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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앓이 Oct 27. 2021

혼맥의 품격 15

싱가포르 펍투어 -1

말레이반도 끝에 위치한 작은 도시국가. 금융과 마이스산업으로 유명한 현대화된 국제도시. 야경이 아름다운 싱가포르의 밤. 마리나베이 샌즈.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지로 싱가포르를 선택한 이유는 오직 단 하나. 바로 혼자 맥주를 마시기 위해서였다.


여자 혼자 밖에서 술을 마시고 취해 돌아가는 길은 치안이 안전한 우리나라에서도 완벽하게 안전할 수는 없다. 하물며 다른 나라에서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 하지만 나는 경험해 보고 싶었다. 여행지에서 마시는 혼맥의 기분을 말이다.

@싱가포르

이것저것 따지다 보니 여행 후보지는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 치안이 완벽하여 여자 혼자 여행하기에 안전한 나라. 비행시간이 너무 길지 않은 나라. 밤 문화가 활성화돼있는 나라의 조건을 넣다 보니 일본과 홍콩, 그리고 싱가포르 정도가 후보지로 떠올랐다. 한 번씩 가본 경험이 있는 두 나라를 제외하니 목적지는 싱가포르였다.


아침 일찍 일정을 시작하려는 계획으로 밤 비행기에 올랐다. 어떻게든 잘 수 있겠지 싶었지만 막상 도착 즈음 깨어보니 허리가 너무 아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다행히 공항을 벗어나 도심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완벽하게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택시 벤츠 S 클래스였다.


호텔에 도착해 짐을 맡기고 첫 목적지 보타닉가든으로 향했다. 보통 여행지에서 5km 정도는 거뜬히 걸어 다니는 편이라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호텔 건물을 나서자마자 온몸으로 느껴지는 엄청난 더위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순간 그냥 다시 택시를 타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첫 목적지이니만큼 일단 계획대로 해보자는 마음에 걸음을 계속해나갔다.


@보타닉가든

그리고 어찌어찌 목적지에 도착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싱가포르 최고의 정원, 보타닉가든을 구경하게 되었다. 넓기는 참 넓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


시간이 흐르고 오후가 가까워지자 옷은 땀으로 젖고 몸은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공원이라지만 겨우 한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이정표뿐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이번 여행의 진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펍 투어의 시작이었다. 펍 근처에 역이 없었던 관계로 나는 에어컨으로 겨우 말린 땀을 또다시 흘려야 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도 앱의 GPS도 그날따라 방향을 잘못 가르쳐주는 바람에 길을 헤매기까지 하여 몇십 분을 더 걷기도 했다.

그렇게 개고생을 하여 겨우 목적지인 건물 지하 HOPHEAD PUB에 도착했다. 너무 감격스러워 마음속으로 울었다.

@HOPHEAD

나는 맥주를 마시러 이곳에 왔지만 도착한 시간은 점심 먹을 즈음.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식사를 하고 있었다. 혼자 온 손님인 나에게 직원은 조용한 구석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어쨌든 나도 밥은 먹어야겠기에 대충 브라운 라이스를 하나 주문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on tap list를 살펴보았다.


더위에 찌든 여행자가 엄선해 고른 첫 번째 맥주는 미국 로그 브루어리의 세션에일. 향긋한 홉향에 기분 좋아지는 청량한 맛이라 가볍게 비울 수 있었다. 오전 내내 거리를 헤매며 지친 피로감을 한방에 날려주는 기분이었다.

두 번째 잔도 거뜬히 비워냈다. 한국에서도 가끔 마시는 미국 맥주들이라는 점이 조금 아쉬웠지만 탭 맥주 전문점이라 그런지 맥주 맛은 정말 끝내주게 맛있었다. 장소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세션(Session) 맥주 종류 앞에 세션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도수가 약간 낮아진다. 세션ipa는 일반 ipa보다 도수가 낮다. 하여 낮술 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맥주


@HOPHEAD

세 번째 잔도 비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아직 호텔 체크인도 하지 않은 상태였던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즐거웠던 지하세계와 작별하고 다시 땡볕 아래로 올라왔다.


이번에는 기필코 문명의 편리함을 누리려 MRT 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또 막상 호텔까지 거리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그냥 걷기로 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약간의 취기를 벗 삼아 걷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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