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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Dec 09. 2023

33년 만에 다시 걸어보는 길

결혼 33주년.. 아내와 걷기 시작한 길

남자들이 무슨 기념일을 챙겨서 기억에 남을 이벤트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더욱이 재미없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온 60대 중반인 나에게는 더욱 그렇다.


달력을 보고, 손가락을 펴고 오므렸다를 몇 번 반복해서야 알았다. 내가 결혼한 지 33년이란 걸 말이다.

90년 12월 8일 날 결혼했으니, 어제가 결혼 33주년이었다. 내가 산 게 아니고 살아진 거겠지..

거듭 긴 세월을 옆에서 같이 버텨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동안은 애들이 있다는 핑계, 바쁘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면서 이럭저럭 지냈던 것 같다.  

이젠 애들이 모두 나가고 아내와 단둘이 사는 게 2년 차다. 뭔가는 좀 재미있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무심코 살아온 나날들이 지루하기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내일 뭐 하지?" 내가 전날 저녁 아내에게 무심코 의향을 물었다.   

"글쎄 밖에 나가서 바다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해야지.." 이렇다.

"아니 가보고 싶은 데나, 하고 싶은 일이 없어?" 묵언수행이다. 

이러다 보니 매년 일상 속에 묻어서 지낸 결혼기념일이었던 것 같다.

90년 모래밭이던 황우치해변

'뭘 해야 기억에 남는 날이 되겠나..?"

며칠 전부터 자료들 뒤지고 기억을 되돌리는 작업을 했다.

"우리가 만나서 사귀던 시절 어디를 다녔지? 그게 지금 남아있으면 좋으련만...."

주로 퇴근하면 사무실 앞에 있는 볼링장에서 볼링 한 게임하고 저녁 먹고, 차 마시고 걷던 연예시절이었다.

과거의 흔적을 찾았으나 33년이란 세월을 버텨준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33년 전 우리가 주로 찾았던 곳은 레스토랑이나 커피숍이었다. 지금의 카페와는 성격이 조금 다른 곳이다. 부침과 트렌드를 많이 타는 업종으로서 지금까지 살아남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제주에서는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잔치를  3일간 한다.

결혼식 날 1일, 결혼식 전날이 가문잔칫날 2일, 가문잔치 전날이 돼지(돼지) 잡는 날 3일이다. 돼지를 잡아오고 가마솥에 불을 집히면서 잔치는 시작된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그야말로 동네잔치다. 모여서 같이 도와주고 먹고 즐긴다. 


결혼식 당일날 신랑은 신부를 데리러 집에서 출발을 한다. 

신부집에 도착해서는 함을 주고, 신랑상을 받아서 식사를 하고 신부 친족들과 인사를 한 다음 신부를 데리고 식장으로 간다. 식장 결혼식을 한 다음 신랑집으로 들어가기 전 신랑, 신부와 친구들이 드라이브를 한다. 아마 제주만의 문화인 것 같다. 드라이브란 주변 자연이나 명소에서 신랑, 신부와 친구들이 같이 사진도 찍고 게임도 하고 먹고 마시는 약간의 친목도모와 유흥의 과정이다. 지금같이 결혼식 전에 미리 웨딩촬영을 하는 게 아니고 제주에서는 결혼식 당일날 드라이브를 하는 과정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우리 부부의 친가들은 제주의 정반대 쪽이다. 나는 서귀포 아내는 애월이다. 편도로 족히 1시간이 소요되는 제주에서 치면 남에서 북으로 한라산을 넘어야 하는 최장의 거리다. 실제로 한라산을 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도로가 잘 돼 있어서 우회를 하지만 지도상으로는 한라산을 넘어가는 격이 된다. 결혼식장은 직장이 있는 제주시였다. 그러니 결혼식은 서귀포-애월-제주시-서귀포를 잇는 대장정이었다. 


제주시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서귀포로 가는 길, 우리는 평화로 인근 억새밭에서 잠깐 사진 몇 컷을 찍고, 산방산이 있는 황우치해변으로 드리이브를 갔다. 이곳은 산과 바다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한마디로 절경인 곳이다. 뒤로는 거대한 산방산이 버티고 있고 서쪽으로는 하멜표류지인 화석층인 용머리 해안, 동쪽으로는 저 멀리 서귀포 앞바다까지 보이는 뷰를 가진 탁 트인 곳으로 어느 누구의 방해도 없이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서귀포로나 가볼까?  당신이 집에서 출발해서 우리 집으로 가던 길... 산방산 앞 바닷가 보고....?

