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이 남은 산에 대한 검은 기억(3)

산보다 숲, 숲 곁에

by 제주미진



지치고 마음이 가라앉을 때, 삶의 불편한 지점들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감정을 풀기 위해 숲으로 갔다. 산에 오르는 것보다 오래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산보다 숲을 선택했다.


곶자왈 숲길의 크고 작은 돌들이 발밑에서 서걱거리는 소리를 내주었다. 굴곡진 함몰지를 오르내리며 어지럼증이나 가슴 통증 없이 시원하게 걸을 때가 있었다. 숲길을 걷다 보니 삶에서 배제되었던 나의 존재를 조금씩 인지하게 되었다.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였다. 새소리, 바람 소리, 숲이 움직이는 소리를 느끼며, 존재 이유 때문에 머물러 한참을 망설였던 마음이 서서히 살아갈 이유로 나아갔다. 살아 움직이는 소리가 내 안에 머무는 것이 좋아 숲을 찾았다.


걸으면서 내가 내는 숨소리에 화음을 넣어주는 휘파람새 소리, 세상의 시름이 묻은 땀을 닦아주는 한결같은 바람들, 숲길을 걸으면 세상이 요구하던 기준들이 잠시 멈추는 힘을 느꼈다.


이주 후 2~3년간은 숲에 자주 갔다. 일상에 정착하며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자주 가진 못하지만, 가끔 숲이나 나무, 꽃을 알려주는 강좌가 있으면 상황이 허락하는 한 참석해 숲으로 향한다.


가끔 색다른 식물을 보기 위해 오름을 오를 때면 가장 뒷줄에 서서 무거운 발걸음을 떼곤 한다. 숨이 가빠오거나 어지럼증이 시작되기 전이면 발을 멈추고 발끝을 내려다본다. 스스로 땅을 지탱하고 있는 식물들을 보며 나도 스스로 서 있음을 떠올리고 다독인다.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잘할 거야.’


뒤처짐이 강사에게 눈에 띄면 채근을 받는다. 빨리 오라고, 최선을 다해 빨리 움직이지만 일행의 선두까지 가려하진 않는다. 제 속도대로 맨 끝에 서서 두리번거리며 식물들을 살핀다. 마주친 나무들이 손을 흔드는 것 같다. 힘내라고.


답답함이 올라올 때마다 숲으로 갈 수만은 없는 현실적인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안으로 식물을 가까이 두기로 했다. 화분을 기르거나 씨앗을 심어 싹을 틔우는 일을 종종 했다. ‘또 다른 게 있을까?’ 하고 주변을 살피다가 만난 것이 식물 세밀화였다.


보태니컬 아트라고 불리는 식물 세밀화 강의가 제주 우당도서관에서 열린다는 현수막을 보고, 지인이 ‘네 생각이 났다’고 해서 신기했다. 자연을 좋아했을 뿐인데 누군가의 머릿속에 내가 떠올랐다니, 원가족으로부터 받지 못한 지지를 지인을 통해 받는 기분이 신기했다.


그동안 그림을 그려본 적은 없었지만, 그림을 통해 식물을 더 가까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강의에 참석했다. 제주에 이주한 뒤 도서관과 친하지 못했는데, 우당도서관 진입로의 먼나무 빨간 열매가 나를 반겨주었다. 그렇게 시작한 보태니컬 아트는 식물의 새로운 면을 보게 해 주었다.


숲에서 보고 냄새 맡고 만졌던 것들을 색연필로 세밀하게 그려냈다. 두 시간의 수업은 마치 20분처럼 지나갔고, 수업이 끝나면 열람실 구석 자리에 앉아 수험서와 독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의 세계에 빠져들곤 했다. 사각사각 꽃을 그리고 잎을 표현했다. 그림을 그리며 식물 곁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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