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나들이는 항상 기분을 들뜨게 한다. 살 것보다는 먹을 것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길거리 음식부터 허름한 가게에서 고기국수 한 그릇정도는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가 매일올래시장 근처라 그런지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우리부부는 누나와 같이 매일올래시장을 들어섰다. 여유 시간이 있길래 배도 출출하니 요기도 하고 시장 구경도 해보자는 참이다. 지금의 매일올래시장에서 예전 매일시장의 향수를 찾아보기에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예전 모습이 하나도 없다. 가끔 보이는 상호들은 유독 눈에 익숙은 경우도 있다.
" 배도 출출하고, 점심시간도 되고 뭐 하나 먹자 "
" 좋죠, 누나가 잘 다니는데 가지 "
" 응, 그럼 어머니하고 시장 왔을 때 들리는 음식점에 가카? 요새 어머니가 아픈 후로는 못 와 봤는데.."
" 음식은 맛이 있수과? "
" 응, 괜찮아. 가격도 저렴하고 음식도 맛있고.."
남쪽 매일올래시장 입구로 들어섰다. 분위기부터 다르다. " 예전 입구는 비교적 시장 냄새가 안나는 분위기였는데, 입구 우측에는 내가 종종 다니던, 추억이 있는 다방이 있었는데.." 왠지 분위기가 낯설다. 아무리 찾아도 익숙한 상호가 안 보인다. 2층 계단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한의원이라고 보인다. 저기가 송미다방 입군데.. 없어졌네..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했다. 예전 상설시장과 목화백화점 앞길이다.
예전에는 이 길이 가장 상가와 손님이 많은 길이었다. 매일시장의 두 중심축인 상설시장과 목화백화점이 있던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헐리고 없어졌다. 기다란 펜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금 걸어가니 길가 뒤편으로 접어들었다. 후미진 골목에 있는 식당이다. 겉으로 보기와는 다르다. 넓고 여유 있는 공간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들이 여럿이다. 음식은 단순하다. 면종류는 7,000원 밥종류는 6,000원이다.
" 밥이 면류보다 저렴한 곳도 있네.."
" 왜 가격이 이리 싸 "
" 응 여긴 저렴해 "
" 맛도 저렴한 거 아닌가? "
" 아니, 내 입맛에는 좋던데.. " 누나는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라 그러면 그렇다.
우리는 다 같이 콩국수를 주문했다. 콩국수는 잘못하면 콩의 비린내가 나기 때문에 꽝이다.
" 응, 맛있다. 올해 처음 콩국수를 먹었는데 괜찮네.."
몇 해 전 재수를 시작한 아들과 함께 올래 6코스를 걸었던 적이 있다. 올래 6코스는 매일올래시장을 경유한다. 아들과 함께 맛있게 마셨던 2월 추운 날의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이 생각이 났다.
" 아들과 함께 먹었던 그 맛있던 커피를 다시 먹어봐야겠는데.." 내가 선두를 걸으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 그래, 그 커피 맛봅시다 "
그 커피가게는 내가 분명히 기억을 한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교복과 체육복을 항시 구매하던 그때 그 집, 서울복장사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 따아 한잔 주세요.."
" take out 하실 거예요. 그럼 컵까지 포함해서 2,000원입니다. 잔을 돌려주시면 500원을 드립니다. "
매일올래시장은 마치 생태공원같이 구성을 해놓았다. 길 가운데 졸졸졸 물이 흐르는 개울과 그 위에 걸터 앉을 벤치를 만들어놨다. 우리는 그 위에 걸터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오늘은 평일이어서 그런지 시장이 한가하다. 우리 마음도 한가했다.
길 양옆에는 국민학교 친구 부모님들이 하던 가게가 보인다. 그때 그 자리다.
어느새 커피를 다 마셨다. 빈 커피잔을 들고 있는 나를 보더니..
" 쑥스럽지.. 내가 가서 500원 받아올까 " 아내가 커피잔과 내 마음을 쏙 뺏어갔다.
커피잔을 돌려주고 500원을 받았다. 생각지도 않은 상금을 받은 기분이다.
돌아서서 나오는 길, 나는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면서 입구를 향해서 걸었다. 입구에 다다라서 뒤돌아 보니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얼굴을 돌리니 먼 길에서 아내가 오라고 손짓을 한다.
뒤 돌아가보니 줄이 서있는 가게 앞에서 줄을 보태고 서있었다.
"그 옛날 추억의 국화빵 4개 천 원"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 부지런히 국화빵을 굽고 있었다. 앞에는 부인인듯한 분이 앉아서 큰 목소리로 돈을 받으면서 국화빵을 봉투에 담아서 손님에게 건네고 있었다.
국화빵을 굽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사려는 사람은 여럿이다. 당연히 줄을 서야 한다. 국화빵 아저씨는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빵을 굽고 있다. 옆에서 보는 내가 답답할 지경이다. 보아하니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심심풀이로 들리는 코너인 모양이다. 요새 붕어빵 가게는 많지만 국화빵, 풀빵 가게는 보기가 힘들다.
2,000원을 주니 한 봉지다. 길거리를 지키는 노부부의 마음처럼 따뜻했다.
" 먹어봅써, 매일시장에서 산 풀빵이우다 "
집에 와서 누나가 어머니 앞에 불쑥 내밀었다. 못 이기는 척 하나를 가지고 몇 번을 씹더니만...
" 보기에 닮지 않게 맛있다. 너도 하나 먹어보라 " 어머니가 옛 맛을 느끼시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