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하려 선 거울 앞에서 발이 묶였다.
왼쪽 뺨에 선명하게 패인 베개 자국.
아침에 눈 뜰 때만 해도 금세 차오를 줄 알았는데,
점심 지나 오후가 다 되도록 이 지독한 게
얼굴을 떠나질 않는다.
젊었을 때는
밤늦게 라면을 끓여 먹고 바로 잠들어도
금세 제 자리를 찾았고,
밤새 울다 지쳐 잠들었어도
언제 그랬냐는 듯 새 얼굴로 세상을 맞이하곤 했다.
젊음의 탄력이라는 게 그렇게나 무서운 거였다.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 완벽한 회복력.
그런데 이제는
잠깐의 단잠조차 비밀로 부칠 수가 없다.
내 피부가,
이 노화라는 놈이 나의 사소한 쉼조차 '게으름'의 증거로 바꿔 세상에 광고한다.
손가락 끝으로 깊게 파인 그 골을 더듬어본다.
지워지지 않는 이 자국은 마치 내 인생이 이제 탄력을 잃었다고,
다시는 돌아갈 곳이 없다고 잔인하게 일러주는
것만 같다.
"나 오늘 참 게으르게 살았구나."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이 목구멍에 걸린다.
남들 다 바삐 제 몫을 하며 사는 시간에
나 혼자 엎드려 단잠이나 잤다는 게,
그 흔적이 오후 늦게까지 뺨에 붙어 있는 게 못견디게 서글펐다.
그러다 문득,
젖은 손을 멈추고 거울 속의 그 깊은 골을 찬찬히 응시한다.
어쩌면 이 자국은
쉰일곱의 내가 이제야 겨우 얻어낸 '자유의 훈장'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편한 자세로
고꾸라져 깊은 잠에 빠질 수 있다는 것.
설령 그 흔적이 오후 내내 뺨에 남아
좀 게을러 보이면 또 어떤가.
평생을 남의 속도에 맞춰 달리기만 했던 내가,
이제야 비로소 내 몸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쉴 수 있게 되었다는 증거인데.
이제 나는 베개 자국을 가리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더디게 차오르는 내 피부의 탄력을 탓하기보다,
그만큼 넉넉해진 내 시간의 탄력을 믿어보려 한다.
게으른 게 아니라,
이제야 나를 귀하게 여기며
정성껏 쉬어가는 중이라고.
비록
거울 속 얼굴은 조금 눌리고 일그러졌을지 몰라도,
내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반듯하고 평온하다.
베개 자국 좀 달고 다니면 어떠랴.
나는 지금 내 생애
가장 달콤한 낮잠을 자고 일어난 참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