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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Apr 24. 2023

음식을 향한 어머니의 변신은 기쁨이다

다양한 음식을 즐기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다음주랑 서귀포 오라. 보목리강 자리물회나 먹게, 맛이 든 모양이라라"

휴대전화너머 들리는 94세 노모의 목소리다.

언제부턴가 여름철 자리가 맛이 들 때면 어머니는 종종 이런 전화를 하신다.



놀라운 변화다. 사실 어머니는 날 것을 거의 먹지 않는다. 육고기도 마찬가지이다.

원래 채식위주의 소식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의 범위가 넓지 않다. 기껏해야 나물위주의 무침이나 배추를 넣은 된장국 정도가 일상의 음식이다.

그러기에 90이 넘은 나이까지 별다른 속병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1930년생인 어머니가 30~40대 나이인 60~70년대 제주에서 육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동네 대소사가 있을 때 추렴을 하거나, 제사가 있을 때 고기 몇 점을 맛볼 수 있을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 조차 즐기지 않으시던 분이다.



우리는 매년 어머님 생신날에는 고향에 있는 형제들끼리 모여서 어머니와 식사를 한다. 메뉴는 불변이다. 어머니가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삼계탕이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는 즐기지를 않는데 유독 닭고기만은 가끔 잡수셨다. 그러기에 보양식 차원에서 유일하게 권할 수 있는 것은 삼계탕이라 생일날 단골 식단이 된 지 오랬다.


구순이 넘으신 어느 날이다. 아내와 나는 평상시와 같이 어머니를 뵈러 갔다.

가는 날에는 점심이라도 같이 할까 하고 주로 점심시간을 맞춘다.


"점심이나 먹으러 가게, 어머니 뭐 먹으러 가카?" 항상 그 메뉴인 줄 알면서도 넌지시 의향을 물었다.

"순댓국 먹으러 가카? 요번에 누나하고 요 옆에 순댓국집에 간 먹었는데, 맛이서라.."

띠잉... 청천벽력 같은 어머니의 주문에 나와 아내는 잠시 멍해짐을 느꼈다.


" 뭐, 마씸?"

" 순댓국..."

" 순댓국 드셨다고?  어머니가... 먹어집디가?"

" 기여, 먹어지커라라.. 거기 가게"


참, 세상은 오래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일을 다 본다고 하던데...

아니, 어머니가 순댓국을 먹으러 간다고.. 충격이었다. 반신반의하면서 가보기로 했다.



순댓국 가게는 어머니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이었다. 마치 점심시간이 되기 조금 전이라 곧장 자리를 잡고 을 수 있었다. 메뉴는 오직 하나만 하는 순댓국 전문점이었다. 순댓국에는 순대하고 내장이 섞여 나오는데 치아가 성치 않은 어머니는 순대만 달라고 했다. 이윽고 먹음직스럽게 순댓국 한 그릇이 나왔다. 부추를 넣고 호호 불면서 먹기 시작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순댓국집은 서귀포뿐만이 아니라 도내에서도 유명한 순댓국 집이었다. 점심시간 때는 대기표를 받고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곳이다.

"어머니가 설마 먹겠나" 하고 살짝 눈치를 살피면서 나도 한 수저를 떴다. 제주도 옛날 방식으로 만든 순대가 들어간 듬직하고 푸짐한 순댓국이었다. 나와 아내도 맛있게 먹었다.


어머니는 앞 접시에 음식을 식히면서 부지런히 수저를 움직였다. 순대는 한점 크기가 워낙 크고, 속이 든든하게 꽉차게 들어가 있어서 우리도 2~3점을 먹으면 포만감을 느낄 정도로 알찻다. 다 먹기가 벅찬듯 내 접시에 몇개를 덜어 주신다. 어머니는 장남인 나에게 항상 이러셨다. 환갑이 한참 지난는데도 말이다.

   

"아, 잘 먹었져.." 

어머니는 순댓국 한 그릇을 순삭했다. 아내와 나는 뭐라고 말을 못 하고 서로 보면서 놀란 표정만 지었다.

 

어머니가 입맛이 변한 건가?  아니면 예전부터 먹고 싶었던 건데 우리가 눈치를 못 챈 건가?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그중에는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면서 가게를 나왔다.



또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날 것인 자리물회를 먹는 일이다. 

선친이 물회를 좋아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여름이면 종종 여러 종류의 물회를 해서 아버지께 드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물회를 맛있게 만들기는 하는데 물회를 먹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자라면서 항상 궁금해하던 것중의 하나다.


자리돔, 제주에서는 흔히 자리라고 부르는 특산물이다. 따뜻한 계절 주로 여름날에 잡힌다. 자리는 모슬포와 법환리, 보목리에서 많이 잡히지만 그중에서도 보목리 자리는 유명하다. 구워먹는 것은 강회라 하는데 비교적 크기가 큰 모슬포자리가 유명하다. 참고기이기 때문에 연탄불이나 숯불에 구우면 참 맛이다. 물회는 부드러운 보목리 자리가 최고다. 여름철 시원한 자리물회는 반드시 몇 번은 먹어줘야 하는 음식이다.


" 자리물회 먹으러 가카?  요새 보목리에 자리 많이 남신디 사당 자리회나 해 먹게"

또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하는 대목이다. 원래 날것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가끔 식구가 모일 때면 보목리 포구에서 자리를 사다가 누나집에서 물회와 강회로 파티를 하기도 한다. 자리에는 제피(?)라는 조그만 향신료 같은 게 들어가야 제맛인데 그 제피나무가 누나네 집에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자리물회를 찾아서 보목리 해녀의 집을 다녀왔다.

어머니는 치아가 안 좋아서 날것을 제대로 씹지 못하는데, 물회에 자리는 기계로 얄팍하게 썰어서 나오기 때문에 천천히 씹어서 넘기곤 한다. 그리고 얼큰 시원한 국물이 여운을 남긴다.


이제는 어머니의 메뉴판이 넓어졌다. 삼계탕만을 외치던 시절은 갔다.

"무엇을 먹으러 갈까" 하고 외식 때는 잠시 고민을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엄청 고맙고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음식을 대하는 어머니의 변신은 무죄다. 아니 기쁨이다.

또 다른 변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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