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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앓이 Mar 05. 2024

네가 내게 오던 날

당시의 나는 상당히 한심한 처지에 놓여있었다. 준비하던 시험을 포기하고 계획도 없이 방에 누워있거나 컴퓨터게임을 하며 하루를 허비했다. 물론 나름의 핑계도 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모두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다.

엄마는 그런 내가 꽤나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어느 날 갑자기 강아지를 데려오겠다고 하셨다. 내가 너무 외로운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처지라 나는 딱히 좋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냥 동물병원에서 목욕재계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강아지 픽업이 짜증이 났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귀찮은 몸을 이끌고 도착한 동물병원에는 몰티즈 두 마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마리는 크고 한 마리는 아주 작았다. 두 녀석은 친구사이라고 했다.

이제 막 어린 티를 벗은 하얀 몰티즈 두 마리. 병원에서 반려견 키울 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라며 구매를 권했다. 그냥 다 달라고 해서 가져왔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상당히 비싼 가격에 구입을 해왔더라. 

집에 도착하니 큰 녀석이 나의 반려견이 될 아이라고 엄마가 말씀해 주셨다. 작은 녀석은 꽤나 통통 튀게 생긴 겉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자꾸 눈길이 갔다.

하지만 나는 큰 녀석인 앵두의 주인으로 나도 모르게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그날 밤 엄마 친구분이 오셔서 작은 녀석인 꼭지를 데리고 가셨다.

그렇게 안녕이었다.

앵두는 여러 가지로 아픔이 많은 친구였다. 원 주인은 꼭지만 예뻐하고 앵두는 발로 밀어냈다고 했다. 작은 강아지일 때만 키우는 것을 좋아해 강아지가 어느 정도 잘하면 파양을 한다고 했는데 몹쓸 취향이다.

그래서인지 앵두는 늘 눈치를 보았다. 최대한 잘해주고 싶었지만 초반에 본인 똥을 먹는 습관은 상당히 참기 어려웠다. 그래도 사랑으로 감쌌더니 나중에는 고치더라.

그렇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앵두와 나는 제법 주인과 반려견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꼭지가 우리 집에 온다고 하셨다.

엄마 친구분 집에서 꼭지는 퇴근한 남편분 귀에 대고 매일 짖기를 반복했다고, 결국 아저씨의 화는 극에 달했고 꼭지는 두 번째 파양을 당해야 했다.

사실 본인이 의도한 게 아닌가 싶다.

꼭지가 오기로 한 날 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똥냄새. 앵두는 이제 똥을 먹지 않는데 무슨 일일까?

헐떡이는 소리와 함께 내 의자에 작은 발을 올리고 헐떡이고 있는 녀석은 꼭지였다.

꼭지는 엄마친구분의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꼭지는 애초에 나를 집사로 여기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름의 작전을 짰고 실행에 옮겼으며 결국 우리 집 반려견이 되는 데 성공했다.


내 의자에 네가 발을 얹고 나를 쳐다보던 그날의 똥냄새를 나는 잊지 못한다. 

이상하게 너를 땅에 묻는 순간에도 내 방에 들어온 너의 똥냄새가 잠깐 코끝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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