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펍투어 - 2
혼맥의 품격 in Singapore 2
Hospada micro brew
싱가포르의 밤은 두렵지 않았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고 그렇겠지만, 기절도 봐주지 않는다는 태형이 존재한다는 이 엄격한 나라의 밤은 왠지 모르게 더 신뢰가 갔다.
한낮의 불타오르는 태양과 습기 속에서 헤매느라 지치고 지친 나는 저녁 일정으로 계획되어 있던 두 번째 펍 투어를 망설이고 있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몸을 식히고 있자니 다시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어찌나 두렵던지. 침대에 앉았다 일어섰다를 서너 번 반복했을까? 결국 맥주에 대한 의지가 게으름을 이겨내고야 말았다.
두 번째 목적지 HOSPADA라는 브루 펍은 숙소에서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직접 양조한 맥주 두 종류를 선보이고 있다는 이곳은 더위가 가시는 저녁에만 운영하고 있었다. 조금 시원해졌다고는 해도 에어컨을 쏘이고 깊은 마음이 간절했건만 작은 펍에는 저녁 바람을 벗 삼는 야외 테이블 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자리를 잡은 사람들의 모습은 무척 즐거워 보였다.
LET'S GRAB SOME BEER
그야말로 맥주를 커피 삼아 대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신기했다. 커피와 술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오히려 늦은 시간 혼자 나타나 맥주 한 잔을 주문하는 작은 동양 아가씨가 더 신기하게 느껴졌나 보다. 맥주 한 잔을 다 비워내는 동안 계속 느껴졌던 그들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조금 부끄러운 와중에 주문한 나의 첫 번째 맥주는 보헤미안필스너였다. 어차피 두 종류의 맥주만 준비되어 있으니 큰 고민은 필요 없었다. 더운 날씨 탓이었는지 싱가포르에 와서는 알코올 도수 5% 정도의 맥주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아니면 술 먹고 꽐라되서 곤장 맞을 짓을 못 하게 하기 위한 업주의 배려일 수도. 아무튼 맛을 보았다. 필스너라고는 했지만 상당히 가벼운 맛이었다. 보헤미안이라는 이름보다 라이트라고 직설적인 이름을 붙였으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지만 또 그건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 듯도 했다.
그래도 덥고 습한 야외에서 마시기에는 손색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며 맺히는 물방울이 맥주 맛을 완전히 엉망으로 만들 때쯤 다행히 잔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시간은 이르고 나는 나머지 한 종류의 맥주도 맛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이곳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는지 자연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서를 받아들었다. 뒤돌아서는 나에게 잘 가라고 인사하는 옆 테이블 남자는 그 어떤 말이라도 나에게 걸고 싶었던 눈치였지만 나는 빨리 숙소에 들어가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사실 그의 부담스러운 눈초리만 아니었다면 한 잔 더 마시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은 아쉬움이 가득했다. 결국 바로 들어가지 않고 거리를 서성이다 맥도날드를 찾아내고 햄버거 한 개를 주문했다. 물론 타이거 맥주를 구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익숙한 맛의 햄버거 한 입, 맥주 한 모금과 함께 다시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 침대 위에 누웠다. 오늘의 아쉬움을 내일은 만회할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순간 만끽하는 혼맥의 시간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싱가포르의 첫 날밤을 즐겨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