"서귀포에서의 첫 데이트지인 소라의 성에서 올레길을 따라 우리가 첫날밤을 보낸 서귀포 KAL 호텔까지..."

며칠간 고민했던 흔적과 약간의 스토리를 입혀서 아침식사 테이블에서 제안을 했다.  

"좋다.. 이내 아내는 웃으면서 OK싸인을 냈다.."  

"휴!! 살았다"


이른 아침부터 단톡소리가 요란하다.

서울에 있는 자녀들이 엄빠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한다는 축하메시지다. 자기네가 세상에 나오게 된 원인행위가 발생한 날이라고 축하인사와 이모티콘이 부지런히 날아온다. 기억해 주니 고마운 일이다.


모두들의 축하를 뒤로하고 우리 부부는 출발을 했다. 가급적 옛날 그 길을 그대로 가보고 싶었다.

지금생각하면 경로가 선명하게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이른 새벽 출발한 길이고, 워낙 긴장하고 정신이 없던 터라 어떻게 하루가 간지를 모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런 날에 음악이 빠지면 안 될 터라, 아침 일찍 오디오 CD도 하나 만들었다.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 많이 들었던 음악 중심으로 가는 차 안에서 들을 수 있는 BGM를 만든 것이다. 아내는 당시 정태춘이나 해바라기가 부르는 조용하고 의미 있는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1990년 12월 황우치해변



1시간여를 달렸다. 33년 전 그날의 모습을 그대로이기를 기대하며 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때 우리가 힘찬 출발을 하면서 기념사진을 남겼던 그런 황우치해변의 잔영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런 기대감은 여지없이 박살 나 버렸다. 아예 다른 곳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기분이다. 

해변은 바닷가, 바위, 절개지, 모래땅이다. 절개지에는 자갈들과 흙, 쓰레기들이 무분별하게 널려있어서 한층 더럽고 어지러워 보인다.

절개면이 보이는 황우치해변과 산방산

자료에 의하면 화순항에 큰 방파제가 들어서면서 태풍과 겨울철에는 강한 파도가 황우치해안으로 몰려와 이곳의 모래들이 하나 둘 사라지더니 현재는 모래가 있었던 곳에 크고 작은 돌멩이들만 뒹굴고 있고 완만했던 경사지는 급경사지로 변하면서 해안에 커다란 절개지가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여기는 해변관광은 물론, 올레 10코스, 산방산 지질트레킹 장소로 활용되고 있는 곳이다. 지금처럼 주변의 개발이 안 되었을 때는 이곳 지형은 완만한 경사지였고 해안가에는 모래가 덮여 있어서 해수욕장으로 활용됐던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이곳에 오프로드 차량의 무단진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젊은이들의 절개지가 완만한 곳을 찾아서 차를 몰고 해안가로 종종 내려오고 있지만, 해안가로 내려온 차는 내려오기는 했으나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해안가 모래밭을 자력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은 견인용 레카를 불러서 견인을 해서 해안가를 탈출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이런 비경이 있는 곳은 오직 소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인간의 욕망으로는 그대로 둘 수가 없는 것인가?  몇 해 전 뉴스에서 말썽을 일으키면서 들어섰다는 대형카페가 해안가의 일부를 매립하고 들어서 있다. 인근은 정리를 해서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고 평일이고 바람이 엄청 부는 날인데도 카페를 찾는 손님들은 북적북적하다. 


씁쓸함과 아쉬움이 밀려온다. 오고생이 모래밭이었던 이곳이 33년이란 세월을 지나면서 파헤쳐지고, 부딪치면서 상처투성이인 모양만 남아있다. 33년이란 세월이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었구나..

이미 휑하니 비어버린 마음에 때마침 강하게 불어닥치는 바람은 33년 전의 추억을 더듬기에는 아쉬운 날씨였다. 

