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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Jun 05. 2023

자리물회는 멀리 있는 며느리도 오게 한다

"어머니 오늘 넘어가쿠다"

"언제쯤 올 거니?"

"점심시간 때쯤에 도착허쿠다"

"기여 오늘은 날도 조으난 자리도 나실 거여. 자리물회나 먹으래 가게"

(제주어 : 그래, 오늘은 날씨도 좋으니까 자리돔도 잡혔을 거다. 자리물회나 먹으러 가자)


이런저런 일정과 비날씨로 홀로 계신 어머니를 본지가 거의 2 주가 됐다. 오후 일정이 있는 관계로 오전 일찍 출발을 해서 어머니와 점심을 하고 오기로 했다. 어머니한테 간다고 얘기를 못한 상황이라 아침 일찍 전화를 드렸다.


출발해서 가는 길 유심재에 들렸다. 우영팟 한 바퀴를 돌면서 지금 먹을 수 있는 채소들을 챙겼다. 아내는 어머니를 보러 가는 날이면 빈손으로 가는 게 미안하다고 항상 밭에 가서 뭔가를 챙기는 습관이 있다.


어머니는 잠이 오지 않을 때 상추쌈을 먹으니 잠이 잘 오더라고 얘기를 몇 번 한 적이 다. 연세가 94세이니 잠이 잘 오지 않은 것도 하지마는 어째 마음이 편치 않은 건 사실이다.

식사량이 많지 않은 분이 먹으면 얼마를 먹겠는가? 하루에 드시는 게 몇 잎 정도다. 소량이면 가능하기 때문에 누나가 집텃밭에 모종을 심어서 갈 때마다 상추를 어머니한테 가져다 드리고 있다.


" 이젠 상추 몬딱 딴 먹어부난 다시 심어사 헐거랜 해라"

(제주어: 상추를 전부 따서 먹어버리니까, 상추를 다시 심어야 한다고 했다)

아침에 어머니한테 전화할 때 어머니가 하는 말이다.  


상추가 잎이 나오면 연한 게 먹기에 좋다고 초기에 모두 수확을 해버린 모양이다. 이제는 상추가 줄기만이 앙상하게 남아서 새로 심어야 한다면서 상추를 못 본 지가 며칠이 됐다고 한다.

유심재 우영팟에도 여러 가지 쌈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적상추 청상추, 아삭이, 적오크 등 그동안 비를 맞아서 훌쩍 자란 채소들을 여유 있게 수확을 했다. 누나하고 나눠서 먹을 분량을 챙길 요량이다.


" 또 뭐가 있을까, 가시오이나 애호박이 있으면 좋겠는데.." 

이리저리 뒤졌다. 아직 한창 열매를 맺는 중이라 고만 고만 하다. 아직 먹을 때가 아니다.

"아.. 이거.. 가시오이 꽤나 컸는데.. 따도 되겠다. 당신이 와서 보고 올해 첫 수확 마수걸이를 하세요"

이렇게 올해 첫 수확으로 가시오이까지 챙겼다.


"오늘은 일찍 왔네"

"네. 오후에 일이 있어서 빨리 다녀갈라고 일찍 챙겼쑤다"  

"글라 오늘은 날씨도 좋아 시난 보목리에 자리물회나 먹으래 가게" 

평소보다 많이 이르게 도착한 우리를 보자 다소 놀란 듯하다. 앉아서 몇 마디 수인사를 나누자마자 어머니가 하는 말이다.  


자리돔은 제주도내 여러 곳에서 잡히나 가장 유명한 곳은 서귀포 보목리다. 보목리 하면 자리돔을 연관어로 얘기할 정도다. 지금이 한창때라 얼마 전 보목리에서는 자리돔축제를 했다. 자리는 주로 날것으로 먹기에 당일 수확 당일 소비가 원칙이다. 날씨가 좋아야 아침에 출어를 해서 잡아 올 수 있다. 요즘 제주는 연속해서 비날씨다.  자릿배들이 출어를 못하니 싱싱한 자리는 구경을 못한다.  

