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주앓이 Mar 26. 2020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당신

거리두기


사회적 거리두기

자체 자가격리

삶의 쉼표


요즘 우리들의 삶 속에 파고든 반갑지 않은 단어들이다. 


몇 주 전 까지만 해도 주변 확진자 알림 문자에 화들짝 놀라던 나였지만, 이제는 무덤덤하게 삭제 버튼을 누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또 익숙해져 가겠지…


인생의 브레이크


죽지도 않고 찾아오는 각설이처럼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삶의 쓰나미들은 언제나 내 앞을 가로막았다. 종류는 또 어찌나 다양하던지  부모님, 연애, 건강, 금전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방대해서 ‘나의 흑역사 백과사전’를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스스로에게 불사조라는 별명을 지어줄 만큼 매번 잘 넘겨 여기까지 왔다. 평지풍파의 기여도를 따진다면 내가 자초한 부분도 어느 정도는 인정된다고 생각했기에 추스르는 것에 대한 나쁜 감정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많이 달랐다.


철저히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평지풍파. 그리고 나 혼자가 아닌 내 주변 모두가 똑같이 겪어야만 하는 새로운 종류의 시련이었다.


사실 나의 자체 자가격리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미 1년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건강상 이유 때문이기는 했지만 누구보다 활발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감금이나 다름없는 슬픈 시간들이었다.


특히 초반 몇 개월 동안은 밖에 나가지 못하고 사람도 만날 수 없는 상황을 도통 인정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좋아져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하지만 그런 강박은 건강한 회복을 오히려 방해했다. 조급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마음에는 늘 날이 서 있었고, 전에 없던 예민한 반응으로 주위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다시 차분하게 예전에 나로 돌아가기 위한 연습을 시작했다. 불필요한 만남을 줄이고 건강한 식단과 운동으로 생활 패턴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경력단절, 결혼에 대한 압박, 늘어만 가는 나이에 대한 생각들을 버렸다. 비록 타인의 눈에는 무책임해 보일지라도 말이다.


일상에 초조함이 사라지니 모든 것들이 자연스레 예전에 그것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겠구나 조금씩 희망이 싹틀 무렵, 이 난리통, 코로나 19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방구석에 눌러앉는 신세가 되었다. 2020년을 위해 계획했던 일들은 어쩌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하는 생각에 억울할 법도 하지만 나름 침착하게 잘 지내고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예전처럼 에너지 충전을 위해 제주 여행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지만, 사랑하니까 잠시 놓아주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동안 찍은 사진을 보며 대리만족에 심취하는 요즘이다.


시간은 흐른다. 이 상황 또한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도 다시금 조용히 자리를 잡을 날이 올 것이다. 


‘희망’이라는 진부한 단어가 간절한 요즘이다. 그것에 기대어 어떻게든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말이다. 


내가 잘못하지도 않은 일로 곤경에 빠지는 것은 미칠 듯 화가 나는 일이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라도 있음을 다행이라고 여기며 오늘도 일상에 적응하고 있다.


아령, 실내 사이클, 철봉, 바벨


휴업한  헬스장 덕분에 내 방은 자연스럽게 홈트레이닝 센터가 되었다.


다가오는 여름은 까맣게 타더라도 모두가 태양 아래서 뛰어노는 계절이 되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오늘도 나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계속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답답한 마음의 치유를 위한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