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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Dec 05. 2023

나의 직장 퇴출기-첫 번째 이야기

사실 그동안 당신을 맘대로 부릴 수 없어서 불편했다

" 직원은 우리 맘대로 일을 시키려고 채용합니다. 

손위 사람이나 경력이 화려한 사람을 채용하면 좀 불편해 마씸.."  헉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퇴직을 하고 잠시 몸 담았던 회사 마지막 인사자리에서 들었던 말이다. 충격적이었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은 회사의 2인자이자 대표의 부인인 전무라는 사람이다. 2016년 6월에 들었던 말인데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28년 동안 대기업인 통신회사를 다녔다. 

2014년 명예퇴직을 하고 이런저런 마을의 소일거리로 그동안의 부지런하고 고단함을 달래고 있었다.   

2016년 2월 말 경 저녁 늦은 시간이었다.  회사를 같이 다녔던 고등학교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떵 살암시냐?" 제주 사람들이 오랜만에 전화를 하면 맨 처음 던지는 말이다.

"그럭저럭 마을일도 하고, 밭에도 가멍 살암쑤다.."

"그럼 시간 있겠네? "

"네, 백수가 가진 건 시간 아니 꽈.. 무사마씸? "


이렇게 해서 시작된 일이다.

선배왈..

종교활동을 하면서 아는 잘 아는 후배가 있는데 이번에 사업을 확장하면서 사람이 필요한데

그 업무영역이 네가 회사를 다닐 때 했던 분야하고 정확히 일치하니까

가서 도와줄 수 없냐는 것이었다. 


"무료 봉사는 아니지예?"  지나가는 소리도 가볍게 응수를 했다.

"아니 지게.. 아마 직책도 줄 거고, 업무도 그 후배가 모르는 분야라 전권을 줄 거로 약속했져" 

"예, 조금 더 쉴 참이라서 며칠 생각해 보고 연락드리쿠다" 얘기하면서 전화를 마무리할려던 참이었다.

"급하다게.. 내일부터라도 당장 출근해 달랜 허는디. 내일 아침에라도 강 만나라.."

내가 인사 치래를 했을 뿐인데 끈질기게 요구를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일단 가서 만나보겠노라고 언질을 주고 말았다. 


회사는 제주에서 제법 규모가 있게 여행업을 하고 있었고 그 분야에서는 지명도도 있었다. 


" 올해부터 마을 만들기 사업을 하고 싶은데 맡아서 해줄 사람이 필요해 마씸.. 

며칠 전 선배한테 얘기를 했는데, 마침 적임자가 있다길래 추천을 부탁드렸쑤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영업을 하고 필요하면 제안서 작업을 해야될겁니다.    


나에 대한 어떤 사전정보를 갖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대표라는 사람은 다짜고짜 내일부터라도 출근하기를 강권하다시피 했다. 실장이라는 직책과 함께 해당분야 업무의 전권을 주고 전혀 간섭을 하지 않겠노라 약속도 했다.   


대표라는 사람은 나하고 나이가 동갑이었다. 출신학교는 다르지만 고등학교 동창들도 많이 겹쳤다. 대표가 동갑이라, 사실 부담도 되고 업무 스타일도 나하고는 안 맞을 듯싶어서 한참을 망설였다. 

대표는 좁은 방에서 연신 줄담배를 피우면서 연초라 해당사업들에 대한 준비를 많이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고, 아무 걱정 말고 일만 해주시라고, 전혀 간섭을 안 하겠노라고 거듭거듭 다짐을 하면서 부탁을 하기에 침묵의 승낙을 했다.


 


출근 첫날

사무실 파티션이며, 책상과 사무기기등이 대기업을 28년 다니면서 익숙해 있던 나에게는 모두가 낯설음이었다. 낡은 책상과 한쪽이 기울어진 의자들, 부팅을 하면 한참 만에야 볼 수 있는 윈도우 화면..

실장자리라지만 다른 직원들의 책상과 다름이 없이 한 모퉁이에 구석진 자리, 한마디로 멘붕이었다.


나는 현직에 다닐 때 대형고객 컨설팅 업무를 주로 했다. 

얼굴도 일면식 없는 고객들을 찾아다니면서 고객과 한참 동안 얘기를 하고 그들이 필요한 것을 알려드리는 일이다. 고객과의 협상과 제안업무가 주를 이룬다.

마을에서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 주민자치위원과 자생단체장등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한 관심으로 이런저런 일에 많이 관여를 하고 있었다. 벌써 15년이 넘은 기간이었다.  

마을 만들기 사업은 위 2개의 실무경험이 합쳐져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분야다. 이런저런 나의 경험을 잘 아는 선배가 적절하게 추천을 했던 거다. 


