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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juGrapher Jan 08. 2018

겨울엔 1100고지

게으른 자의 겨울나기

전날 눈이 내렸지만 한라산을 통과하는 도로는 제설이 끝나서 차량 통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토요일은 눈비 소식이 없어서 만약 한라산을 등반하면 멋진 설경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게 합니다. 마침 토요일에 윗세오름에 올라가자는 주변의 계획도 있었지만, 저는 전날 사려니숲길이 있는 비자림로에서 집까지 사진을 찍으며 걸어오느라 많이 피곤해서 등반에는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어파치 일찍 등산도 못할 테고, 그냥 느낌상 토요일 아침은 한라산에 구름이 많이 꼈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안갯속을 운전해가서 1100고지의 상고대를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날씨가 흐리다면 조금 늦게 나가도 별 차이가 없을 거라는 근거 없는 생각에 그냥 늦게까지 TV를 보면서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사진은 제가 예상했던 것과 다릅니다. 점심 식사도 해야 하니 옷을 갖춰 입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쨍 하니 맑은 하늘...ㅠㅠ

아직은 늦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1100고지로 차를 몰고 갑니다. 이미 햇볕이 강하게 내려쬐서 전날의 눈과 상고대는 이미 많이 사라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게으른 자가 제주에서 겨울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은 만끽할 수는 있었습니다. 조금 더 일찍 나왔더라면 이라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과거에 대한 가정이나 미래에 대한 단순 희망/두려움을 가정하기보다는 현재 눈 앞에 펼쳐진 세상에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100고지 초입의 소나무길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는 1100도로에서 해발고도 1050m 지점에 갓길에 정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위로 소나무길이 펼쳐집니다. 평소에도 참 아름다운 길이지만 상고대로 하얗게 변한 소나무길은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없는 멋진 풍경입니다. 전날 눈 덮인 비자림로에 대한 갈망을 충족하지 못했기에 1100도로의 하얀 소나무길은 더욱더 제 눈을 사로잡습니다. 비자림로도 대한민국에서 아름다운 도로로 뽑히지만, 상고대로 새하얗게 변한 1100도로, 특히 소나무 숲 구간의 아름다움은 어느 도로 못지않습니다.


소나무을 통과하는 1100도로.

북쪽(오른쪽 사진)으로는 그늘이 져서 상고대가 하얗게 남아있는데, 남쪽으로는 강한 햇볕 때문에 이미 많이 놀아버린 후입니다.

밑에서 올려다본 눈이 쌓인 소나뭇잎

가지마다 하얗게 핀 상고대.

날씨가 맑은 날 굳이 겨울산을 오르고 또 (제주에서는) 1100고지를 찾는 이유는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하얀 상고대를 보기 위함입니다. 구름/안개가 낀 날도 나름 운치가 있지만 맑은 날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1100고지 초입...

정오가 지난 시간이라서 차량이 몰려서 혼잡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늦은 시간에 강한 햇볕에 나무의 밑동부터 상고대가 녹기 시작해서 아쉬움이 많습니다.


1100고지 휴게소를 배경으로 상고대 사진.

한라산을 배경으로 상고대 사진.

뒤쪽으로 보이는 한라산의 능선은 윗세오름으로 오르는 '영실코스'입니다. 가운데 사진의 왼쪽 상단에 살짝 하얗게 보이는 것이 백록담 (서벽)입니다. 2015년 크리스마스에 윗세오름을 오른 후에 벌써 2년이 넘도록 오르지 않았습니다. 날을 잘 맞춰서 그냥 차를 타고 1100고지에 와도 예쁜 상고대를 볼 수 있다는 점이 굳이 힘들려서 윗세오름까지 오르지 않게 한 핑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난겨울에 사라오름은 2차례 올랐는데, 이런 날씨와 조건에 사라오름에 한 번 더 올라보고 싶다는 욕심은 생깁니다.

1100고지 자연습지의 풍경..

눈 덮인 돌이 참 멋스럽습니다. 남쪽으로는 햇볕에 눈이 많이 녹았고 (아래 왼쪽), 북쪽으로는 눈이 바위의 형태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상고대 세로사진.

이게 마지막이 아니라는 바람을 가지고... 그리고 어쩌면 겨울이 지나기 전에 윗세오름이나 사라오름을 한번 다녀올 수 있으리라를 기대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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