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끗 차이로 다른 우리
식물을 공부하다 보면 알지 못하는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꽃의 앞모습은 똑같으나 꽃 뒷모습이 달라 다른 꽃으로 구분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꽃받침이 꽃에 바짝 붙어 있는지 살짝 떨어져 있는지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 쑥부쟁이와 갯쑥부쟁이.
이름도 비슷하고, 모양도 구분이 안되며, 꽃잎의 색마저 비슷합니다. 자세히 알기 전까지는 모든 것을 뭉뚱그려 보라색 꽃인 줄만 알고 말지요.
털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볼 겨를 없이 간격이 있는지 없는지 쳐다도 보지 않고 ‘그냥 그렇다’라고 비겨 없애곤 합니다.
작은 차이는 식물들의 생태, 현장 환경에 따라 달라집니다. 물을 좋아하는지, 해를 좋아하는지, 산들바람이 좋아하는지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도 식물과 닮아 있습니다.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다름을 만들어 냅니다. 비슷한 나이, 비슷한 직업 혹은 비슷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모두 다릅니다.
누군가는 따스한 해를 좋아해 양지에 피는 쑥부쟁이가 되고,
누군가는 물을 좋아해 갯쑥부쟁이가 되고.
겉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미묘한 차이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제는 그 차이를 그 거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 나이가 된 듯합니다. 저 멀리에 서서 서로 다른 시간에 서로 다른 지점에 서있는 사람들을 찬찬히 바라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네 편, 내 편했던 혈기왕성했던 시기가 지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천천히 알아 가도 되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여유로운 발걸음을 김녕 해안으로 옮깁니다. 보라색꽃이 저를 반겨줍니다. 쑥부쟁이, 갯쑥부쟁이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온몸에 털이 가득한 보라색꽃이 인사합니다. "요 녀석은 또 누군고~"
어릴 때 만났더라면 무엇인지 알고 싶어 급급했을 제가, 털북숭이 보라색꽃 곁에 가만히 앉아 봅니다. 이름을 알 수 없어 고민하다 툭툭 털고 일어납니다. 언젠가 알게 되겠지요.
살아오면서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마흔이 넘으니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해되지 않고, 인정하지 못할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시간을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합니다. 몇 해의 낮과 밤이 지나고 바람과 폭풍우가 지나고 나면 다시 고요가 찾아오겠지요. 그때 또 한 번 각기 다른 시간과 각기 다른 지점을 통과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다시 그 곁에 앉아서
"네가 '해국'이로구나."라며 그에 알맞은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바람을 맞으며 어른이 되었는지, 어떤 흙에서 뿌리를 내렸는지, 부드러움 물음이 따라옵니다. 쑥부쟁이와 갯쑥부쟁이 이름의 한 끗 차이를 이해하듯, 비슷하지만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이해를 하지 못하는 시간을 지난데도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탓하지 않으며 품을 수 있다면, 그것이 아마 나이 들어 얻은 가장 큰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