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계절을 지나, 비가 건네는 작은 쉼표
간밤부터 내린 봄비가
창을 두드립니다.
굵지도,
가늘지도 않은 적당한 방울이
처마 끝을 스치고 흙으로 스며듭니다.
창밖으로 들려오는 빗소리가
참 곱습니다.
적당한 굵기와 적당한 리듬.
조급하지도,
게으르지도 않은 그 소리가
마음을 슬며시 느슨하게 풀어놓습니다.
비는
말없이 묻는 것 같습니다.
잠시,
바쁜 마음을 내려놓아도 되지 않겠냐고.
바쁘다는 이유로 꽉 쥐고 있던 하루를
오늘은 조금 놓아도 되지 않겠냐고.
이 고요한 아침이 유독 달게 느껴지는 건
아마 며칠 전까지
참 부단히 움직였기 때문일 겁니다.
설 명절이 지나기 무섭게
감귤즙 포장에 매달리고,
요망진 레드향을 보내기 위해
하루 종일 따고, 선별하고, 상자에 담으며
종종걸음을 쳤습니다.
손은 분주했지만
마음은 늘 한 박자 더 앞서 달렸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을까.’
‘혹여 아쉬워하시진 않을까.’
자연의 시간에 기대어 키운 열매들이지만
보내는 순간만큼은 늘 제 몫인 것만 같아
괜히 더 엄격해지고,
괜히 더 미안해집니다.
오늘쯤이면
그 아이들이 누군가의 문 앞에 닿겠지요
상자를 열고 나의 아이들을 보며
잠시 나마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마지막 테이프를 붙였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한바탕 치열한 마음을 쏟아내고 나니
비 내리는 아침이 조용히 말을 겁니다.
이제 좀 쉬어도 되겠니.
열정에 비해
저는 여전히 허술하고,
계획은 늘 현실 앞에서 조금씩 흔들립니다.
그래도
이렇게 빗소리를 듣고 앉아
‘그래, 잘 살아내고 있구나’
혼자 속삭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건
참 다행입니다.
흙의 삶은
풍성한 수확만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을
함께 건네주는 일이었습니다.
섬에는 오늘도
빗소리가 곱게 내립니다.
2026_02_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