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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Mar 13. 2023

어느 비 오는 날의 단상..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아침에 비가 몇 가닥 주룩주룩 내리더니 오후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내린다. 비는 언제나 우리 마음을 통해서 내리는 것 같다. 비가 오는 날은 왠지 마음이 차분히 가라 않는 느낌이니 말이다. 이런 날 나는 빗소리 같이 뚝뚝 떨어지는 피아노 연주음악을 듣는다.


비가 오면 파전에 막걸리 한잔을 얘기하는 이들이 있다. 예전 농촌에서 술 좋아하시는 우리 아버님네들의 심경이었을 게다. 지금은 전천후 시설인 하우스가 있어서 날씨를 안 가리고 농장과 밭으로 출근을 해야 하지만 예전 하우스가 없던 시절 비가 오는 날 농촌은 휴일이다. 오죽해야 비가 와야 좀 쉴 수 있다고 하겠는가?



나는 지금껏 농촌에 살지도 않았고, 농사를 짓지도 않았다. 퇴직 후 몇 년 전부터 소규모 밭농사를 하고 있다. 밭에 가면 참 할 일이 많다. 계획을 하고 갈 필요가 없다. 아니 오늘 밭에 가서 무슨 일을 하고 와야겠다고 다짐을 하건만 제대로 해놓고 온 적이 손을 꼽을 정도다. 농촌에 계시는 우리 부모님네들이 늘 하던 얘기가 있다.


"아이고, 머리도 복잡허고 시간도 안 가고 허연 밭에 강 검질이나 메당 와사키여"

(*제주어: 머리도 복잡하고 시간도 안가고 하니까, 밭에 가서 잡초(풀)이나 제거하다가 와야 할 듯 하다 )

창고에서 골갱이를 찾아들고 나가던 우리 부모님네들의 푸념 소리다. 그렇게 나가면 점심도 거르고 저녁 무렵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 부모님들은 나타난다.

"아이고 허리 아프다" 대문을 들어서시는 부모님들의 퇴근 인사다.


농촌에서의 하루 일과는 이렇게 반복되고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하니 농촌에서 비 오는 날이 얼마나 기다려지겠는가? 비가 오면 농작물에 물도 공급해 주고, 땅도 적셔 주어서 좋지만, 연일 농사일로 지친 농부에게도 단꿈의 휴가를 준다. 그래서 농부는 비를 내려주는 하느님과 동업을 한다고 얘기를 한다. 요새는 기후변덕이 심한 관계로 하느님은 동업자라기보다는 지분 51%를 가진 절대권력자, 최대주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듬성듬성 농사일을 하는 서툰 농부의 삶이 내 몸에 밴 것 같다. 어제 농사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비가 오는 오늘은 농부의 삶인 파전에 막걸리 생각이 난다. 그러나 그건 언제나 희망사항일 뿐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퇴직 전 하도 술을 많이 마셔서 이제는 내가 마실 술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서재에서 글 몇 자를 끄적이다가 TV도 볼 겸 서재로 나왔다. 소파에 자세를 잡고 TV를 열심히 관람 중인데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요새는 휴대폰으로 오는 전화의  80~90%는 SPAM전화다. 주식안내, 대출안내, 통신사에서 오는 휴대폰, 인터넷 교체 권유.. 거의 미칠 지경이다. 내 휴대폰에 수신차단을 해놓은 번호만 해도 수백 개는 족히 됨직하다. 끈질기게 울린다. 요건 누구길래 나를 애타게 찾는가?


"어 난데.. 뭐햄시냐? " 사적으로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은 동네 동년배 친구의 부름이다.

" , 지금 TV 보고 있는데.. 무사? "

" 점심 안 먹었으면 짬뽕이나 한 그릇 하려고..

" 오늘 일요일인데 동네 짬뽕집이 문을 여나? "

" 요새는 월요일 정도 쉬지, 일요일은 영업한다. 걱정 말고.. 비가 오니까 너네 집으로 데리러 갈게, "

이렇게 짧은 전화 통화는 끝이 났다. 친구는 와이프가 여행을 갔다고 하던데, 혼자 차려 먹기가 그런 모양이다.  


