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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juGrapher Jan 15. 2018

제주 폭설

눈 덮인 비자림로를 찾아서...

제주에서 겨울나기는 별로 좋지만은 않다. 추위를 극도로 싫어하는 이들에게는 대부분 영상의 기온인 제주가 좋겠지만, 단순히 뭔가를 보고 즐기기 위한 겨울 제주는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제주에서 맛집이나 예쁜 카페를 찾는 이들도 많지만 사실 그런 건 서울이나 근교에 더 많다. 낙엽이 다져서 고동색의 한라산이나 생기 없는 거의 검은색의 침엽수림에 매서운 바람이 부는 제주의 겨울은 힐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제주의 겨울이 좋은 이유는 가끔씩 폭설이 내린다는 점이다. 눈 덮인 한라산을 한번 올라보면 그 맛을 쉽게 잊지 못한다. 제주의 겨울은 겨울 한라산을 오르기 전과 후로 나뉜다.

제주에서 눈이 내렸을 때 할 수 있는 것 (버킷리스트)

백록담 등반 https://brunch.co.kr/@jejugrapher/64

윗세오름 등반 https://brunch.co.kr/@jejugrapher/83 https://brunch.co.kr/@jejugrapher/73

1100고지에서 상고대 보기 https://brunch.co.kr/@jejugrapher/92 https://brunch.co.kr/@jejugrapher/154 https://brunch.co.kr/@jejugrapher/184

맑은 날 사라오름의 상고대 보기 https://brunch.co.kr/@jejugrapher/156

눈 오는 날 516 숲터널 걷기 (별도 포스팅 없음. 2월 사진 중) https://brunch.co.kr/@jejugrapher/182

눈 덮인 비자림로 (사려니숲길 입구) 걷기

등반, 걷기라고 표현했지만 가서 사진 찍기가 더 적합하다. 우선 앞에 3개는 지난 몇 년 동안 자주 했기 때문에 굳이 버킷리스트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뒤의 3개는 지난겨울의 버킷리스트였고 사라오름과 숲터널은 지난겨울에 완수했지만, 끝내 눈 덮인 비자림로는 실패했었다. 재작년 폭설 때 비자림로를 가보지 못했던 것이 여전히 날 제주에 묶어두고 있다.


네. 이번 포스팅은 마지막 눈 덮인 비자림로 탐방입니다. 재작년 폭설만은 못했지만 아쉬움과 미련을 떨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판교로 올라오는 많은 요구가 있었지만 제주에서 겨울을 한 번 더 보내고 싶은 욕심에 봄에 가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그저 따듯하게 겨울을 보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비자림로에 대한 미련이 여전히 많이 남을 것 같았습니다. 지난겨울에 눈 올 때 비자림을 찾았지만 눈만 왔을 뿐 눈이 덮인 건 아니었습니다. (https://brunch.co.kr/@jejugrapher/157 -- 굳이 버킷리스트를 더 추가하자면 눈 덮인 삼다수목장과 나홀로나무 사진 찍기도 포함이지만, 삼다수목장은 이젠 출입을 통제하고 있고 [링크의 삼다수목장은 울타리 밖에서] 나홀로나무는 월동장비가 없이 찾아가기가 힘듭니다. 물론 나홀로나무 사진을 안 찍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딱 일주일 전에도 눈 와서 비자림로를 찾았으나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이번 겨울의 목표를 비자림로로 잡아뒀고, 그래서 일기예보에 맞춰서 판교 출장 날짜를 잡곤 했습니다. 지난 주도 출장 신청할 때는 일기예보상에는 특별한 것이 없어서 출장을 잡았는데 판교에 있는 동안 제주의 폭설을 뉴스로 접했습니다. 아... 그나마 가능성은 목요일 저녁에 제주로 돌아오면 금요일에 잘 하면 사진 찍으러 갈 수 있을 것 같다 정도였습니다. 자세히 적으면 얘기가 길어질 테니, 목요일 저녁에도 제주공항 제설 때문에 1시간 30분 이상을 김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늦은 시간에 무사히 제주에 도착했습니다.


