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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잡는 날에는 굴왓을 간다

1960후반~1970년대 뒤뱅디 아이들의 이야기

by 노고록


여름만 되면 왜 매미들은 왜 어린 나를 부르는지 모르겠다.

"무사 또 매미가 불럼시냐?"

어릴 적 여름철만 되면 매미 잡으러 줄행랑치는 나를 보면서 어머니가 늘 하던 말이다.

매미는 먹구술나무, 모기나무, 당시 가로수였던 플라타너스 나무에 많다.


매미를 잡기 위해서는 우선 매미채를 만들어야 한다. 매미채는 내가 직접 만들었다.

매미채를 만드는 데는 깊이가 30cm 이상 정도되는 통이 큰 투명 비닐봉지가 필요하다.

매미가 들어가면 나오지 않을 정도 깊이의 비닐이다.

다음은 이 비닐봉지의 입구를 고정시킬 수 있게 만들어 줄 철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길면 길수록 좋은 매미채 고정용 대나무가 필요하다. 반드시 대나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매미채를 매달수 있는 기다란 나무나 비슷한 것 만 있으면 된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철사를 둥글게 만들고 비닐봉지 입구 부분을 철사에 감싸서 고정시킨다.

이후 비닐이 달린 철사를 대나무 끝부분에 연결하면 완성이다.

지금은 그물이나 망사리로 된 매미채를 사용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재료는 구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동네가게나 식료품을 담았던 비닐봉지가 나오면 그때야 매미채를 만들게 된다.


다음은 잡은 매미를 담을 용기가 필요하다. 요새는 곤충채집함을 문방구에서 팔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게 없었다. 닥치는 대로 사용했던 것 같다. 비닐봉지나 입구가 큰 링거병을 주로 사용했다.



우리 동네 애들이 매미를 잡으러 다니던 곳은 동홍동에 있는 굴왓이라는 곳이다.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지만, 당시에는 숲이 우거지고 사람이 많이 드나들지 않는 지역, 자연이 남아있는 곳이다. 집에서 가는 길이 꽤 멀지만 일단 매미가 많고, 가는 길에 놀거리가 많고, 부모님의 눈에서 멀어지는 길이라 적격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릴 적부터 집을 나가서 멀리 가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저녁에 집에 와서 욕을 먹더라도 일단 놀 때는 아예 부모님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방법을 택했던 것 같다. 꽤나 현명한 방법이다.

굴왓은 지금의 서귀포학생문화원 북쪽 길을 따라 동쪽으로 쭉 들어간 곳이다.

지금은 개발이 돼서 주택들이 많지만 당시에는 제주대학교 농학부 뒤편으로 조그만 농로길이 하나 있을 뿐 사람들이 얼마 거주하지 않는 동네였다.


집에서 굴왓까지 가기 위해서는 당시 서귀포에 있던 제주대학 수산학부와 농학부를 지나야 한다. 지금의 서귀중앙여중, 서귀포고등학교, 서귀포의료원, 서귀포학생문화원, 서귀포도서관이 있는 7만여 평이 모두 제주대학 농수산학부가 있던 곳이다. 수목이 우거진 거대한 잔디밭이었다.

집에서 출발해서 내가 다니던 서귀중앙국민학교를 지나면 한참 가면 수산학부가 나온다. 그 길은 지금 서귀중앙초등학교별관 뒷길을 따라 서귀포의료원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수산학부가 있었던 지금의 서귀포의료원 근처에 들어서면 여기서부터는 파란 잔디밭이 펼쳐진다. 매미도 잡고, 뺑이도 뽑고, 축구도 할 수 있는 우리들의 놀이터다. 대지가 워낙 넓어서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당시는 운동장만 있는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라 왜 대학교가 이리 큰지를 잘 몰랐다.


당시 수산학부건물은 1971년부터 공사 중이었는데 큰 고모부가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매일 저녁이면 일을 끝내고 작업복에 한일소주(이제는 한라산) 대병(10홉) 하나를 들고 집에 온다. 소주를 좋아하시는 두 분이 마루에 앉아서 밤새 술잔을 기울이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이 선하다. 올 때마다 공사가 어떻게 되고 언제까지 할 거고 일일이 아버지에게 보고하는 것을 들어서 알았다.

당시 수산학부 건물.. 건축가 김중업 작품으로 지금은 중앙여중으로 사용

수산학부를 지나면 농학부가 나온다. 농학부 북쪽 끝에 제주대학교의 경계를 넘은 곳에 굴왓이라는 마을이 나온다. 자료를 보니 굴전동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면사무소가 있을 정도로 큰 마을이었다고 한다. 면사무소가 서귀진이 있는 솔동산으로 이사 가고, 4.3에 마을이 소개되어 주민들이 뿔뿔이 헤어지면서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마을이다.


매미는 대학교의 경계를 따라 심은 나무에서 잡는다. 나무 이름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시 가로수로 꽤 많이 심었는데 매미가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가시덤불이 많다 보니까 매미의 최대 서식처인 모기나무들이 많다. 매미를 잡기에는 최적지이다.


여름날 이곳에는 온통 매미소리가 진동을 한다. 직접 만든 매미채로 매미를 잡고, 잡은 매미는 미리 챙겨간 밀폐된 비닐봉지나 병에 하나둘씩 집어넣었다. 한참 동안 매미를 잡아서 비닐봉지가 가득 찰 때쯤이면 먼저 잡은 매미는 질식해서 벌써 죽어 있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저 매미가 안 보일 때까지 잡거나 가지고 온 용기나 비닐이 찰 때면 집으로 내려간다. 그때 매미 잡기는 한두 마리 잡아서 장난을 하는 게 아니고 보이는 매미는 싹 다 잡는 전멸작전이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몇십 마리씩 잡는다. 딱히 사용처는 없다. 집에 가서 보면 거의 다 기진맥진 죽어서 제대로 우는 매미도 몇 마리 없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는 까만 매미가 대부분이었고 나중에 참매미라고 하는 게 나왔다(당시 우리가 부르는 매미종류다). 이 참매미는 크기가 많이 작고, 매우 높은 하이톤으로 울어서 종종 가지고 놀았다. 매미를 잡다가 놓쳤을 때 매미가 도망가면서 따뜻한 물(오줌이라고 함)을 뿌리면서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재수가 있어서 이 오줌을 맞으면 몸에 말축 같은 뭐가 난다고 놀렸던 기억이 난다.


굴왓마을 동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하천 옆에 큰 재밤나무 몇 그루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미를 잡다 지치면 재밤나무 아래 그늘에서 재밤을 주워 먹던 기억도 있다. 굴왓동네는 사는 사람이 별로 없고 오시록한 동네라 갈 때마다 긴장을 했던 것 같다.


그때 가본 후로 굴왓을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지역을 자주 가기는 한다. 특히 옛 제주대학교 부지에 있는 서귀포의료원 장례식장을 종종 가는데, 너무 많이 변해서 내가 모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굴왓인근은 최근 개발이 되면서 인구가 많아지고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그래서인지 몇 년 전부터 이곳을 관통하는 길, 서홍동 토계촌-동홍동 굴왓- 동홍초등학교- 삼성여고를 잇는 지방도 우회도로 확장을 추진한다고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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