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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juGrapher Sep 26. 2017

[제주한장] 고향의 가을

항파두리성의 코스모스

코스모스는 타임머신이다.

언제나 어릴 적 고향으로 날 이끈다.

가을날 이른 아침에 학교로 가던 시골길에서 날 반기던 것은 코스코스였다.

물론 제주는 내 고향이 아니다.

그러나 코스모스가 피면 어디든 고향이고 언제든 가을이다.


코스모스를 보면 늘 어릴 적에 학교와 교회에 가던 길 옆에 폈던 코스모스가 떠오른다. 봄이면 개나리가 폈고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폈다. 평평한 대지 한가운데로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면서 우린 인공적으로 조성된 높은 언덕길을 걸어올라야 했다. 어릴 때는 자전거를 타고 가면 한 번쯤은 멈춰 서야 할 만큼 긴 언덕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이 돼서야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자전거로 올라갔던 것 같다. 물론 숨을 헉헉 이면서... 그 언덕길 옆으로 봄이면 개나리가 폈고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폈다. 지금은 도로를 넓히면서 개나리도 다 뽑혀버렸고 가을에도 더 이상 코스모스가 피지 않는다. 하지만 내 머리 속에 고향의 봄은 노란 개나리고 가을은 울긋불긋한 코스모스다. 그래서 어디든 개나리가 피면 고향의 봄이 생각나고 코스모스가 피면 고향의 가을이 생각난다. 고향을 그리고 고향의 계절을 생각나게 하는 메타포가 있어서 난 참 다행이다.


제주에 왔을 때 좀 놀랐던 것이 있다. '코스모스 = 가을'이란 내 오랜 지식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제주에선 오히려 아직 더운 8월에 더 많은 코스모스가 피는 것 같다. 어떤 곳은 5월이나 6월에도 폈다. 코스모스는 가을꽃이 아니었다. 재작년의 여름을 생각하고 8월 중순에 코스모스를 기대하고 녹산로로 향했지만 실망하고 돌아왔다. 올해는 여느 때보다 늦은 최근에 코스모스가 많이 폈다는 얘기를 건너 들었다. 페이스북에 함덕 서우봉에서 찍은 코스모스를 보고 9월 초에 바로 찾아갔지만 이미 많이 저버린 뒤였다. 그리고 2주 전에 항목유적지 항파두리성에 코스모스가 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꼼지락 대느라 지난 주말에 늦게 찾아갔다. 다행히 코스모스가 아직 지지 않았다. 처음 제주에 내려왔던 2008년도 아니면 2009년도 가을에 항파두리의 코스모스 밭이 참 멋있었다는 기억이 난다. 그때만은 못하지만 고향의 가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어 좋았다. 봄부터 항파두리성에는 유채꽃, 벚꽃, 해바라기, 수국 등으로 계절을 가늠할 수 있다.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메밀꽃)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

다음 주면 추석이라 고향에 내려간다. 어릴 적 봤던 코스모스를 다신 볼 수 없지만 고향에 가기 전에 미리 고향의 가을을 느꼈다. 집에서 조금 멀지만 금호강변에 올해도 어쩌면 코스모스 밭을 조성해놨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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