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듯 보이지만, 농부의 시간은 자란다

기다림과 준비가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시작

by 제주맘스팜

어스름 새벽에 밭으로 향했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오는 길.
농부의 하루는 늘 같은 듯 이어지지만,
그 안에는 계절마다 다른 숨결이 깃들어 있습니다.


매년 9월, 풋귤 판매를 마무리하며
여자농부에게도 모처럼 여유가 찾아왔습니다.
12월부터 시작될 본격적인 농번기를 앞두고,
이제는 잠시 숨을 고르며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밭머리에 서면, 흙은 여전히 제 갈 길을 가고
귤나무는 묵묵히 계절의 무게를 품고 있습니다.
이루어낸 것들은 고마움으로,
부족하고 아쉬운 것들은 그대로 안은 채,
여자농부의 마음도 함께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농사를 결과로만 바라보곤 하지만,
농부에게는 그 과정이 더 큰 의미를 남깁니다.
땀방울 하나하나가 흘려보낸 시간이고,
기다림조차도 땅과 함께 살아가는 이의 몫입니다.


잠시의 쉼이 있어야 겨울의 긴 노동을 견딜 수 있음을 압니다.
멈추어 선 듯 보이는 이 시간은
사실은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길목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계절을 그저 ‘텅 빈 시간’으로 두지 않고,
제주가 품은 바람과 빛,
그리고 농부마음의 움직임까지 글로 붙잡아 두려 합니다.


짧지만 오래 머무는 글이 되어,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도 작은 위로로 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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