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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juGrapher Jan 26. 2016

S8. 고립일기

제주 폭설, 독거남의 3일간의 기록

7년 만의 한파 그리고 32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 제주 이야기다.


신문 방송에서는 제주 공항에서 발묶인 관광객들 이야기로 시끄럽지만, 한라산 중산간의 어느 곳에 어느 독거남이 3일간 고립된 생활과 탐험을 했다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권 밖에 있다. 폭설로 고립된 지난 3일간의 주변 탐험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정리하려 한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해발 고도 약 350m의 중산간에 있다. 더 높은 백록담이나 윗세오름, 성판악 등에는 더 많은 눈이 내렸겠지만, 그래도 중산간은 해안이 가까운 제주 시내보다 더 많은 눈이 내렸다. 뉴스에서 제주 시내에 차들이 정차한 것을 보면 '뭐 저 정도 가지고...'라며 콧방귀를 낀다. 그냥 자동차에 쌓인 눈만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지난 3일 동안 3~40cm 이상 쌓인 것 같다. 미국의 동부 일대는 더 큰 눈폭풍이 몰려왔다고 하지만, 지금 제주에서 8번째 겨울을 맞고 있는데 가장 많은 눈이 한꺼번에 내렸다. 32년 만의 기록이라고 하니... 어쨌든 안전을 위해서 차도 움직일 수 없이 나는 그렇게 고립됐다. 토, 일, 월 (휴가) 그렇게 3일간의 주변 탐험을 정리한다.


처음에는 하루에 3~4장의 사진을 선별해서 10장 내외로 정리하려고 했지만, 지나간 스팟마다 한 장씩의 사진은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28장의 사진이 모였다.


첫째 날.

회사 동료들과 오후에 서귀포로 넘어가서 과메기 파티를 하기로 약속이 잡혔다. 한파와 함께 늦은 오후부터 눈이 시작된다고 예고됐지만 일단 약속은 잡았다. 토요일 아침에 여유롭게 일어났는데 10시 경에 급한 카톡 메시지가 날아왔다. '오늘 힘들겠죠? 눈 엄청 쌓였던데.' 그냥 예정보다 빨리 눈발이 날리나 보다 싶었다. 그래서 창문을 열어봤는데... 머리를 최대한 빨리 굴리기 시작했다. 고립을 예상하고 먹을거리는 미리 사뒀지만 뭘 하고 보낼지는 계획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중무장을 하고 주변을 걷고 사진을 찍기로 했다. 그리고, 첫날의 패착은 스패츠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등산도 아닌데 스패츠를 부착하게 될 줄이야...


첫날은 그냥 제대 후문을 중심으로 서쪽을 돌았다. 둘째 날은 동쪽을 돌았고 (동쪽 코스는 일전에 몇 번 돌았기 때문에 가다가 돌아왔다는 표현이 맞다.), 그리고 세째날은 남쪽에 있는 오름에 올랐다.

창문을 열어봤다. 아, 오늘 심각하구나.
눈쌓인 골목길. 아직은 1/4도 안 왔을 때...
산천단.

산천단은 600년 수령의 곰솔 (검은 소나무)이 주인공이지만, 그냥 이 사진이 고즈넉하게 느껴져서 이걸로 선택했다.

눈 덮인 태양계 (별빛누리공원)
제주대학교 앞의 벗꽃, 아니 눈꽃길.
제주대 교정에서 눈썰매를 즐기는 아이.

제주에서 아쉬운 것 하나는 스키장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렇게 눈이 오면 눈썰매를 즐긴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자동차 트렁크에 눈썰매 한두 개 정도는 모두 가지고 있다. 보통 제주 마방목지, 왕벚꽃 자생지, 과학고 옆, 그리고 어리목 입구에서 눈썰매를 많이 탄다. 제주대학교도 좋은 장소지만 앞서 말한 곳보다 지대가 낮아서 눈이 더 빨리 녹아버린다. 이렇게 눈 쌓인 날이면 스노우 타이어와 체인을 잘 갖춘 SUV로만 이동하는 게 안전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집에서 편하게... 월동 준비가 잘 된 차가 있었다면 더 멋진 곳으로 돌아다녔을 텐데... 이렇게 하루가 끝났다.


