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주앓이 Sep 23. 2021

혼맥의 품격 4

제주에서 혼맥


@금능해변

나에게 제주는 각별한 섬이다.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난 미지의 섬이었으며, 그것이 인연이 되어 제주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으니 말이다. 때로는 그저 즐거운 곳이었고, 또 어떤 때는 슬픔을 치유해 주었던 제주는 마치 마법 같은 섬이었다. 


그래서 나의 여행지는 늘 '제주'다. 하늘길이 지금 같지 않던 시절에도 말이다.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제는 가도 할 것이 없지 않으냐?’는 지인들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언제나 ‘아직 못 해본 것이 더 많아요.’ 이기 때문이다.



제주를 나만의 방식이 있다면 평소 익숙한 것들을 제주에서 해보는 것이다. 나만의 제주여행 태그에 #제주에서 #나홀로 #혼맥 이라는 태그들이 추가된 이유이기도 하다. 

@신창풍차해안도로


처음 제주를 혼자 여행하기 시작했던 2015년 즈음만 하더라도 여행자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술들은 지역 막걸리와 한라산 소주가 대표적이었다. 제주보리를 이용해 만들었다는 맥주 '제스피'가 있긴 했지만 펍에서만 즐길 수 있는 희소성 있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2017년 하늘색 찬란한 '제주위트에일'이 탄생했다. 제주를 여행하면 꼭 마셔야 하는 상징적인 맥주의 탄생이었다.



2021년, 이제 제주에서 만들어진 수제 맥주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혼맥을 즐기기에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니 분명 행복한 일이지만 가끔은 희소성을 찾아 헤매던 과거의 제주 혼맥 라이프가 그립다. 



이렇게 혼맥 꼰대가 되어가나 보다.



다음에 소개하는 펍들은 제주산 맥주가 귀하던 시절 찾아다니던 제주 크래프트 맥주 문화의 선발주자 격인 곳들이다.




여기가 진짜 원조

제주 맥주 제스피 JESPI

제스피와의 첫 만남은 2013년 어느 가을이었다. 크래프트 비어라는 단어가 일반인들에게 그리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시절, 제주의 맑은 물과 청정보리로 만들었다는 제주산 맥주의 탄생 소식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제스피를 맛보기 위해 기꺼이 비행기에 올랐다. 


제스피 맥주를 맛볼 수 있는 제스피 펍은 제주시 연동 바오젠 거리에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감 시간이 임박한 밤늦은 시간, 목적지를 향해 어두운 골목길을 홀로 걷는 것은 무서웠지만 설렘이 있어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제스피 펍. 전형적인 한국식 펍 분위기로 꾸며진 실내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곳의 주인공은 실내 장식이 아닌 맥주일 것이다. 서둘러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곧 감귤 향이 난다는 페일 에일이 내 눈앞에 등장했다. 나에게는 첫 크래프트 비어였던 제스피 페일 에일. 설레는 첫 잔은 입안 가득 청량함과 향긋함을 채워주었다. 


퇴근 후 정신없이 뛰며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내려온 시간이 위로받는 순간이었다. 



제주시 터줏대감

맥파이 제주(현 맥파이블루버드)

제주시와 확장과 함께 과거 중심지 었던 탑동 일대는 구도심이라는 향수 어린 이름이 붙어 버렸다. 하지만 한 미술 컬렉터의 손으로 탄생한 '아리리오 뮤지엄' 탄생으로 탑동의 르네상스가 열렸다. 옛 극장과 모텔 건물은 세련된 미술관으로 부활했고, 그 주변에는 멋진 카페와 식당들이 들어섰다. 젊은 영혼들의 안식처가 되어 줄 크래프트 비어 펍 '맥파이'도 그중의 하나.


친구와도 들른 적이 있던 곳이었지만 이번에는 혼자 찾았다.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오픈 시간에 맞춰 방문했더니 밖은 아직도 환한 대낮이었다. 


이태원에서 피맥으로 이미 명성이 자자한 맥파이는 다양한 라인의 맥주를 선보이고 있었다. 촌따이, 현무암 등 재미있는 이름의 맥주들은 골라 마시는 재미가 있었다. 혼자 고주망태가 될 수 었어 적당히 마신 맥주가 아쉬웠던 그 시절  '맥파이'


이제는 시간이 흘러 제주에 맥파이 브루어리가 생겼다. 제주에서 만드는 맥파이 맥주를 맛볼 수 있는 살기 좋은 세상이 된 것이다.



완벽한 혼맥의 성지

탭하우스더코너

제주시 번화가에 위치한 호텔 1층. 이름 그대로 코너에 자리 잡은 모던한 크래프트 비어펍이다. 사실 이 주변 숙소를 잡지 않는 이상 일부러 여행 중 방문은 쉽지 않다. 바다도 산도 보이지 않는 도심의 평범한 술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맥주를 사랑하는 오너의 열정 속에 진정 맥덕을 위한 펍으로 자리매김한 곳이기 때문이다. 메뉴의 대부분은 국산 크래프트 맥주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관리상태가 우수해 최상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사실 나와 함께 맥주 학교를 졸업한 동문의 가게라는 사실도 이곳이 특별한 이유 중의 하나.)


다소 한정된 공간이라는 점이 아쉽지만, 주말에는 자리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손님이 많다.  바 쪽에 좌석을 잡고 앉는다면 부끄러워할 필요 없이 맥주를 즐길 수 있으니 제주에서 혼맥 하기에 이만한 곳이 또 없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맥의 품격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