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펍 투어 - 4
혼맥의 품격 in Singapore 4
Reddot
싱가포르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아침. 숙소를 옮기는 날이기도 해서 조금 분주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다행히 새벽같이 눈이 떠지는 바람에 여유로운 오전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짐에서 간단히 운동도 하고 근처 성당에도 다녀왔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체크아웃을 하고 두 번째 숙소인 플러턴 호텔로 향했다. 싱가포르에는 유명한 특급호텔들이 많이 있지만 원래 우체국 건물로 쓰였다던 고풍스러운 건물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어 예약하게 된 곳이다.
체크인 시간까지 몇 시간이 남은 관계로 짐을 맡겨두고 근처 브루어리를 방문하려던 것이 원래 계획. 그런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프런트 데스크 매니저가 나의 예약을 확인하며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거리는 것이 아닌가. 뭐 어쨌거나 예약대행 사이트에서 확정 번호는 받은 상태이니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니저의 대응은 예상 밖이었다.
먼저 예약 건이 호텔 측에 전달되지 않아 원래 예약했던 방은 배정해 줄 수가 없다고 했다. 음 그럼 나는 어떡해야 하지 잠시 고민하려던 찰나. 매니저가 다시 이야기했다. 손님의 잘못은 1도 없으니 불편하게 해 드린 점에 사과드리며 룸을 업그레이드해드리겠단다. 아니 난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았는걸요? 아무튼 그렇게 배정받은 곳은 전혀 예상에도 없었던 복층 스위트룸. 혼자 머물기에 다소 과한감이 없지 않았지만 마다하지 않았다.
아직 방을 보지 않은 관계로 실감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호텔을 나섰다. 브루어리 투어는 계속되어야 했기 때문에. 이번 목적지는 초록색 맥주가 유명하다는 Reddot Brewery.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초행길이라 방향을 잠시 고민하게 되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트라이시클의 호객행위. 그리고 거절하지 못한 나는 그렇게 걸어서 10분 거리를 뙤약볕 아래 20분이나 자전거의 느린 속도롤 감내하며 돌아가야 했다.
운전사는 중간중간 명소도 소개해주고 사진도 찍어주겠다 했지만 당장 그늘막에서 내리면 타 죽기 일보 직전이었으므로 모두 마다하고 Skip Hurryhurry를 외쳤다.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RedDot
싱가포르 명소 중 하나인 보트키(강변 산책로)에 위치한 이곳은 강변 전망을 가진 분위기 좋은 브루 펍이었다. 걸어오지 않았지만 몸은 더 피곤했다. 그래도 목적 달성을 위해 맥주를 주문했다. 일단 필스너 한 잔으로 침체된 분위기부터 진정시켰다. 온탭 리스트를 보니 저명한 맥주 경연대회에서 수상한 맥주들이 대부분이었다. 드디어 엄청난 곳에 왔구나 싶어 기분이 좋아졌다.
점심시간이라 손님이 별로 없어서였는지 직원은 나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시음해보라며 이것저것 테스터도 가져다주었는데 원래 먹으려던 초록색 맥주는 작은 잔에 담겨있는 것만으로도 충격적이 비주얼이었다. 그래도 대표 맥주라고 하니 아니 마셔볼 수 없어 주문해보았다.
맛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평범한 라거 맛이었던 것 같은데 슈렉 피부색 같은 빛깔은 클로렐라를 첨가하여 그렇게 하니 건강에는 좋은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겠다. 내 취향은 분명히 아니었지만 말이다.
바로 옆이 숙소라는 안도감은 대단한 것이다. 이번에는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맥주를 세잔이나 마셨으니 말이다. 기분 좋은 취기 속에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잠깐이었지만 비가 내렸다. 트라이시클로 망친 분위기 따위 까맣게 잊어버린 지 오래. 그리고 체크인 후 맞이한 으리으리한 나의 객실은 완벽 그 이상이었다. 거기에 더해 예전 제주에서의 인연으로 알게 된 싱가포르 친구의 깜짝 방문까지 이날은 가히 나의 싱가포르 여행 르네상스라 부르기 부족함이 없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