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그림 그리고 자연
처음 가는 길이었다. 겨울에 접어들었지만, 따끈한 햇살이 포근했다. ‘베릿네공원’이라는 낯선 이름. 아무도 없는 포구에 차를 세우고 내려오는 물이 어디서 오는지 찾아봤다. 천제연에서 흐르는 물과 바다가 만나는 곳, 알지 못하는 크고 작은 새들이 잔뜩이었다. ‘뭐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 작은 물고기들이 가득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물고기들의 새끼들로 보였다. 구불구불 이리저리 다니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는 새들의 눈빛이 날카롭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 가만히 서서 노려보는 눈빛이라니.
식물뿐만 아니라 눈에 머무는 자연들이 나에게 의미를 던져줄 때면 온몸에 찌르르한 감각이 흐른다.
자연 중에 제주가 월등히 좋은 이유를 말하려면 백만 가지 일 것이다. 바다와 산을 모두 품은 넓고 밝고 깊은 곳.
자연 중에 나무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나무'는 가만히 서 있는 듯 보이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다. 물을 빨아들이고, 양분을 만들며, 잎은 내고 꽃을 피운다. 열매를 맺고, 잎을 떨어트리고 또 다음을 준비한다. 사람들에게 그늘을 산소를 터전을 내어주는 존재라는 사족도 달아본다.
아름답고 고맙고 없어도 안될 존재인데, 가만히 있어 보이니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다. 결코 가만히 있지 않는 멈추지 않는 존재.
내 안에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숲으로 나무공부를 하러 다녀와서는 그림을 그리고. 다시 글을 쓰고. 자연을 인지하면서 나의 정체성이 맑아짐을, 밝아짐을 느낀다.
지난봄 하얀 꽃비를 내린 때죽나무에 파스텔톤 열매가 열렸다. 열매 끝에 암술대가 남아 있다. 꽃을 피우고 씨방을 부풀려 자신의 상황에 맞게 성장한 흔적들. 열매를 보며 나의 성장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