 



  

더 있기에는 날씨가 도와주지를 않는다. 찻머리를 서귀포 방향으로 돌렸다. 아내가 처음 나를 만나러 서귀포 왔을 때 식사하고 걸었던 곳 "소라의 성"을 가보기로 했다. 지금은 건물의 안전성 때문에 폐업을 하고 북카페로 운영을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서귀포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멋있고 유명한 곳이었다. 바로 옆에는 정방폭포와 파라다이스호텔제주( 구, 허니문하우스)가 있다. 소라의 성은 절벽 위에 우뚝 선 건물로 소라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소라의 성으로 불리던 중세 지중해풍의 곡선이 아름다운 건물이다. 89년 6월 어느 날에는 바다가 모두 보이는 발코니에 앉아서 둘이 식사를 했던 기억이 새롭다. 나는 오늘이 아니더라도 서귀포에 오는 날이면 가끔씩은 들른다. 서귀포 사람들의 추억의 장소, 애정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소라의성(좌)과 하니문 하우스


소라의 성을 끼고 비틀비틀 만들어진 오솔길을 따라 걸어 나서면 허니문 하우스가 나온다. 아름다운 만큼이나 세월의 부침과 애환을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이다. 현재는 파라다이스호텔 제주란 명칭으로 소유주가 한국산업은행이다. 권력으로 한때를 주름잡았던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별장으로 유명했고, 민간으로 이전된 후에는 당대 여로의 인기배우였던 장욱제 씨가 운영하는 곳으로도 유명했다. 밖에서 보면 별로 보이는 게 없으나 실제로 들어와 보면 야자수나무와 소나무 숲 사이사이로 곡선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즐비하다. 지금은 세월을 견디다 못해 빛이 바래고 문짝이 널 널 거 린다. 카페는 운영을 하고 오늘도 손님들이 있다. 카페 앞 야외에서 보는 앞바다의 모습은 절경이다. 보목리 앞바다의 섶섬부터 서귀포 앞바다의 문섬, 새섬, 서귀포항, 소정방, 정방폭포까지 모든 게 한눈에 잡힌다. 이곳은 올래 6코스의 정식 구간이다. 


바로옆은 서귀포 KAL 호텔이다. 90년 12월 8일 날 첫밤을 지냈던 곳이다. 816호실 아마 최고급 방이었던 모양이다. 여기 근무하는 아내의 절친이 내준 방이다. 각종 샴페인, 양주 등 각종 서비스를 가득가득 주었다고 하나 워낙 지친 상태이고 늦게 방에 들어온 상태라 지금 남는 기억은 하나도 없다.


제주에서는 결혼식이 끝나면 신랑, 신부와 친구들이 그날밤 신나게 즐기는 문화가 있다. 아마 우리도 저녁을 먹고 아마 서귀포 KAL 나이트클럽에서 마지막 유흥을 즐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랑, 신부는 참석을 해서 몇 번 건배를 하고 참석해 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뒤 다음날 일찍 신혼여행을 가야 하는 핑계로 호텔방으로 들어간다. 우리 부부도 아마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년 제주관광호텔의 상징이었던 21층 제주 KAL 호텔이 문을 닫았고 서귀포 KAL 마저 팔리는 게 아닌가 했는데 아직도 영업을 하는 모양이다. 부지런한 정원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모습은 예전 그대로다. 호텔 앞에 광활하게 펼쳐진 잔디밭과 그 너머로 보이는 서귀포 거문여 앞바다의 모습이 일품이다. 거문여는 우리가 어렸을 적 대나무로 된 참나무 낚싯대를 가지고 콜생이를 낚으러 다니던 곳이다. 우리 부부는 예전 감회를 찾을 수 있을까 하고  다소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호텔 주위를 한 바퀴 걸었다. 33년 전 그날보다는 모든 게 성숙하고 모든 게 자리를 잡은 느낌이다.

서귀포 KAL 호텔


시간과 세월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삼라만상에게 변화를 가져다준다. 

그 변화는 관점에 따라서 상처일 수도 있고, 영광 일수도 있다. 흔적일 수도 있고 멍에일 수도 있다. 

자연이 가져다주는 변화를 견디다 못해 절개지가 되어 버린 황우치 해변

그 아픈 곳을 다시 인간의 욕망으로 채우겠다고 떡하니 들어서 카페

더 이상 남에게 고통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소라의 성

여러 가지 아픔과 고난을 이겨가면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귀포 KAL 호텔

오늘 하루 우리 부부는 자연의 모든 변화를 실감했다. 


벌써 시간은 16시를 가리킨다. 배꼽시계도 작동을 한다.

부지런히 차를 몰아서 제주시로 향했다. 

오늘은 큰애가 준 용돈으로 맛있는 걸 먹고 들어가야겠다. 


가끔씩 돌아보는 나의 흔적들이 때로는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어 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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