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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앓이 Oct 18. 2021

혼맥의 품격 13

야생의 섬에서 맥주 한 잔

@태즈메이니아
태즈메이니아 : 호주 최남단에 위치한 섬으로 남극과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하다. 제주도보다 34배 넓은 면적의 섬이지만 인구는 제주도보다 적다. 호주 본섬과는 또 다른 대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곳으로 캠핑, 카약, 승마, 트레킹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대자연의 신비가 가득한 지구 남방 구의 아름다운 섬나라 호주. 현실세계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그곳의 풍경들은 죽기 전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일상은 늘 그렇게 한국의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에서 흘러갔고 호주라는 곳은 멀게만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러던 나의 첫 호주 여행. 그것도 호주라는 큰 섬 속의 또 다른 섬 태즈메이니아를 여행하게 된 것은 복권 당첨과도 같은 행운이었다. 호주 여행이 부상으로 걸린 공모전에 입상한 것이다.


태즈메이니아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10시간을 날아 도착한 시드니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온몸이 붓고 잠은 쏟아지는데 잔뜩 긴장한 채로 몇 시간을 더 깨어 있자니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겨우 탑승한 비행기 옆자리에는 풍성한 살집의 아저씨가 않아 있었다. 잔뜩 몸을 움츠린 채 또다시 하늘을 날아야 한다는 절망적인 현실에 여행의 설렘 따위는 1도 느껴지지 않았다.

@태즈메이니아 가는 길

그렇게 도착한 태즈메이니아의 하늘은 잔뜩 흐려있었고 제법 한기가 느껴지는 추운 날씨 었다. 지친 몸은 더욱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한국과 계절이 반대라더니 가을의 반대는 봄이 아니고 겨울이었나 보다.


다행히도 시내 숙소까지는 픽업차량이 준비되어 있었다. 자그마치 B사의 고급 세단. 하지만 그 순 간은 경차라도 좋으니 빨리 호텔로 데려다주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한적했던 도로에 점점 차들이 많아지나 싶더니 어느새 숙소 앞에 도착했다. 서둘러 체크인을 하고 객실에 짐을 푸니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아직도 반나절이나 남은 하루를 그냥 버리기 아까워 거리로 나섰다. 걷고 사진을 찍는 중에도 추위와 졸음은 나를 힘겹게 했지만 곧 다가올 저녁 시간을 기다리며 버티고 또 버텼다.


@Moo Pilsner

드디어 태즈메이니아에서의 첫 식사시간. 맛집으로 소문난 항구 앞 고급 해산물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마주한 매니저는 혼자 왔다는 나의 말에 잠시 당황하는 듯 보였지만 곧 나만의 테이블을 준비해 주었다.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내 자리는 사실 혼자 식사를 하기에 다소 민망하게 넓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날은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고 부끄러움은 잠시 넣어 둘 수 있었다. 그리고  진정한 여행의 시작을 자축하기 위해 서둘러 맥주를 주문했다. MOO(이하 무 맥주)라는 이름의 태즈메이니아 지역 맥주였다.


메인 요리는 도시에서 유명하다는 굴 요리를 선택했다. 비주얼은 화려했지만 역시 한국산 굴의 감칠맛은 당해낼 도리가 없어 보였다. 그래도 다행히 그 아쉬움은 맛있는 맥주가 위로해 주었다. 입안 가득 태풍처럼 휘몰아치던 청량함이 압도적이었던 무 필스너. 호주 맥주에 대한 큰 기대가 없었던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든 맥주였다. 어두운 색의 맥주병을 돋보이게 만드는 간결하면서도 독창적인 디자인도 꽤나 마음에 들었다.


강렬한 첫 만남. 호주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마주하는 신나는 순간이었다.

@MONA

다음 날 일정은 무 브루어리 MOO BREWERY가 위치한 모나 뮤지엄(MONA MUSEUM) 투어. 세계에서 가장 큰 사립미술관인 모나 뮤지엄은 심오하고 난해한 현대미술의 집합소였다. 어둠이 음습한 지하세계에 마련된 미술관에는 죽음, 섹스, 그리고 알 수 없는 주제에 관한 기묘한 작품들이 가득했다. 어떤 전시실은 굴 같은 공간에 들어가야만 볼 수 있기에 으스스 한 기분이 들어 그냥 지나쳐 버리기도 했다. 예술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에 나는 아직 촌스러운 감성을 지닌 것이 분명했지만 깨끗이 인정하고 서둘러 지상세계로 돌아왔다.


@Moo Brewery

하지만 무거운 발걸음은 이내 가벼워질 수 있었다. 바로 옆 커다란 건물에서 맥주 배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마로 무브루어리인 것이다. 브루어리 투어는 미리 예약을 해야 가능했기 때문에 포기해야 했지만 아쉬운 대로 바로 옆 탭하우스로 향했다. 아침부터 서둘러 나와 배를 타서인지(호바트에서 모나 뮤지엄으로의 이동은 쾌속선을 주로 이용한다.) 머리는 지끈거렸고 약간의 몸살 기운이 느껴졌지만 무맥주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드디어 손에 넣은 무 필스너 한 잔.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천천히 그 매력적인 맛을 음미했다. 역시나 무 맥주에는 예술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호바트에서 머물렀던 삼 일간의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열심히 무 맥주를 마셨다. 마치 무 맥주를 마시기 위한 여행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쉽게도 아직 한국에서는 예술작품보다 더 예술적인 무 맥주를 마실 수 없다. 마실 수 없다고 하니 더 마시고 싶고 사실 더 훌륭하고 매력적인 맥주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한 맥주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에게 태즈메이니아는 한 번 다녀왔다는 것에 충분하다고 생각이 드는 곳이다. 아직 문명의 편리함을 다 포기하고 살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인간이기에 극한 대자연인 태즈메이니아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자격미달이다.


하지만 무 맥주를 마시기 위해 가는 태즈메이니아 여행이라면?


그것은 완전히 또 다른 이야기이니 다시 안 가도 충분하다는 말은 없던 것으로 해야겠다.


MOO PILSNER

australia/MOO BREWERY/PILSNER/5.0%

@Moo Pilsner

2005년 모나뮤지엄의 설립자인 David Walsh가 설립한 브루어리로 뮤지엄 건물 바로 옆 와이너리와 함께 위치하고 있으며 필스너, 페일에일으르 비롯 다양한 스타일의 크래프트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무필스너는 심심하지 않은 청량감과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맥주였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한국에 수입되지 않아 2015년 이후에 맛본 적이 없어 이제는 추억의 맛으로만 그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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