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1980년대의 추억시리즈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참 서귀포시내를 누비고 다니던 70년대 말~80년대초, 서귀포에서 친구들과의 만남의 장소는 동명백화점 앞이다.
"응, 그래 동명 앞에서 보자"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보통은 헤어지면서 다음 만남을 약속하는게 일상이다.
동명백화점은 서귀포 시내 중심가인 중정로에 1975년 5월 개장된 백화점이다. 서귀포에서 백화점 이름을 달고 영업을 했던 곳은 서귀, OK, 새시대, 삼정백화점에 이은 5번쨰이다. 그러나 규모는 이전의 백화점들하고는 달랐다. 지하 1층에 지상 3층의 건물로 70여개의 점포를 가진, 당시만 해도 근처 유일의 현대식 초고층건물이었다. 이후 부침의 시대를 맞이하기 시작한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귀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였다.
백화점 앞은 만남의 장소, 약속의 장소였다.
당시 동명백화점 정면에서 계단을 올라가면 백화점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상당히 넓은 개방된 공간이 있다. 요새 아파트로 치면 발코니 정도라고 해야 되나, 위로는 지붕이 있는 공간이라 여름철 햇빛을 가릴 수 있다. 비 오거나 추운 날은 몸을 피할 수 있는 착한 공간이라 누구를 만나기 위한 약속장소로는 안성맞춤이다. 친구를 만나서 무엇을 할것인지를 정하지 못할때 일단 만나기 위한 약속장소로는 최고다.
서귀포 원도심의 공간은 여기서 사방으로 뻣어나간다. 여기서 친구들을 만나면 어디로든지 튈 수 있는 요충지다. 여기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다양한 사람들을 만 날 수 있다. 백화점 동쪽으로는 지금의 올레시장 당시에는 서귀포상설시장 겸 매일시장, 목화백화점이 있고, 서쪽에는 제주은행이 있는데 은행 앞에는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남쪽은 지금의 이중섭거리로 내려가는 길, 당시에는 삼일빌딩과 서귀포 관광극장으로 가는 길로 서귀포의 유흥가다. 이렇듯 시내의 중심지다 보니 시장을 다녀오는 어른들도 보이고, 시내를 배회하는 또래 친구들도 보인다. 당시에는 서귀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길을 통과하는 줄만 알았다.
가끔 웃픈 일들도 있다. 친구를 만나려고 집에 전화를 했는데 없는 경우다.
" ㅇㅇ 만나켄 허연 나갔쪄, 나간 진 얼마 안돼서"
(* 제주어: ㅇㅇ 만난다고 해서 나갔다. 나간 지는 얼마 안 되었다) 친구 어머니의 힌트다.
이 시각 늘 만나던 친구는 동명 앞에 가보면 쭈삣 쭈뼛하면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 너, 나가 여기 있는지 어떵 알앙 왔나 "
" 니가 튀어봤자 벼룩이지게 , 내 손바닥 안이라.."
백화점 개관식에 수자폰을 메고,
립싱크만 하고 있던 밴드부 시절..
동명백화점 개관식날은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아마도 1976년으로 기억한다. 내가 진학한 고등학교에 밴드부가 있었다. 평소 한번 해보고 싶었던 분야라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밴드부에 가입했다. 나는 트럼본 악기를 배정 받았다. 그러나 가입한 지 얼마 안 된 시기라 트럼본을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은 아니었다.
동명백화점 오픈행사에 우리 학교 밴드부가 연주를 해달라고 초청을 받았다. 당시 우리 학교 밴드부의 특징은 행렬 제일뒤에 있는 큼지막한 금관악기인 수자폰이라는 악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얼른 보더라도 행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악기다. 수자폰은 좌우에 1명씩 2명이 균형을 잡고 있어야 되는데 선배 1명이 졸업을 해버렸다.
" 요번 동명백화점 개관행사에 우리가 연주를 해줘야 하는데, 수자폰 1명이 비었다. 어떻게 하지 "
당시 밴드부를 지휘하던 선생님이 고민거리였다.
" 신입생 중에 누가 1명이 악기를 메고 폼만 잡고, 입만 대고 있으라고 하면 되잖아요 "
그래서 선택된게 나였다. 나는 행사 내내 무거운 수자폰을 메고, 불지도 못하고 입만대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난 동명백화점을 잊지 못한다.
제주도에 백화점은 없다
명색이 백화점이라고 하지만 관련법상의 규격을 갖춘 백화점은 아니다. 백화점 안에 들어가서 뭐를 구입했던 뚜렷한 기억은 없다. 가장 많이 사용했던 기억이 친구들하고의 약속장소다. 밖에서도 만나기도 했지만 2층에는 동명다방이 있었다. 편하게 다 닐수 있는 곳이었다. 기타를 치면서는 2층인가 3층인지는 확실히 기억은 안 나지만 기타 학원이 있어서 친구와 종종 들렸던 기억도 있다.
분식코너에서 어묵을 먹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분식코너가 백화점 문밖에 있어서 백화점을 안 들어가더라도 이용할 수 있었다. 1층에서 2층을 올라가는 길다란 복도로 개방형 화장실을 가는 방향에 있었다. 밖에서 친구를 기다리면서 출출하거나 겨울날 추울 때는 으레 이 분식코너에 자리를 잡고 않는다. 화장실 다녀오다가도 빈 속을 채웠다. 오픈된 장소라 자리를 잡고 앉아 있노라면 가고 오는 친구들을 모두 만난다. 반나절을 보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2023년.. 내 추억으로부터 40년이 지난 그 자리에는..
엊그제 30여년만에 가본 동명백화점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단지 외형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현대적인 감각을 많이 덧칠했다. 산뜻해 보인다. 넓디넓은 우리들의 약속 장소도 그대로다. 계단도 여전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개방된 공간으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분식점들이 있던 곳은 폐쇄되어 있다. 아마도 다른 상업공간으로 이용하는 것 같다.
단지, 동명백화점 좌우측에 있던 천지약국 자리와 제주은행 건물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세월의 변화를 반영함이다.
건물은 여러 차례 소유권변동을 거쳤다고 한다. 새로운 주인이 나타날 때마다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는데 제대로 추진된 경우는 없다고 한다. 2015년에는 이랜드월드가 동명백화점 건물을 인수하고 지하 2층 지상 13층의 호텔을 신축하려고 허가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실행이 되지는 않은 것 같다. 아직은 사진과 같은 모습이다. 스타벅스와 에잇세컨즈라는 상호가 선명하다. 2,3층 일부는 아직도 비어있다. 임대인을 구하고 있다. 백화점 위치는 그때나 지금이나 원도심 한 가운데지만 상업 공간으로서 수요자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를 잘 모르겠다.
백화점 맞은편에 서서 그때 그 장소를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내 머릿속에는 그때 어느 날인가의 모습들이 마치 영화의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 저 기둥옆은 누구와 자주 만났던 곳이고, 저쪽은 누구가 서 있던 곳, 분식점 입구는 .. "
많은 추억과 사연이 남아 있는 자리다.
자고 나면 없어지고, 부서지는 변화의 시대
40년 전 그때 그 모습을 지켜주는 것만 해도 큰 고마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