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맨 길을 돌아 제 길로

해녀들의 숨비소리를 듣고 사는 숨비기 나무

by 제주미진

연보라색 보라색 순비기꽃이 연녹색 열매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겨울지나 봄이 올 듯 말 듯하더니 생전 느껴보지 못한 차가운 봄을 지나 숨이 턱턱 막히는 뜨거운 하늘 아래 머리가 익는 여름에 도달했습니다.


언제쯤 여름이 지나갈는지, 언제쯤 편안히 숨을 쉴 수 있을 만큼 기온이 내려갈 건지 가을을 기다리던 때에,

순비기꽃과 나무를 만났습니다.


순비기나무는 좋은 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이 뻥 뚫리는 향기. 제주 바닷가에 지천으로 널려있는데요. 가을볕이 영글 때가 되면 순비기꽃이 익어 연둣빛 열매를 맺고, 시간이 지나 까맣게 익습니다.


익은 순비기 열매를 베갯 속을 만들어 베면 두통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해녀들이 많이 사용했다는데. 물속에서 삶을 향해 물밖으로 나올 때 뱉어내는 긴 숨비소리를 듣고 자랐기 때문에 해녀들 곁, 해변가에서 자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햇살 담으며

바람맞으며

묵묵히 물을 끌어올리고, 양분도 전달하면서 끝없이 생동하는 순비기나무를 지긋이 바라봅니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일은 없겠지만, 멈추지 않는 시간 속에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해결해 주는 일도 있는 듯합니다.


아이유 노래 <아이와 나의 바다> 첫 소절이 저의 마음에 들어와 저를 깨웁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일들이 있지"


노래를 들으며 가사 속 아물지 않는 일이 나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삶의 아픔과 고뇌와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 집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은 삶에게 지는 날도 있겠지

또다시 헤매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


시간이 해결해 주지 못하더라도,

시간이 지나서 아물지 않는 일들이 있을지라도,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삶이 이겨 헤맨 길을 돌아, 갈 길로.

제 갈길로 갈 수 있음을 배웁니다.


긴 숨비소리를 들은 순비기 나무는 온몸으로 좋은 향을 뱉어 내는 것 같습니다. 삶을 이겨내어 삶으로 돌아가는 길을 반기는 향기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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