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웠던 지난날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by 제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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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인간이라 함은 자신이 살면서 알아차린 전체가 아닌 어느 한 부분만을 더해 이럭저럭 살아간다.


물론, 모두가 같은 경험이지 않고 무엇보다 주의를 기울이는 영역이 다른 건 분명하다. 하지만 추억의 역치가 강한 외골수도 상처가 있다면, 그건 ‘첫사랑’이라는 쓸모없는 단어가 남긴 흉터일 것이다.


이 영화는 누구나 경험하는 그 어느 한 부분에 관한 이야기며, 완성될 줄 알았지만 좌초될 수밖에 없었던 순수하고 절실했던 모두의 첫사랑을 들추어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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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지옥인 짝사랑의 세계관에서 션자이는 지옥을 거느리는 사신이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괜스레 뒷문을 박차고 나와 누군가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같은 주번이 되기를 기도한 순간이 떠오르거나. 칠판지우개를 분필가루 제거기로 청소하는 시간에 은근슬쩍 “중간고사 잘 봤어?”하고 울대를 부여잡으며 질문한 경험이 있다면, ‘션자이’에 대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반면, 커징텅은 수업 시간 교과서 표지를 캔버스 삼아 마음껏 창작하는 친구다. 왜 체육 시간이 취소되면 상실감을 느끼는 그런 친구가 있지 않은가? 수업 시간이 끝남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신명 나게 복도로 뛰쳐나가 자신의 절친이 있는 반으로 향한다. 그렇지 않은 순간은 잠에 들어 있을 때가 유일하다.


영화는 학창 시절을 조명하며, 계획을 세워두지 않은 우연으로 가까워진 둘 사이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기시감이 느껴진다면 지극히 올바른 중고등학교 생활을 했다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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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징텅이 고백해 주면 정말 기쁠 텐데.”


남자들이 모르는 여자들의 마음은 이 상황에 이렇게 나타난다를 가장 잘 보여준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는 입장에선, 션자이도 커징텅을 좋아한다면 표현하면 되지 않느냐 할 수 있지만, 그게 우리 삶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라는 걸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알려준다.


영화가 재밌는 건, 그런 지점에 있다. ‘과연, 그랬다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의 시선. 분명 경험해보지 않음에도 선명히 느껴지는 선택의 기로들. 그 모든 결과를 만들어낸 건 나였음을 깨닫게 한다.


우리가 만들어진 사랑에 열광하는 이유는 선택할 수 있었던 상황들을 적당히 우연이란 핑계를 욱여넣어 만든 이상적인 기승전결을 갖추고 있어서다. 하지만 진짜 삶은 드라마가 아니다. 나아가기 위한 수많은 선택은 우연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랑이 가운데로 모이기만 하는 건 판타지다.


서로에게 사각지대가 없길 바라는 마음. 불안과 질투. 결코 아름답지 만은 않은 세상살이가 진짜 우리가 사는 이야기다.


그리고 여기 어린 두 남녀에게 사랑의 무게는 오래 들고 서 있기 지나치게 무겁다. 그렇다. 결국, 서로는 서로를 저버린다. 엉뚱한 격투 대회를 개최하여 만신창이가 돼버린 커징텅을 보며 한심함을 내비치는 션자이.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여자친구에게 다정하기 어려운 흔한 남자의 모습이 바로 서로의 안면을 본 마지막 장면이다.


각자가 주었던 따뜻한 온기가 다 식어버릴 때까지 자존심을 지켰고, 딱히 관계를 이어나갈 발버둥이랄 만한 것도 없었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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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진정 사랑했다면, 내가 아니어도 영원히 행복하길 진심으로 빌어주게 된다.”


‘만약’이란 표현엔 그렇게 되길 원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 들어있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른 행위를 했었다면, 방법이 달랐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기대한다는 것이다. 싸움을 끝으로 헤어진 그날 커징텅이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결말이 같았을 걸 아는 둘은 진정 웃으며 서로를 마주한다.


이러한 결말은 보는 이로 하여 맑고 순수했기에 어려웠던 기억을 다시 마주하게 한다. 더는 구태의연한 마음을 쓰진 않지만(오히려, 기억조차 가물하다.) 아름다웠던 지난 자신을 발견하는 게 재밌을 뿐이다.


제 아무리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경험. 수 백, 수 천 번 지우자 다짐하는 게 하루 일과였던 어둡던 청춘의 나날을 다시 떠오르게 하는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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