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도 안 된 아이를 두고 병원으로 가던 날
지금 나는 쉰일곱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아이가 돌도 되지 않았던 날로부터 시작된다.
그때의 나는 두 아이의 엄마였다.
네 살과 한 살.
하루에도 수십 번 “엄마”를 불러대는 나이.
집 안에는 늘 분유 냄새가 감돌았고,
잠은 쪼개어 자는 것이 당연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몸이 이상했다.
단순히 피곤하다고 넘기기엔
기운이 너무 빨리 빠졌다.
살이 눈에 띄게 줄었고,
아이를 안고 서 있다가도
다리에 힘이 스르르 풀렸다.
나는 원래 B형 간염 보균자였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아무 증상이 없었기에
그저 몸 안 어딘가에 조용히 머무는 이름 정도로만 여겼다.
그래서 아이를 낳는 일도 두렵지 않았다.
괜찮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검사 결과는 담담했다.
“간 수치가 많이 올라갔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수치를 떨어뜨려야 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네 살, 한 살.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
세 시간씩 링거를 맞았다.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시간을 세었다.
투명한 링거액이 한 방울씩 떨어질 때마다
마음은 먼저 집으로 달려갔다.
지금 애는 울고 있지 않을까.
첫째는 엄마를 찾고 있지 않을까.
친정도 시댁도 같은 제주도에 있었지만
부모님들께서 속상해하는 모습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결국 천안에 사는 큰언니에게
둘째를 맡겼다.
아이를 안겨주고 돌아서는 순간,
가슴이 푹 꺼진 듯했다.
엄마가 아이를 두고 오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길었다.
일주일이면 끝날 줄 알았던 병원 생활은
길어졌다.
매일 세 시간씩 누워 있어야 했고,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아이의엄마 아내가
되어야 했다.
동네 미용실에서 둘째를 잠시 봐주기도 했고,
친구 부모님이 아이를 맡아주기도 했다.
나는 그 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조용히 고개가 숙여진다.
도움을 받았다는 말보다
빚을 졌다는 마음이 더 크다.
결국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환자가 되었다.
그전까지는 단지 보균자였는데
확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조심해야 할 사람이 되었고,
무리하면 안 되는 사람이 되었고,
쉽게 피곤해지는 사람이 되었다.
간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나는 점점 침대와 가까워졌다.
몸보다 먼저
마음이 눕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를 환자로 부르는 시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