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지에 한라산을 담다.
새로운 곳을 알게 되는 것은 즐거움이다.
이미 제주 생활 8년 째입니다. 외진 곳에 있는 사유지나 유료입장하는 곳들을 제외하고 제주의 거의 대부분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봤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장소를 종종 발견합니다. 인터넷에서 누군가의 사진을 통해서 또는 지역 뉴스를 통해서 새로운 장소를 알게 되면 -- 특히 사진을 찍기에 좋은 곳이라면 -- 빨리 찾아가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습니다. 올해초에도 그런 곳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소천지'라는 곳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그저 한우를 파는 식당처럼 들리지만, '작은 천지'라는 의미입니다. 즉, 백두산 천지의 미니어처처럼 생긴 해안가에 용암이 굳은 작은 웅덩이입니다.
위치는 지도에서 검색해봐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예상했듯이 검색 결과는 대부분 한우식당뿐입니다. (다음지도에는 위치 등록 요청해놨습니다.) 아래 지도에 X 표시해놨듯이, 대략적인 위치는 서귀포 정방폭포와 보목항 사이에 있습니다. 해안가에 위치해있고, 일주도로에서 더 들어가야 하는 곳에 있어서 웬만한 제주 사람들도 소천지의 존재를 잘 모를 듯합니다. 저도 7년 만에 처음 들었습니다. 오히려 올레 6코스에 포함 돼있어서 올레길을 제대로 걸은 외지인들은 이곳을 알고 있을듯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새로 알게 된 곳이어서 찾아갔습니다. 어떤 사진을 찍으면 좋을 지에 대한 감도 없었고, 그저 새로운 곳이라서 멀리 차를 몰았습니다. 들어가는 입구도 잘 몰라서 대강 근처에 차를 세우고 숲길을 헤쳐지나가서 찾아냈습니다.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한라산이 보여요?'라고 물었습니다. 물론 흐릿하지만 한라산이 보입니다. 그러나 질문의 요지는 소천지에 반영된 한라산 모습이 사진에 담기냐는 것입니다. 처음 찾아간 날은 미세먼지 때문에 멀리 있는 한라산의 모습이 호수에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이 사진에 살짝 보이는 듯하지만 한라산이라고 부르기가 조금 민망합니다. 소천지를 찍은 다른 사진들을 보다 보니 한라산이 반영된 사진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표가 생겼습니다. 소천지에 담긴 한라산의 모습을 찍자.
소천지 위쪽에 작은 쉼터가 있는데, 쉼터에서 본 소천지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보면 백두산 천지를 닮은 듯도 합니다. 뒤로 문섬과 서귀포항이 보입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다시 찾아갔습니다. 역시 미세먼지가 심해서 한라산 사진을 찍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한참 벚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 다시 소천지를 찾았습니다. 원래는 서귀포 지역의 벚꽃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지만, 동행인에게 이곳을 알려주기 위해서 지나는 길에 잠시 들렀습니다. 벌써 소천지 세 번째 방문인데, 역시나 그날도 미세먼지 때문에 한라산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도전도 실패입니다.
네 번째 방문입니다. 모처럼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제주시는 날씨가 청명하고 한라산 위로 구름만 조금 보였습니다. 그런 한라산의 모습을 배경으로 녹차밭 사진을 찍으러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서귀포 쪽으로 넘어가니 안개가 짙었습니다. 그래서 전부터 찍고 싶었던 안개낀 녹차밭 사진만 찍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다시 제주 마망복지를 지나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어쩌면 오늘 소천지의 한라산을 담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다시 차를 돌려 서귀포로 향했습니다. 아뿔사. 그런데 서귀포시는 안개가 짙었습니다. (제주도는 별로 크지 않은 듯하지만, 제주시와 서귀포시, 그리고 동쪽과 서쪽, 중산간과 해안가에 따라서 날씨가 많이 다릅니다.) 특히 해무가 심해서 사진을 포기하고 그냥 정방폭포를 찾아갔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 안개가 좀 옅어져서 다시 소천지로 돌아왔는데, 역시 해무 때문에 한라산을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반대편의 섶섬 사진만 찍고 돌아왔습니다. 해무가 옅을 때 정방폭포에서 보는 섶섬의 모습이 참 좋은데... 제주에서 여러 사진을 찍었지만 여전히 후회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해무가 낱게 낀 날 정방폭포에서 보는 섶섬의 모습이 참 신비로운데, 그런 순간에 귀찮아서 카메라를 들고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참고) 이 당시만 해도 제주 사진에 대해서 큰 애착은 없었을 때였습니다.
5월 5일에도 사진을 찍으러 나왔습니다. 특별히 목적지를 정한 것은 아니지만, 이틀 전에 (위의 섶섬 사진을 찍은 날) 보목리/소천지에 다녀왔기 때문에 서귀포까지 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을 나서는데 하늘이 매우 맑고 한라산의 모습을 선명했습니다. 어쩌면 오늘은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냥 보목리로 갔습니다. 예상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소천지에 깨끗하게 한라산이 반영됐습니다. 화산암에 엎드려서 사진을 찍는 것이 만만치 않지만, 이런 사진을 얻고 나면 기분이 좋습니다.
이렇게 해서 '소천지에 반영된 한라산'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버킷리스트를 완성하는 듯했지만, 더 큰 욕심이 생겼습니다. 처음 소천지의 존재를 알았을 때는 겨울이었고 한라산 정상에 눈이 덮여있었습니다. 눈 덮인 한라산이 반영된 소천지의 모습을 담아야지 원래 목표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주에 얼마나 더 오래 머물러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시 겨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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