친구는 동네에서 단체 활동을 하다가 만난 사이다. 나이가 동년배라 야자 하면서 말을 편하게 하는 친구이기는 하나 사적으로 둘이 따로 만날 만큼의 관계는 아니었다. 엊그제 들불축제장을 가면서 같이 동행을 했고 오늘이 두 번째 개인적 만남이다. 그러나 지난 2년간 같은 단체 활동을 하면서 두어 번의 국내, 국제여행을 한 사이라 꽤나 익숙하고 친한 분위기이기는 하다.


동네 짬뽕집은 일요일인데 손님이 꽤나 많았다. 점심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가족 얘기, 살아가는 얘기, 동네 얘기, 퇴직 후 살아가는 인생 2막에 대한 얘기도 했다. 지금 이 나이가 되다 보니 숨기고 꺼리고 하는 얘기가 없다. 자식들의 얘기, 와이프 하고 살아가는 얘기까지 모두 다 털어놓게 된다.


점심을 먹고 나왔는데도 비는 계속 솟아 붓는다. 오랜만에 비다운 비가 제대로 내린다. 우산을 안 쓰면 물에 빠진 생쥐가 될 판이다. 가진 것은 시간뿐이고 그냥 헤어지기가 섭섭해서 차 한잔을 하기로 하고 차에 탔는데 마침 친구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미 나를 만나기 전에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기로 약속이 돼있었나 보다.


연대마을 입구에는 마이못이라는 오래된 연못이 있다. 가막샘이라는 용천수가 있어서 마을에 먹을 물을 제공해 주고 남는 물은 흘러서 연못을 이룬다. 연못을 돌아 들어가면 연못과 연대바다를 함께 조망할 수 있는 카페가 있다. 생긴 지는 한 2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처음 가보는 곳이다. 건물을 지으면서 연못의 외곽 부분을 훼손한 것으로 보여서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막상 여기까지 와서 커피를 마신다는 생각을 못해서이기도 하다.


비가 오는 날 바다가 보이는 카페, 2층으로 올라가니 통유리창으로 연대 앞바다의 생생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손님들로 꽤 있었다. 비 오는 날 "파전에 막걸리 한잔"이 아니고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잔"도 꽤 있어 보이는 것 같다. 카페 전체가 통유리창으로 되어 있어서 바다와 연못의 모습이 모두 훤하게 보인다. VR를 보는 듯싶다.



사람들은 단체나 공식석상에서 만날 때와 계급장을 떼놓고 사적으로 만날 때의 느낌은 많이 다르다. 나는 많은 단체 활동을 하지만 활동 외에 또는 활동을 종료하고 개인적으로 만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드문 경우다. 오늘 만남도 드문 경우 중의 하나다. 그러나 특이사항은 있다. 단체 활동기간 중 같이 여행을 했던 동료라는 것이다.


나는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우리 가족도 수많은 여행을 통해서 더 단단해졌다.

 

여행은 사람을 참 들뜨게도 하지만, 순수하게도 만든다. 또 내가 사는 곳을 떠나서 행동을 한다는 자유로움에서인가 모두를 순진하게 하고, 외롭게 만들어 준다. 따라서 같이 여행을 한 동료들 간에는 모르는 곳을 같이 헤쳐왔다는 동료애가 생긴다. 서로에게 순진함과 순수함의 민낯을 보여줬다는 친근감이 생기는 듯하다.


나는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낯섦과 새로움을 찾고 싶어서다.

새로운 장소에 대한 그리움, 낯선 사람에 대한 새로움, 관계에 대한 어색함이 있어서 일게다.


비 오는 날과 여행

둘은 같이 할 수 없다. 비 오는 날 여행을 여러 가지로 불편하니까.

그러나 기분은 비슷할 게다.

궁금증과 설레임, 뭔가를 기다리는 마음, 누군가 훅 치고 들어오면 넘어갈 것 같은 날이다.


난 오늘,

비 오는 날 여행에서 만난 친구들과 바다와 연못이 보이는 창가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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