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바람이 차다. 어제부터 추적추적 내린 겨울비가 아스팔트를 적셨다. 겨울이라는 차가운 이름에 비까지 내려서 만물을 적시니 제대로의 겨울인 것 같다.
방학 때 내려와서 잠시 우리와 함께 지내던 막내가 올라간다. 이제 개학이 얼마 안 남았고, 서울에 친구들하고의 일정이 있어서 올라가야 한단다.
"그렇다."
애들은 어느 정도 사물을 분간하고,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배워주면 그때부터는 외간 사람이다. 집보다는 밖을, 가족보다는 친구를 더 많이 찾게 된다.
우리가 사는 집인 휴심정에서 제주공항까지는 가깝다. 출퇴근시간이나, 가는 길목에 있는 5일장이 열리는 날이 아니면 10~20분 내외면 공항까지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보통은 비행기가 착륙했다고 연락을 받고 픽업을 가도 되는 거리다.
그런데 오늘은 출발이 9시라 아침 출근시간이 겹친다.
"어, 내일 아침은 출근시간이 겹쳐서 좀 서둘어야겠는데!"
어제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 한 얘기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애들이 고향집을 오갈 때는 부득이한 일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는 항상 직접 공항 픽업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런 습관은 15년 전쯤 큰애가 고등학교를 서울로 진학하면서부터 생겼다. 당시에는 미성년자가 혼자서 공항수속을 밟는 게 요즘 같이 일반화되지 않아서 혹시나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해서 같이 나섰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게 몇 년 반복되다 보니 이젠 나의 원칙이 된 것이다. 고향에서 제일 먼저 맞이해 주는 사람, 고향에 마지막까지 남아서 너희들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줄 사람으로 남고 싶은 마음에서다.
나는 공항을 오가는 길에서 애들하고 짧지만 제일 진솔된 얘기들을 많이 한다. 잠깐이나마 서로가 헤어진다는 게 보다 진솔한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아침 교통체증을 생각하면서 조금 이른 출발을 했다. 그러나 아침 출근시간인데도 생각 외로 길을 뻥뻥 뚫렸다. 퇴직 전 내가 출근을 하던 길이어서 교통상황을 잘 안다고 자부를 하는데.. , 이제 10여 년 전이라 옛날 얘기가 된 것인가? 혼자 중얼거리면서 운전을 했다.
"공항에 너무 빨리 도착하겠는데, 1시간 이상이나 남겠어" 뒷좌석에 자리 잡은 아들에게 미안한 듯 던졌다. "괜찮아요, 짐 붙이고 미리 들어가서 뭐 하나 따뜻한 거 마시면서 기다리죠." 항상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녀석의 대답이다.
사실 녀석이 어제 아침부터 원인 모를 복통으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병원 다녀와서 약을 먹은 중이라 걱정이 되던 참이다. 다행히 상태가 많이 회복돼서 아침도 간단하게 먹어서 갈 수 있어서 걱정은 덜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출발 1시간여를 앞두고 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내리고, 악수를 하고, 허그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