요즘은 자리가 한참 살이 오르고 알도 배어서 맛이 있을 때라고 한다. 오랜만에 날씨도 좋으니 자릿배도 나갔을 거고 자리도 나왔을 테니까 자리물회를 먹으러 가자는 얘기다.

자리물회를 하는 곳은 시내 곳곳에 많다. 거의 모든 한식당에서는 먹을 수 있다. 우리는 시원하게 탁 트인 바다도 보고 바람도 맞으면서 힐링도 할 겸 자릿배가 들어오는 보목리 포구 해녀의 집의 자리물회를 고집한다.  

점심을 하기에는 다소 이른 11시다. 그래도 지금 가야 여유 있게 자리물회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차로 집에서 포구까지는 넉넉잡아 20분 정도다.


이른 시간임에도 포구는 차량과 사람들로 붐빈다. 차량들 사이로 조그만 검정봉투를 들고 털레털레 걸어오는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자리를 사고 가는 사람들이다. 이미 포구에는 자릿배들이 들어와서 장이 섰다는 얘기다. 자리가 잡히는 여름철에는 자릿배가 들어올 시간쯤이면 인근 서귀포시내에서 자리를 사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시장에서 파는 것보다는 훨씬 저렴하고 방금 잡아온 자리들이기에 싱싱하다.



차량사이를 비집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 창문너머로 탁 트인 바다와 포구,  파란 숲들이 무성한 섶섬이 보인다. 살아있는 한 폭의 수채화다.


여기서는 자리물회를 주문하면 1인분씩 나오는 게 아니고 큰 양푼이 하나에 같이 담아서 나온다. 우리는 4인분을 주문했다. 고등어구이랑 밑반찬이 깔렸다. 조금 기다려서 나온 양푼이 자리물회 4인분이 한 그릇 가득하다. 된장을 풀어놓은 된장물회다.

예전에는 자리를 일일이 손으로 다듬고 썰었다. 이제는 기계로 썰어내기 때문에 먹기 좋게 균일하고 얄팍하게 썰어 나온다. 치아가 약한 어른들이나 입맛이 까다로운 초보도 식감 때문에 못 먹는 경우는 드물다.  

간을 맞추고, 빙초산을 넣는다. 향을 감당할 수 있다면 자리물회의 화룡점정인 제피잎 한 수저를 털어 넣는다. 수저로 한바탕 저으니 양푼이 밑에 숨어있던 자리들이 올라온다.


"야, 자리가 많다. 얄팍하게 잘도 썰었다.." 감탄할 수밖에 없도록 썰어진 자리의 두께다.

 

이젠 개인별로 주어진 국그릇에 자리물회를 떠서 먹으면 된다. 여기에 빙초산과 제피는 개인별로 입맛에 맞게 더 맞추면 된다. 호불호가 강하기 때문이다. 나는 빙초산과 제피를 더 부어 넣어야 맛을 느낀다.

한수저를 먹었을 때 딱 소주 한잔이 생각난다.

"캬.. 쇠주한잔.." 온 바다 내음을 한입에 담는 느낌이다.

내가 양푼이의 반정도는 먹은 것 같다. 어머니는 치아가 아주 안 좋아서 국물위주로만 드셨기 때문이다.

핑계일지도 모른다. 오랫만에 본 아들이 많이 먹도록 배려함일지도....


" 오늘은 자리가 좀 센 듯 허다. 아무 때나 먹을 수 없는 건데 자리만 골랑이라도 먹으라 "  


" 자리가 나는 것 같은데.. 존 걸로 1킬로만 사강 볶앙 먹어야키여"  

(제주어 : 자리가 판매되는 것 같은데, 작은 자리로 1킬로만 사다가 볶아서 먹어야겠다)

어머니가 창밖을 물끄러미 보더니만 자리돔을 사서 가신다고 한다. 까만 봉투에 자리를 사서 가는 사람들을 본 모양이다. 어머니가 원하는 크기 자리는 시장에서는 쉽게 살 수가 없다.

