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채움을 고민하는 이에게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삶이 마구 복잡해지는 순간, 꺼내는 그림책이 한 권 있습니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두더지가 묻습니다.
"네 컵은 반이 빈 거니, 반이 찬 거니?"
사실 두더지의 질문에 대답하기 곤란합니다. 제 컵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소년이 한 대답은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난 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은데."
비어있음에 의기소침하고 반만 있음에 더 가득 채울 '무언가'를 원했던 제 마음에 컵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문장이었습니다.
비어있어도 괜찮고, 채워져 있지 않아도 괜찮은, 그저 있는 그대로가 좋은 마음.
저는 언제나 채워지지 않는 것들 때문에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뜻함이 배어 나오는, 상냥함이 있는 그대로 보이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저에게 낙제점을 주었습니다. 두더지가 던져주는 질문과 소년의 대답은 저의 결핍을 채워주는 놀라운 문장이 되었습니다.
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다는 말, 내가 나이기에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말로 읽혔습니다. 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고, 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따뜻함을 받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께 받은 사랑이 좀 적어도, 관계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어도, 스스로 조금 부족한 사람이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비어 있기에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으니까요.
컵이 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