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계절

첫눈이 내린 뒤, 가장 맛있는 순간을 향하여

by 제주맘스팜


아침 공기 속에서

묘하게 달라진 계절의 냄새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여름을 보내고 가을 문턱에 들어서면,

밭에서 흙냄새와 바람결이 달라지지요.
농부에게 그것은

달력보다 더 정확한 계절의 시계입니다.


작년 겨울,

밭에서 콜라비를 뽑던 순간을 떠올립니다.
차가운 흙 속에서 달큰하게 자라난 아이들을
두 손으로 감싸 안던 기억은

여전히 따뜻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 
깨알보다 작은 씨앗을 트레이에 올려
여름 내내 하우스 안에서 모종을 키웠습니다.
얇은 잎이 하나둘 돋고,
보랏빛 줄기를 올리며 자라난 아이들은
이제 흙 속에 뿌리내려

제 몫의 계절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같은 씨앗을 고집하는 건

결국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맛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좋아하는 걸 고집할 수 있다는 게,

농부의 가장 큰 특권이지요.


올해는

콜라비 씨앗을 구하기가 유난히 어려웠습니다.
작년보다 적게 심을 수밖에 없었지요.


비가 유독 많이 내렸는데도

잘 버텨주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더 애틋해집니다.


12월의 끝자락,

첫눈이 내린 뒤
비로소 가장 맛있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을 품고 사는 일,
그것이 아마

농부의 겨울을 지켜주는 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