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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juGrapher May 09. 2016

52. 올인의 추억

섭지코지

모든 추억도 언젠가는 잊힌다.


사람들에 의해서 그리고 자본에 의해서 제주가 망가져가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무분별하게 들어서는 식당과 카페 그리고 인파로 예전의 모습을 상실해가는 곳도 있고 (월정리 해변이나 애월 해안도로), 중국의 거대 자본으로 망가지는 곳도 있습니다 (한라산 중산간이나 각종 대형 리조트). 온평리 일대는 제2공항 때문에 또 시끄럽습니다. 제주가 변해가는 많은 곳들이 있지만,  오래전 제주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어쩌면 가장 안타까운 장소 중 한 곳은 국내 대자본에 의해 잠식된 섭지코지가 아닌가 합니다. 이젠 측박한 제주의 자연을 느끼기엔 너무 멀리 갔습니다.


처음 제주에 내려왔을 때 섭지코지를 자주 찾았습니다. 비록 제주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2000년도 후반에 한참 뜨고 있는 관광지였습니다. 2003년 드라마 '올인'과 함께 본격적으로 개발됐고 피닉스 아일랜드와 함께 현재의 모습을 갖춘 듯합니다. 그래서 제주를 온전히 알기 전인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지만) 2000년대 말에는 그런 잘 가꿔진 섭지코지가 좋았습니다. 거칠고 측박한 날것의 제주보다는 사람의 손을 조금 탄 잘 가꿔진 아름다움이 좋았던... 개발 전의 섭지코지의 모습을 모르는 저로서는 사람의 손을 거친 잘 정리된 그곳이 좋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잘 찾지 않았습니다. 지난 주말에 글에 넣을 사진을 찍기 위해서 잠시 다녀왔습니다. 여전히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이고 깨끗한 해변이 있고 바람이 불고 또 깨끗하게 정리된 섭지코지... 개발이 진행되기 전의 섭지코지가 어떤 모습이었을까? 가 이젠 늘 궁금합니다. 어쩌면 그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 개인적으로 나았을 수가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개발 전의 모습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다면 아마도 섭지코지를 찾을 때마다 마음이 아주 아플 것 같습니다. 지켜주지 못한 것은 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서귀포/표선 쪽으로 난 해안도로에서 보는 섭지코지와 성산일출봉
섭지코지 부둣가에서 보는 섭지코지
섭지코지해변
섭지코지 해변 (안쪽, HDR)
여전히 거친 제주의 자연을 볼 수 있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더 큰 억새는 원래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지 아니면 개발 과정에서 심겼는지 모르겠지만, 억새가 있어서 여기가 제주라는 느낌을 받는다.

등대에서 내려다 본 산책로
(예전의) 올인하우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쿠키하우스가 됐다. 건물 명칭도 기억나지 않는다.
민트에서 내려다 본 바다. 여름에 꽃이 폈을 때 이 뷰에서 다시 사진을 찍어보면 좋을 것같다.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지니어스 로사이.
그런데 몇 년 사이에 건물벽의 글자마저 지워졌다.
지니어스 로사이 내부에서 보는 성산일출봉
빈부의 벽.

일부러 저 돌담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사진을 마지막에 넣었다. 저 돌담이 마치 빈부의 벽을 보여주는 것 같다. 벽의 저 안쪽에는 부자들의 동네고, 이 밖은 가난한 단체 관광객들이 지나는 통행로다. 낮은 볼품없는 돌담을 사이에 두고 양쪽의 처지가 확연히 다르다. 섭지코지, 더 나아가 제주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 장소 추천받습니다. (여기 사진도 찍어주세요/올려주세요.)

T: http://bahnsville.tistory.com

M: https://medium.com/jeju-photography

F: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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