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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앓이 Sep 07. 2021

혼맥의 품격 1

혼맥의 의미

“서른다섯”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신 있게 어리다 할 수도 없는 나이다. 무서울 것 없이 원하는 것 무엇이든 도전하던 1년 전의 나에 비해 지금의 나는 많이 소심해졌다. 스스럼없이 사람을 사귀고 늘 즐거운 에너지에 둘러싸여 있던 시절.  2016년은 내 인생 최고의 황금기였고, 그 시절 나는 자유와 성취의 상징이었다.  


물론 지금의 나 역시 잘 살고 있다. 단지 돌이켜 생각해 비교해 보니 그렇다는 이야기다.


혼자 맥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한 해를 얼마 남기지 않은 2016년 어느 겨울날이다. 부정적인 감정의 비율이 긍정의 그것을 월등히 넘어서기 시작하던 그때. 나는 밤마다 맥주 한 잔을 찾게 되었다.


'혼맥에는 노력이 뒤따른다.'


맥주는 그리 높지 않은 알코올 도수 탓에(물론 와인에 버금가는 도수를 가진 녀석들도 있지만) 한 캔 정도는 음료수 취급이 가능하다. 웬만한 주당이라면 한 병쯤은 마셔도 인지능력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는다. 덕분에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싶거나 위로가 필요한 밤에 꽤나 매력적인 친구가 되어준다. 


친구는 늘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편의점 네 캔 만원 행사가 있다. 언제든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만날 수 있는 즐거움과 재미가 있는 세상이다. 매일매일 다른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설렘을 느낄 수 있어 좋다.


혼자 마시는 맥주는 머릿속에 잡다한 생각들을 몰려오는 심야 시간이라야 제맛이다. 하지만 과년한 나이임에도 아직 부모님께 신세를 지고 있는 미혼 여성인 나로서는  야심한 밤의 홀로 맥주 한 잔을 하기 위해 적잖은 눈치작전을 펼쳐야 한다.


안방 불이 꺼지고 집안의 고요함과 집 밖의 적막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그 순간. 나의 냉장고 속 맥주 탈환을 위한 작전이 시작된다. 캔맥주라면 별것 아니었을 일 이 건만 굳이 전용잔에 따라 마시는 병맥주의 참맛을 위해 나는 기꺼이 이런저런 수고를 감내한다. 어둠 속 손과 발의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고 섬세해야 한다. 어쩌다 유리잔들의 마주치며 나는 작은 소리도 나의 소박한 파티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눈물겨운 작전이다.


“나는 왜 혼자 맥주를 마시는가?”


물론 지인들과 어울려 수다 떨며 마시는 생맥주 한 잔이 생각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시다 보면 취하고, 취하다 보면 집에 올 길이 막막하다. 끊어진 필름은 이을 길이 없는데 눈을 깬 아침, 내 방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든다. 귀소본능에 대한 감탄도 잠시 지난밤 범죄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던 나 자신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그저 맥주 좀 마시고 들어왔을 뿐인데, 시집도 안 간 처녀의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는 결론에 걱정하시는 혹독한 부모님의 시선과 술자리라면 온 동네 남자들과 파티라도 하는 자리인 양 치부하는 연인의 논리는 설득시키고 이해시키기에 너무 버거운 짐이었다.


그렇다고 맥주를 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다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 마실 수 없는 상황에서 느꼈던 맥주를 향한 그리움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대놓고 마시기에는 이제 마음이 불편했다. 자연스레 혼자 몰래 조용히 마시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유다. 


나의 취향을 향한 부정과 우려의 시선. 오늘도 나는 그것들을 피해 야심한 밤 맥주를 즐긴다. 혼자 맥주를 마신다는 것은 소심하지만 즐거운 자유를 향한 투쟁의 한 방법인 것이다.


그리고 6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나는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여전히 가끔 혼맥을 즐긴다. 세상은 달라지고 나는 좋게 말해 성숙했고 냉정히 말해 나이 들어 슬프다. 하지만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같은 자리에서 즐기는 맥주 한잔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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