둘째 날.

어제는 서쪽을 한 바퀴 돌았으니 오늘은 그냥 동쪽, 회사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이미 눈 온 날 회사까지 걸어가서 다시 제주대학교를 돌아오는 것을 몇 차례 해봤지만 이렇게 눈이 많이 온 날 걸어본 적은 없었다.

집을 나오니 이런 하늘이 보였다.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백록담까지는 아니지만 뒤로 한라산도 잘 보였다.
그러나 강풍과 함께 눈보라가 몰려온다. (삼의악과 목장)
눈보라를 뚫고 더 가니 간간히 햇빛이 비친다. (삼의악)
2층 주차장에서 보는 카카오스페이스닷원.
회사까지 왔으니 인터넷하는 하르방 사진은 남겨야지...
지금은 카카오오름으로 바뀐 다음오름을 돌아서 닷투로 내려갔다. 여기 즘으에서 아이폰이 완전 방전됐습니다.
닷원과 닷투 사이길에서 본 닷원.
눈보라가 심해서 닷투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었다.
이동하는 동안 다행히 눈보라가 잠잠해져서 다른 각도에서 닷투 사진을 찍었다.
516도로에서 보는 삼의악.

삼의악 사진을 계속 보여주는 것은 일종의 복선이다. 그리고 제주에서 아쉬운 것 중에 하나는 겹겹이 쌓인 능선을 보기 힘든데 눈보라 때문에 삼의악에 겹겹이 나무숲 능선이 있다는 걸 알았다.

산천단의 바람카페.

3~4년 전만 하더라도 제주도에 카페는 별로 없었다. 당시 유명한 카페였는데, 그때 주인장은 지금 커피 트럭으로 전국을 돌고 있다. (겨울 동안은 제주에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둘째 날이 지났다.


세째날.

지난 복선에 따라 삼의악 (새미오름)에 올랐다. 차를 타고 제주대 교정을 올라오다 보면 뒤로 오름이 하나 보이는데 삼의악이라는 오름이다. 근처에 있지만 자주 찾지는 못했다. (세 번 정도?)

삼의악을 가는 숲길. 누군가 먼저 지나가서 그 발자취를 따라가느라 조금 편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이런 시베리아스런 철문이 있나.
삼의악 입구에서 만난 풀을 뜯고 있는 말. 내려오는 길에 내 앞을 가로막아서 식껍했다.
눈덮인 산길을 오르는 건 참 힘들다. 그럴 때면 여유를 갖고 하늘을 본다.
삼의악 정상에서 보는 한라산은 구름에 가렸다. 마음의 눈으로 보세요.
삼의악 정상에서 보는 제주시 (카카오스페이스를 중심으로 첨단과학단지)
제주국제대 교정.

그냥 바로 집으로 돌아가기가 아쉬워서 회사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많은 이들이 휴가 또는 재택 근무지만, 그래도 출근한 동료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역시 다들...

닷투 옆 인도.
닷투 주차장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오토바이.
집 옆 편의점에 달린 고드름.

3일동안 총 4만보 정도를 걸었다. 첫날은 약 1.3만보, 세째날은 1.4만보를 걸었고 둘째날은 4천보 정도 걸었을 때 아이폰으로 동영상을 찍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방전이 돼서 걸음수를 제대로 기록하지 못 했다. 축구를 하면서 발목을 잠시 삔 후로 운동도 제대로 못했고 겨울이 된 후로 방에서 거의 누워서 살다시피 했는데, 악천후 속에서 오히려 운동을 할 수가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지난  3일간의 고립과 탐험 일기를 마칩니다.


P.S., 큰 길은 제설이 거의 완료됐지만 마을로 들어가는 사잇길은 아직 제설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운전할 수가 없다. 오전은 재택 근무였는데, 오후에는 출근을 해야할 것같아서 또 걸어서 회사까지 왔다. 도착해서 기념 사진을 찍고 카톡을 확인하니, 오후에도 재택 근무로... 젠장. 어쨌든 출근해서 점심은 해결했다.


** 장소 추천받습니다. (여기 사진도 찍어주세요/올려주세요.)

T: http://bahnsville.tistory.com

M: https://medium.com/jeju-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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