3월부터 출근을 해서 거의 매일이다시피 직원을 데리고 현장을 쫓아다녔다.

마을에는 이미 많은 용역사들이 거치고 간 후로 그들과 이미 연고를 맺은 경우도 많았다. 


"우리 마을은 같이 하고 있는 데가 이서 마씸.."

"예, 우리하고 하자는 게 아니고 처음 시작하는 회사라 그냥 인사드리러 다념쑤다"


기존 시장에 파고드는 것은 어렵고 낯선 작업이었다. 

퇴직 전 현직에 있을 때는 어떤 고객을 만나더라도 " ㅇㅇ에서 왔습니다." 하면 ok였다.

그러나 이 일은 그게 아니었다. 회사이름을 얘기하면 "그게 어딘데? 뭐 하는 곳인데 " 로 시작을 했다.

 

문득 예전 현장에서 만난 사람이 했던 얘기가 생각이 났다.

"당신이 지금 누구를 만나러 갔을 때 그 사람들이 당신을 맞아주고 응대해 주는 것은  당신이 아니고 당신 뒤에 있는 회사를 봐서지.. 그냥 회사 이름이 없이 당신 명함만 가지고 가봐라. 누가 본체나 하겠나? "

"그만큼 배경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젊은이들이 난리를 피우는 거고, 좋은 직장을 가지려고 하는 겁니다."라는 취지였다. 

아주 실감을 하는 나날들이었다. 


그래도 평소 해온 대로, 주변 인맥과 아는 지식을 동원해서 일은 이리저리 준비되고 있었다.

오라는데는 없어도 갈데는 많다는 식으로 마을을 수없이 방문했다. 이장도 알고, 주변 경쟁사의 정보도 파악하고, 발주처인 행정의 흐름도 알고 막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마을 만들기 사업은 연초에 행정에서 크고 작은 사업들이 공고가 되고, 중간에는 농림부사업으로 큼지막한 것들이 공모가 나온다. 사업의 한계나 영역을 명확히 정의한 게 없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마을 만들기라고 이름을 붙인 사업 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나오기 때문에 하루도 인터넷 서핑을 멈출 수 없다.


2~3개월이 지날 때쯤 2개 마을에서 처음 시작하는 사업에 계획서를 만들어주고, 견적을 주면서 첫 열매를 딸수 있을 정도로 일은 궤도에 올랐다. 대표라는 사람은 처음 1~2개월 동안 먼 산 보듯이 내 옆을 지날 뿐 내일에 관여를 안했다. 입이 간질간질 해도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다.


3개월여를 넘어설때쯤 부터는 내 주위를 어른거리는 횟수가 많아졌다. 

" 대표님, 무슨 일 있수과, 혹시 할 말이라도..?" 

" 아니우다, 잘됨 신가 허연 마씸.."으로 시작한 게 하루가 지나면 한 마디씩 얘기가 많아지더니만 급기야는 일정을 체크하고 오더를 주시 시작했다. 


"실장님, 오늘 어디 강 누구 만나봅써.." 

"마을에서 ㅇㅇ일을 하고 싶다는데 가능한지 찾아봥 얘기해 줍써" 

처음에는 이렇게 얘기해 놓고 미안했던지 금세 돌아와서는 "실장님 됬쑤다" 하고 돌아서더니만

이내 내 밑에 직원을 불러서는 방금 전에 한 내용을 지시를 하곤 했다. 


한 번이 지나고, 두 번이 쌓이고, 세 번이 넘게 반복이 되면서 나뿐만 아니라 우리 직원과 내일을 자문해 주던 이사까지도 같이 혼란에 빠지고 멘붕이 왔다. 그대로 두었다가 일을 할 수가 없는 지경이 될수도 있었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지" 매일 출근과 동시에 내게 주어지는 숙제였다. 

급기야는 팀회의를 하고 우리 팀의 자문역인 이사님이 총대를 매기로 했다.

대표하고 얘기를 해보겠노라고..

그러나 이사님의 그런 처방은 일시적일 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6월 중순에 접어들 무렵 나는 결심을 하고 면담신청을 했다. 

" 당초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내가 떠날 수밖에 없음"을 알리려고다. 

그러나 면담을 하기로 한 시간 대표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대표의 부인이자 2인자인 전무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대표가 나타나지 않음에 실망을 하고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나는 얘기를 했다.


"처음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서 내가 떠날 수밖에 없다"라고 말이다.

"사실 그동안 당신을 맘대로 부릴 수 없어서 불편했다.."는 전무의 속 마음을 들으면서  

나는 뒤돌아 보지도 않고 사무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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