북쪽에서 남으로 찍은 것이 바로 위/아래의 보리밭 사진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청보리

마지막으로 김녕해변 근처에서 찍은 4월 마지막 날의 일몰... 200mm도 모자랍니다. 일출/일몰의 오메가를 제대로 찍으려면 도대체 얼마나 좋은 장비를 가져야 하는 건지... 로또라도 되면 모를까... (포기)

김녕성새기 해변 근처에서 본 일몰

일몰 사진이라고 했는데 워터마크가 애매한 곳에 찍혔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은 지는 해를 찍으려던 것이 아닙니다. 바다에서 하늘까지 이어지는 색의 변화를 한 장에 담고 싶었을 뿐입니다. 해를 보고 싶으신 분은 모니터를 잠시 꺼고 밖으로 나가셔서 실물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실 4말5초에 제주에서 할 수 있는 대표 관광 상품은 고사리 캐기일텐데... 새로 돋아난 고사리 사진도 찍어서 중간에 끼워넣을 생각도 했지만...


이렇게  글을 마무리 지었으나 메이데이에 몇 컷 더 찍었습니다. 저는 원래 스틸컷파인데, 동영상을 찍는 것도 나름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바람이 부는 날이면 스틸컷은 한계가 있습니다. 장노출로 바람의 역동성을 나름 표현할 수도 있지만 동영상만큼 확실하지 않습니다. 편집이 귀찮지 않고 용량의 압박만 없다면...

흰색 철쭉
봄에 오히려 붉은 단풍


바람이 불어옵니다.

봄바람인가 싶었는데 더위가 묻어납니다.

이제 5월인데 벌써 여름인가 봅니다.


T: http://bahnsville.tistory.com/

F: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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