금요일 아침 일단 휴가 신청하고 (회사의 휴가 정책이 까다롭지 않다는 점은 참 다행입니다.) 사진을 찍으러 나갈까 말까를 고민했습니다. 지난 며칠간 눈은 많이 내렸지만 윈드시어가 발동될 만큼 바람이 세게 불어서 비자림로의 삼나무에 눈이 제대로 쌓여있을까? 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래도 무작정 집에만 있을 수가 없다는 생각에 그냥 마을 주변이라도 사진을 찍자는 생각으로 길을 나섭니다. 계획은 지난주처럼 버스를 타고 비자림로까지 가서 집까지 걸어내려오는 것입니다. (https://brunch.co.kr/@jejugrapher/183) 그런데 한라산 516도로를 운행하는 모든 버스가 운행중단입니다. 보통 때는 오전 10시경이면 눈길이 웬만큼은 다 녹아있고 또 516도로가 주요 도로라서 재설을 완료했겠지만, 한파로 눈은 녹지 않았고 이번에는 시내에 내린 눈을 먼저 제설하느라 한라산을 통과하는 도로의 제설은 늦어졌습니다. 비자림로까지는 거의 8km나 가야 하고 또 돌아오는 것도 고려해야 하니 선뜻 나서는 것이 망설여졌지만, 가는 데까지만 가보자는 생각으로 일단 걷기 시작했습니다.


제설이 전혀되지 않은 도로의 모든 길은 통제 상황입니다.
516도로에서 내려다 본 제주시

이때만 하더라도 날씨가 나쁘지는 않고 눈이 더 이상 내리지 않습니다. 비자림로까지 가면 돌아올 때는 제설이 어느 정도 이뤄져서 버스를 타고 내려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또 역으로 비자림로까지 갔는데 눈이 제대로 쌓여있지 않겠다는 불길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조금 걷다 보니 제 뒤로도 이 길을 걷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분도 산행을 좋아하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알고 보니 마방목지 아래쪽에 있는 한라생태숲까지 걸어서 출근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제주골프장 앞의 소나무숲, 마방목지의 소나무 군집, 그리고 제주골프장 내의 나무


뒤에서 밀어주는 눈바람에 힘을 얻어 비자림로까지 마침에 다다랐습니다. 아주 기대했던 만큼의 눈이 쌓인 것은 아니지만 지난 두 번의 실패는 보상해줄 만큼의 눈이 쌓여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센 바람에 날리는 눈발 때문에 사진을 찍어도 눈으로 보고 있는 걸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비자림로 깊숙이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거센 눈발과 옅은 안개 (구름)로 사진 찍기가 좋지는 않았습니다.
조금 걸어가니 삼나무 방풍림이 거센 눈발을 막아줘서 차츰 사진 찍기 좋은 여건이 갖춰집니다.
비자림로

힘들게 비자림로까지 걸어서 왔는데 반대편에서 4륜구동 SUV 한대가 휙하니 지나갑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는 아무도 밟지 않은 길이었는데... 평소에는 세단을 더 선호하는 편이지만, 이런 극한 환경을 고려해서 (월동장비를 갖춘) 4륜구동의 SUV를 타고 다녔어야 했는데라는 아쉬움이 살짝 남는 순간... (마지막에 동영상을 찍을 때는 더욱 그런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비자림로를 들어갈 때는 70-200 렌즈를 사용했는데 돌아올 때는 16-35 렌즈로 교체해서 넓은 화각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시 찾아가서 하나의 렌즈만을 가져가야 한다면 70=200을 챙길 듯...

반사판에 비친 본인의 사진을 찍기 위한 사진임.

평소에는 도로 표지판이 사진 찍는데 거슬렸지만 흰색과 검은색의 무채색 세상에는 나름 변조를 주는 포인트가 됩니다.


세로 사진 한 장.


그리고 동영상... 아이폰은 낮은 온도에 배터리가 완전히 방정돼버렸고, 카메라의 동영상 기능으로 찍었는데 걸으면서 찍은 거라서 많이 흔들립니다. 차를 타고 지나갈 수 있다면 좀 더 긴 구간을 멋지게 동영상으로 담았을 텐데...

그 후로 오랫동안 주림 배, 아픈 다리, 거센 맞바람의 눈보라를 해치고 집까지 걸어서 내려왔습니다. 12시가 넘어서야 516도로에 제설차가 지나갔지만...


동영상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다음날 다시... 눈은 많이 녹았지만 (아이폰 세로 모드)


T: http://bahnsville.tistory.com/

F: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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