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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맥의 품격 2

맥주로 쓰는 일기

by 제주앓이

기분이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자축할 일이 있다거나,
별일은 없었지만 금요일 밤이라,
이유 없이 기분 좋은 토요일 밤이라서
나는 혼자 맥주를 마신다.

늘어나는 뱃살, 나빠지는 건강, 지독한 숙취

음주의 부작용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매일 밤 맥주와 데이트를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상적인 일상을 살아가야 하기에 음주는 주 3회 이상을 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어떠한 이유로 맥주를 마신다 한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음주를 정당화하려는 술꾼의 궁색한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오늘 야심한 밤의 혼맥이 단순히 술을 마시는 행위는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혼맥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맥주를 마시면서 귀찮아도 잊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다. 그냥 단순한 인증 사진은 아니다. 촬영을 위해서는 다양한 소품들이 필요할 때도 있다. 북유럽풍 냅킨과 전용 잔, 그리고 조명을 밝혀 최적의 촬영 조건을 만들려 노력한다. 이런 작업들 때문에 애써 시원하게 온도를 맞춰놓은 맥주가 미지근해져 버린 적도 있었다.

과정이 조금 귀찮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찍어 놓은 결과물들은 뿌듯함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더군다나 그날 마신 맥주는 나의 감정 상태를 대변한다. 차곡차곡 쌓이는 맥주 사진들을 보며 그날을 회상한다.

맥주 사진을 찍는 일은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다.




"나 홀로 미국 여행의 친구, 블루문"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조용한 도시 산타바바라에서 보낸 3개월의 시간들은 꿈처럼 행복했다. 옥에 티가 있다면 친해지는데 어려움이 많았던 예민한 홈스테이 맘이었다.

홈스테이에 머무르는 학생들의 휴일은 홈에서 머물며 미국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하루 종일 잔소리꾼 여주인의 대나무숲이 되어야 하는 고역의 시간이었다.

몇 번의 휴일을 그녀와 보내고 난 뒤, 나는 그것이 더 이상 무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그녀를 피해 시내의 작은 숙소를 예약했다. 밤이면 더욱 고요해지는 산타바바라.

조명을 다 밝혀도 어두웠던 숙소에서 나의 유일한 벗은 맥주 한 잔이었다. 그날 밤 입안 가득 은은하게 퍼졌던 블루문의 상큼한 위로는 지금도 가끔 그립다.


◾ 산타바바라 SANTA BARBARA


미국 서부 로스앤젤레스 근처에 위치한 작은 관광도시. 스페인 풍의 저층 건물들의 모습들은 마치 유럽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사람들은 여유롭고 몸에 밴 친절함이 가득하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머물며 지역 분위기를 깊게 즐기고 싶은 여행자라면 적극 추천하고 싶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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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바바라(2014)

◾ 블루문 BLUE MOON

미국/ 5.4%/ 벨지안 화이트 에일
잔 가득 퍼지는 오렌지 향기는 맡을수록 기분 좋고 상큼하다. 요즘 핫한 편의점 맥주인 곰표맥주를 떠올리는 맛.

@블루문(2014)



"호주 태즈메이니아의 특별함이 깃든 맥주, 무 필스너"

운 좋게 선발된 경연대회 포상으로 다녀온 나 홀로 호주 여행. 목적지는 호주. 그 중에서도 섬 속의 섬 태즈메이니아였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원없이 즐겼던 대자연의 아름다움은 다시 없을 감동을 선사했다.

하지만 종종 도시의 편리함이 그립기도 했다. 다행히 일정 중 섬의 수도인 호바트에 머물 수 있었다. 다시는 없을 기회의 장소임을 직감한 나는 열심히 맥주를 마시고 또 마셨다.


◾ 태즈매니아 TASMANIA
호주 동남부에 위치한 섬이다. 시드니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가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남극과 가장 가까운 섬이기도 하다. 울창한 원시림, 무서울 정도로 푸른 바다, 웅장한 산 등 개발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준비 없이 간다면 다소 심심하고 힘든 여행지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자연과 도전을 사랑하는 여행자에게는 다시없을 감동을 선물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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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즈매니아(2015)

◾ 무 필스너 MOO PILSNER

호주/5%/필스너
시종일관 느껴지는 청량감이 주는 짜릿함은 전율마저 느끼게 한다. 소고기와 해산물 등 어떤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호주에서만 재배되는 홉을 사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깔끔하지만 눈에 확 띄는 라벨도 인상적이다. 아쉽게도 국내에는 수입이 되지 않아 호주에서만 즐길 수 있다.


@무 필스너(2015)



"제주 표선에서 마신 맥주, 산토리 프리미엄 몰트"

그 날은 운이 좋지 않았다. 예약해 놓은 숙소는 체크인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호스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행히 환불은 받을 수 있었지만 늦은 시간 다시 숙소를 잡아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제주 중산간의 어둡고 좁은 길 위에서 연료가 떨어져 가는 전기차와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리는 굵은 비는 짜증과 슬픔을 동시에 몰고 왔다.

다행히 금방 다시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늦은 밤 겨우 짐을 풀고 캔맥주 한 모금을 마시며 하루의 고단함을 위로했다. 익숙하던 그 맛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던 밤이다.


◾ 표선해비치해변
제주에서 가장 드넓은 백사장을 자랑한다. 아무리 걸어도 성인 무릎 위를 넘지 않는 깊이라 어린이들이 물놀이하기에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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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80285.jpg @표선해비치해변(2016)

◾ 산토리 프리미어 몰트 SUNTORY PREMIUM MALT

일본 /5.5% /필스너
유럽산 아로마 향을 사용하여 특유의 향긋함이 있다. 황금색 바탕 속 강렬한 로고가 매력적인 패키지가 고급스럽다. 편의점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었으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영향으로 최근에는 잘 찾아보기 어려운 귀한 맥주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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