어머니의 최애 음식중 하나인 자리볶음은 어머니의 별미요리다. 존자리(제주어: 작은 자리)를 냄비에서 달달 볶아서 뼈까지 그냥 먹을 수 있게 하는 요리다. 아내도 몇 번 먹고는 너무 맛있어서 자리를 볼 때마다 얘기한다. 직접 해보려고 어머니한테서 레시피를 받아서 몇 번 했는데 모두 실패한 통한의 요리이기도 하다.


이미 포구에 자리를 파는 곳은 성업 중이다. 자리를 사러 사람들이 부지런히 오간다.

 " 존거(제주어: 작은거) 1킬로 줍써 ", "훌근거(제주어: 큰거) 손질된 걸로 1킬로 줍써 ", "얼마 꽈?"

흥정이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정도의 언어만 알면 된다.


뒤에서는 갓 잡아온 듯한 자리를 배에서 부지런히 내리고 있다. 옆에서는 자리를 손질하는 아줌마들의 손놀림이 무림고수급이다. 자리는 그냥 팔기도 하지만 손질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약간의 비용을 받고 손질을 해서 팔기도 한다. 초보주부 젊은 주부들이 반기는 서비스다.


자리는 크기에 따라 3가지로 분류한다. 대자로 가장  큰 것은 자리구이 용이다. 연탄불이나 숯불에 구워 먹으면 참고기라 아주 맛있다. 자리는 돔이다. 모슬포에서 나는 자리들이 크고 뼈가 세서 주로 구이로 먹는다. 중간크기는 자리물회 용이다. 그리고 가장 작은 것은 잘 다듬어서 된장을 찍어서 먹은 강회나, 자리 볶음을 해서 먹는다.


" 이건 키로에 얼마 꽈 " 판매대에서 가장 잘 팔리는 존자리다.

" 7,000원 이우다 "  확실히 가격이 싸다. 시장에서는 거의 10,000원 정도 할 텐데.

" 2킬로만 줍써. 따로 포장 헐 거 예 "

1킬로는 어머니꺼, 1킬로는 우리꺼다. 14,000 원주고 자리돔 2kg를 사고 돌아서는 길이다.

 

" 가서 자리 골랑 다듬어 주커매 변하기 전에 빨리 가졍 넘어가라" 자리는 싱싱함이 생명이다. 여기저기 들리기로 했는데 일정이 급변이다.


아내는 존자리를 잘 다듬어서 초장을 찍고 통채로 먹는 자리강회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러나 날로 먹을 수 있게 다듬는것이 서툴다.  

그건 어머니의 몫이다. 결혼을 해서 얼마 안 된 때인 것 같다. 아내가 자리를 날로 초장을 찍어서 먹는 모습을 어머니가 본 적이 있는 모양이다. 하도 맛있고 탐스럽게 먹어서인지 그게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모양이다. 여름만 되면 그 모습이 선하다고, 그래서 여름 이때만 되면 자리 먹을 것을 구실로 우리를 부른다. 그래도 며느리가 먹을 자리를 손질해 주는 시어머니다.


집에 오자마자 좁은 주방과 발코니에 않아서 고부간에 자리를 다듬으면서 얘기꽃이 피었다.

" 이거 자리를 이렇게 잡앙 비늘 먼저 거스리고, 꼬리하고 지느러미 가위로 잘라야 한다. 그리고 머리를 이렇게 딱 잘라내민 된다, 알아지크냐?" 어머니가 일장 강의를 하신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낭랑하다. 94세 어르신의 목소리가 아니다. 다소 신이 나신 게다.

" 어머니  경 고라도 허젠허민 잘 안되마씸, 어머니는 잘도 쉽게 허는데.."


어머니는 먹음직한 자리를 모두 손질해서 씻고 봉투에 담아 주신다. 우리가 원하는 1kg 분량이 훨씬 넘은 것 같다.


" 자리 손질 다해시낭 변해 불기 전에 가졍 빨리 가라. "

갈길을 재촉하신다. 혹시나 더운 여름 날씨에 변해서 못 먹을까 봐 걱정하는 목소리다.


어머니의 걱정과 사랑으로 다듬어 놓은 자리돔을 가지고 집으로 가는 길이다.

올해는 어머니와 2번이나 자리물회를 먹었다.

내년에도 먹을 수 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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