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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앓이 Nov 11. 2019

바람 불어 더 예쁜 제주

PM 16:00 바람 WIND

 제주에는 바람 불어 좋은 순간들이 종종 있으니까요.
친구와 함께 바람 부는 신창리에서 (2015)

                                                                                                        

여기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한껏 꾸민 사진 속 여인은 웃고 있지만, 얼굴 가득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느라 손이 몹시 바빠 보이네요.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고민이 생깁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작가의 포커스는 어디를 향하고 있었을까요? 그녀인지 아니면 그녀 뒤에 서있는 풍력발전기인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곰곰이 기억을 되새겨 봅니다. 그날의 제주는 바람이 무척이나 세게 불었어요. 더군다나 풍력발전기가 서 있다는 것은 그 지역의 바람이 다른 곳 보다 더 세게 분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럼 이제 알 것 같네요. 그날의 친구는 제 모습을 예쁘게 담기 위해 무척 노력했던 것이 분명해요. 결과물은 영 시원찮았지만 말이죠.


바람 부는 표선 (2017)


세찬 제주의 바람. 여행자들이 마주하기에 그리 반가운 존재는 아닙니다. 윈드시어 (Wind shear : 바람의 방향이나 세기가 갑자기 바뀌는 현상) 특보로 항공기가 결항되기도 하죠. 그뿐인가요. 강풍 속에서 운전 중일 떄를 상상해보세요. 마치 '오즈의 마법사'의 한 장면처럼 자동차와 함께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무서워질 때도 있으니까요. 

   
천재지변급 강풍이 아니더라도 사정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해변에서 소금기 가득 머금은 바람을 만났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빨리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생각마저 든답니다. 애써 칠하고 바른 메이크업이 번지는 것은 물론, 머리카락은 금세 산발이 되어 급하게 손으로 정리를 해 보아도 사진 속에는 얼굴 없는 귀신이 한 명 떡 하니 자리하고 있으니까요. 
   
여자, 바람, 돌
   
제주에서 가장 많다는 세 가지에 포함될 만큼 제주의 바람은 그 변덕스러움과 무지막지함으로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여행자들에게 바람은 그리 반가운 존재는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바람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제주에는 바람 불어 좋은 것들도 종종 있으니까요.

                                                                                                         

주체못할 바람이 부는 성읍성


그 첫 번째는 바람에 흔들리는 올레 리본입니다.

올레리본은 제주에서 올레길을 걸어보신 적이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거예요. 이 리본들은 올레꾼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올레길 적재적소에 빠지지 않고 묶여 있답니다. 빨강과 파랑, 두 가지 색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비교적 눈에 잘 띄는 편인데요. 바람 불지 않는 날에는 그저 그런 색 테이프들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바람이 불어 리본이 흩날리는 모습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답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빨강과 파랑, 두 대비되는 강렬한 색상의 리본들은 마치 물과 불의 요정들이 어울려 춤을 추는 것 같아 보이죠. 그 모습을 보면있노라면 기분이 좋아져 없던 힘도 불끈 솟아 오른답니다. 올레꾼들에게는 정말 필요한 순간이죠.제주의 바람이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닭머르 (2019)


그뿐만이 아니에요. 제주의 바람은 여행자들의 답답한 마음에 위로가 되어 준답니다. 특히 오름 정상에서 만나는 바람은 상담자의 역할을 그럴듯하게 해내죠.

   
어느 눈 내리는 겨울, 문도지오름을 홀로 찾은 적이 있어요. 워낙 작은 오름이고 일전에 가본 적이 있던 터라 금방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답니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말이에요. 하지만 막상 도착하니 눈이 녹기 시작해 듬성듬성 흙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문도지 오름 정상 (2018)


그 겨울에는 여러 가지 안 좋은 일들로 고민이 많은 시기였어요. 그래서 멋진 설경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었었나 봐요. 하지만 눈앞의 풍경이 그러하니 아쉬움 가득한 한숨을 깊게 내쉴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어요. 눈도 내리기 시작했고요. 차가운 바람과 함께 흩날리는 눈송이들. 예상치 못한 만남이어서 그런지 멍했던 정신이 번쩍 들었답니다. 하늘에서 이제 그만 고민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호통을 치는 것 같이 느껴졌죠. 


물론 그 한 번의 경험으로 고민이 싹 가신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적어도 답답한 마음이 잠깐은 뻥 뚫린 기분이 들어 좋았답니다. 만약 그 순간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저는 실망감만 가득 안고 오름에서 내려왔을 것 같네요.
   
이리 다시 보니 사뭇 고맙게 느껴지는 제주의 바람입니다. 다시 만날 제주에서는 바람 한 번 제대로 맞아봐야 할 것 같아요.

                                                                                                        

제주에서 바람 불어 좋은 곳

· 문도지오름

겨울 눈 내린 풍경이 아름다워 설경 사진 명소로 이름이 난 오름이에요. 오름 정상까지 오르는 시간은 15분 남짓으로 아주 낮은 동산 같은 곳이랍니다. 방목된 말들이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기 때문에 갑자기 마주칠 수도 있으니 너무 놀라지 마세요. 혼자보다는 여럿이 같이 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 신창풍차해안도로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있다는 것은 그만큼 바람이 강력하다는 의미겠지요. 그래서인지 대체적으로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랍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사진을 남기고 싶을 때는 주저 없이 이곳을 찾으면 됩니다.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도로 중의 하나로 드라이브하기 최고의 장소이기도 하죠.

                                                                                   

· 예래 포구 근처
중문 근처 예쁜 마을 대평리에 위치한 포구에요. 포구 주변으로는 해안 산책길이 만들어져 있는데요. 비교적 한산한 편이라 룰루랄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닐며 바다와 함께 제주의 바람을 느낄 수 있어 좋답니다. 근처에 박수기정, 갯깍주상절리등 제주의 명소들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에요.

                                                                                              

· 우도 가는 도항선
성산항에서 우도로 향하는 뱃길은 10분이 채 되지 않은 짧은 거리에요. 덕분에 갑판에서 경치를 즐기며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답니다. 짧게나마 느껴보는 바닷바람과 함께 멀어지는 일출봉과 가까워지는 우도를 바라보며 제주의 아름다움을 만끽해 보세요.

                                                              

· 가파도
봄이면 청보리의 녹색 물결을 볼 수 있는 섬 가파도. 녹색 물결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바람이 불어야 한답니다. 기분 좋은 제주의 봄바람과 함께 싱그러운 제주를 느껴보고 싶다면 4월 가파도를 꼭 한 번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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