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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앓이 Sep 17. 2021

혼맥의 품격 3

혼맥은 나만의 소박한 피서

32도. 요즘 흔한 한낮 최고 기온이자, 내 방 평균 온도이기도 하다. 이 찜통더위에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엄마는 왜 에어컨을 설치하기 못하게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글을 쓸 당시보다 지금의 여름은 훨씬 더 더워졌다. 그리고 드디어 내 방에 에어컨을 설치할 수 있었다.)



해결책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반겨주는 카페로의 피신뿐. 하지만 굳이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 내 구역을 고수하고 있다. 이 더위도 언젠가는 가실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하지만 나름 너그러운 성격인 나도 맥주를 마실 때만큼은 까칠해진다. 에어컨 없이 견디는 여름밤, 덥고 습한 날씨 속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맛있는 맥주를 마시기 위해서 다른 계절보다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미지근한 맥주만큼 먹기 싫은 것도 없다. 요즘 같은 날씨에 제아무리 냉동실에서 강력한 냉찜질을 마치고 나온 맥주라 하더라도 쉽게 미지근해져 버린다. 잔을 얼려 보기도 하지만 소용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설거지를 마친 유리잔처럼 물방울이 가득 맺혀버린다.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이런 상황이라면 무조건 재빨리 마시는 방법밖에 없다. 



꿀꺽꿀꺽 몇 모금을 들이켜면 금세 비워지는 유리잔을 보고 있자니 아쉽고 또 아쉽다. 하루 온종일 더위를 참은 뒤의 혼맥은 나에게 피서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간을 위해 그 힘든 시간을 용케 참았는지도 모른다. 



무더운 여름날을 위한 맥주 추천


피츠 수퍼클리어

한국/ 롯데/ 4.5 %/ 라거

여름에는 그냥 시원한 맛에 마시는 맥주가 필요할 때가 있다. 맛으로 따지자면 조금 싱거울 수 있지만 가슴속까지 짜릿한 청량감이 필요할 때 피츠만한 맥주가 없다. 2017년 출시 당시에는 그랬다. 한정판 굿즈를 사기 위해 난리가 난 적도 있었다. 나도 전용잔 한 개가 포함된 굿즈를 구입했던 것 같다. 요즘에는 대체할만한 더운 나라 맥주들이 많이 출시되어 있기에 그 감동이 많이 줄었지만 추억 속 더운 여름을 위로해준 고마운 친구다.


코나 롱보드 아일랜드

미국/코나 브루어리/4.6%/라거

요즘 여름 스포츠로 각광받고 있는 서핑 열풍 때문일까? 하와이 코나 브루잉의 맥주 들을 예전보다 쉽게 카페나 마트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시원한 파도와 그 파도를 즐기는 서퍼들이 그려진 롱보드 아일랜드 라거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파도소리가 들리는 바닷가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붉은 계열 패키지인 롱보드 아일랜드 라거보다는 푸른 계열 패키지의 빅 웨이브 골든라거가 시각적 시원함으로 우위에 서겠지만, 개인적인 입맛으로는 조금 더 깊은 맛의 롱보드 아일랜드 라거를 선호하는 편이다. 롱보드 아일랜드는 라거 계열의 맥주이지만 신기하게도 향긋한 과일향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언뜻 마시면 에일 계열 맥주와 헷갈릴 수도 있을 듯하다.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은 예쁜 병 패키지는 마시고 난 뒤에 인테리어 소품으로 소장하면 나쁘지 않다. 아마 며칠 동안은 행복한 하와이의 기운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진짜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서 롱보드 아일랜드 라거를 즐길 날을 꿈꾸어 본다.


발라스트포인트 언필터드 스컬핀

미국/발라스트 포인트 브루어리/7%/인디아 페일 에일 IPA

한정판은 언제나 특별한 기분을 선사한다. 다양한 맥주를 선보이는 크래프트 맥주 회사들은 가끔 한정판 맥주를 선보이는데 미국 샌디에이고의 유명한 크래프트 맥주회사인 발라스트 포인트의 언필터드 스컬핀도 그런 한정판 맥주 중에 하나다. 그런 이유에서 그냥 스컬핀보다 구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렇기에 발견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실 맛에 둔감한 편이라 그냥 스컬핀과의 차이점을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패키지에 분명하게 써진 LIMITED라는 단어는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7%를 넘는 맥주 치고 높은 도수에도 시종일관 산뜻한 맛을 자랑하기에 재빨리 마셔도 부담이 없다. 하지만 마시고 나면 약간 취기가 올 수도 있으니 주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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