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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May 23. 2023

내 첫 결재판이 버려진 댓가..

잘잘못을 얘기해 줄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1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86년도에 당시 정부투자기관에 취직을 했다. 업무용으로 기계식 두벌식 타자기가 사용되던 시기다. 난 타자기를 사용할 줄을 모른다.


수습이라지만 업무를 받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업무계획서를 작성해서 결재를 받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난감한 일이다. 일단은 업무를 모른다. 지시를 받은 업무가 비계량적이고 정서적인 내용에 대한 추진계획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부서의 분위기와 직원들의 개별적인 업무를 모르는 상태에서 작성은 난감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업무를 가르쳐 주거나 전담당자가 인수인계를 하는 것도 없었다. 단지 그때 화일철 하나를 받았던 기억 밖에 없다.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인수받은 화일철을 열심히 몇 번씩 뒤척였다. 내용이 그게 그거였다. 매년 대동소이하게 작성이 되고 있었다. 간단한 몇 가지 정도만 바뀌는 정도였다. "아! 지난번 내용을 따라서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젠 이 내용을 보면서 문서를 만들어야 한다. 타자를 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글자를 치기는커녕 종이를 타자기에 끼워놓을 줄도 모른다. 완전 생초보다.  

당시 우리 과에는 과의 맏언니 역할을 하는 누님 같은 아줌마 두 분이 있었다. 난 신입이라 그분들 곁에 자리를 배치받았다. 이것저것을 가르쳐주고, 아는 사람이 없어서 점심을 먹으러 갈 때, 차를 마시러 갈 때도 챙겨주곤 했다. 타자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제일 막내직원의 책상 위에 타자기를 놓아두곤 했었다. 내 앞에 타자기가 보이길래 툭툭 중지로 독수리 타법으로 눌러보곤 했다. 하는 모습이 낯설었던지 옆에 있던 직원분이 말을 걸어왔다.


" 타자 칠 줄 알아 마씸?(제주어: 타자 칠 줄 아세요)?"

" 아뇨, 전혀 모르는데요, 첨 만져보는 거우다. (제주어 ; 처음 만져보는 겁니다)..."

" 그런 것 같은데.. 기초만 가르쳐 줄 테니까, 시간 나는 대로 천천히 쳐봅써.."


그렇게 해서 기초를 배우고 더듬더듬 타자를 치기 시작한 게 나의 타이핑 인생의 출발이다.

업무계획서는 첨부물로 10여 페이지를 작성하고 기안문을 만들어서 결재를 올리면 된다고 했다.

사실 동기생들은 모두 다 발령을 받기 전에 연수원 교육을 받고 배치가 됐는데, 우리만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 문서가 뭔지, 결재가 뭔지, 회사 조직이 어떤지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모두 다 더듬이 생활이 될 수밖에 없었다.  

며칠을 걸렸는지 모르겠다. 제시간에. 퇴근도 못하면서 더듬더듬 작업을 완료했다.



출근하자마자 과장님께 결재를 올렸다.

애쓰게 작업을 해서 결재를 올렸는데 과장님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 거기 놔두고 가" 한마디였다.


오전 내내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다. 슬쩍 슬쩍 뒤를 돌아봤으나  내 결재판을 다시 보지도 않는다.

퇴근시간 무렵 과장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옆에 있는 공채선배인 과차석도 같이 불렀다.


"야. 이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옆에 있던 과차석 선배를 향해서 한마디를 하고 결재판은 내 앞 사무실 바닥에 내동댕이 치는 거다. 순간 당황을 했다. 며칠간  새워가면서 작성한 건데.. 잘잘못을 얘기해주지도 않았다. 내 인생 첫 결재문서를 이렇게 사회에 던져졌다. 당시 당황만 할 뿐 내 감정은 없었다. 덩달아 생각도 없어졌다.



"과장님이 결재판 무사 던졌쑤과, 뭐가 잘못된거꽈?"

당시 과차석인 선배에게 조용히 물어봤다.


"아무것도 아니우다. 영 보니까 작성도 잘됬쑤다. 내일 이거 다시 올리면 됩니다.

결재 올리기 전에 자기한테 미리 들어보고 올리지 않았덴 허는 거우다.

다음부터는 도장찍엉 결재 올리기 전에 미리 작성해시난 검토해달랜 과장님한테 들어봐붑써..."

당시 회사의 분위기를 간명하게 알 수 있는 아주 쉽고 난해한 답이었다.

그 말을 듣고 오후에 올린 결재는 아무런 문제 없이 결재가 됐다. 선배의 말이 맞는 듯싶었다.


이 사건은 내가 직장생활을 하는 30여 년 내내  길잡이와 지침서가 되었다.


처음 일을 당했을 때는 황당함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뭐지.." 하는 정도였다.


조금 지나서는 분한 마음이 앞섰다. 자존심이 상했다. 창피하기도 했다."뭐! 이런 경우가 있나.. 일과 절차를 가르쳐 주지도 않았으면서.. "


그래서 일을 더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다.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다. 과장님도 그 일이 있은 후 별다른 조치나 후유증이 없었다.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다. "일련의 길들이기나 통과의례 정도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 결재판이 날아간 대가다.


내 결재판이 날아간 대가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나는 문서를 작성하거나 기획을 할 때 항상 초안을 만들어서 사전 검토를 받았다.  


사실 타자기로 더듬더듬 오랜 시간을 걸려서 문서(기획서)를 만들었는데 나중에 수정사항이 발생한다는 것은 난감한 일이다. 글자 한둘을 수정할 경우는 수정액으로 지워서 그 위에 다시 치면 된다. 하지만 문장이 길이가 조정될 정도로 수정되거나, 문장의 순서가 이동될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같이 컴퓨터로 작성했다가 DEL키로 지우고 수정하는 경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체를 다시 타이핑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사전검토 요청"이라는 과정은 내가 현직에 있을 동안 중요한 절차가 되었다.    

상대방이 있는 일을 함에 있어서 

"서로 간에 말로 오간 내용을 정확히 글로 작성을 해서 사전에 소통을 하고 공감되는 부분을 문서화했다. "

그리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업무를 추진했다. 즉, 사전조율과 소통에 많은 신경을 썼다.


러한 업무처리 방법론은 주위에서 꽤 긍정적인 평가을 받았던 것 같다. 일의 시작단계에서는 다소 시간이 걸리고 번거로울 수 있다. 하지만 서로 간의 내용이나 입장을 분명히 한 상태에서 일을 추진할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더 빨리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내 결재판이 날아간 대가다. 


나중에 안 내용이지만 이 과장님은 회사 내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분이셨다.

여기저기 오래 근무하셨고 감사실에도 근무했던 분이라고 했다.

일을 감사인의 시각에서 보기에, 감사에 지적되지 않게 보기 때문에 번거롭고 까다롭기도 하다고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내가 올리는 결재는 모두 묻지 마 결재를 했다.

2년여 같이 근무를 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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