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말고 자꾸만 눈물이 흐른다.
쉰일곱,
이제는 웬만한 바람에는 흔들리지 않을 나이라
자부했건만,
노트북 화면 앞에만 앉으면
마음의 빗장이 맥없이 풀려버린다.
누군가는 조울증이니 갱년기니 하며
의학적인 꼬리표를 붙일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안다.
이건 병이 아니라,
내 몸속에 갇혀 있던 30년의 세월이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나오는 소리라는 것을.
결혼생활 30년,
그리고 제주에서 농부로 산 10년.
남들은 내가 제주의 흙을 일구며 산다고 하지만,
실은 그 흙이 나를 일구고 있었다.
20년 동안 나는 내 목소리를 죽이고,
남의 기분을 살피며, 내 안의 모난 부분들을 억지로 짓눌러 참는 것만이 미덕인 줄 알고 살았다.
내 속이 시커먼 숯이 되어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헌신적인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 뒤에
나를 숨기는 것이 내 생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내가 외면했던 기억들이
하나둘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지난번 그 사람이 던진 무심한 말 한마디에
그토록 무너졌던 것도,
실은 그 말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건 이미 찰랑찰랑 차오를 대로 차오른
내 슬픔의 잔에 던져진 마지막 돌멩이였을 뿐이다.
기억의 갈피를 하나씩 들춰낼 때마다
눈물이 고이는 건,
그 시절의 내가 너무 가여워서다.
"나 여기 있었노라"고,
"나도 그때 참 아팠노라"고
뒤늦게 터져 나오는 고백들.
나는 지금 그 아픈 무늬들을 하나하나 쓰다듬으며,
비로소 나 자신과 화해하는 중이다.
이 눈물은 지우고 싶은 기억이 아니다.
오히려 30년의 세월을 견뎌낸 나에게 주는
가장 정직한 훈장이다.
흙 묻은 손으로 눈물을 슥 닦으며
나는 오늘도 한 줄을 적어 내려간다.
누구를 설득하기 위해서도,
멋진 작가가 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내 안의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
"그래, 참 대견하다.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
이제는 참지 말고 울어도 괜찮다."
울 수 있을 때 마음껏 우는 것 또한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일 테니까.
오늘도
눈물 젖은 글자를 적어 내려간 내가,
참으로 장하고 대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