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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Dec 21. 2023

어머니와 감저 빼떼기

눈이 내리는 겨울날의 단상

아침 6시면 우리 집 거실에 있는 TV는 여지없이 세상소식을 알려준다. 알람이다.

내가 결혼하고 시작한 버릇이니까 벌써 33년을 넘어선다.


요새 며칠은 날씨가 꽤나 사납다.

그동안 이상기후라는 이름 속에 감춰두었던 겨울의 본성을 곱빼기로 보여주는 듯싶다.

이불속 온기를 그대로 간직한 채 거실에 누워있는 채로 밖을 내다봤다.

날이 아직 완전히 밝지는 않은 시간인데 밖은 하얗다.


"눈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던데, 눈이 내렸나? "

 

혼자 중얼거리면서 부시시한 눈으로 발코니 문을 열고 밖을 보니 들판이 하얗다. 밤새 눈이 내린 모양이다.


도로위 신호를 기다리는 차위에는 눈들이 소복이 쌓였다. 

어느님에게 배달을 가는지 자동차들이 조심조심 움직이고 있다.

눈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한다.

휴대폰에는 안전재난문자가 쉬지를 않는다.

행안부와 제주도에서 수시로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그냥 부득이한 경우 아니면 방콕을 하라는 의미가 행간에 보인다.


 제주에서는 고구마를 감저라고 한다.
감저 빼떼기, 주로 그냥 삶아서 먹는다.

이런 날은 어릴 적 어머니가 삶아주던 감저(고구마) 빼떼기가 생각이 난다.

별다른 먹을거리,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 감저 빼떼기는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매년 감저를 수확하는 계절이 되면 우리는 감저 이삭 줍기를 했다. 서귀포는 대부분이 감귤농사를 하기에 감저 농사는 주로 동쪽 외곽지대에서 했다. 어머니와 함께 서너 번의 이삭 줍기를 하면 우리 많은 가족이 겨울 내내 간식거리로는 충분했다.


주워온 감저는 마당에 펼쳐놓고 선별 작업을 한다. 상태와 크기에 따라서 금방 쪄서 먹을 것, 땅을 파고 감저 눌을 만들어서 저장을 할 것, 잘라서 감저 빼떼기를 만들 것으로 분류를 한다. 


일단 상하거나 작은 것들은 우선적으로 가장 빠른 시일내에 삶아서 먹을 것들이다. 저장이 안 되기 때문이다.


중간정도의 크기에 상태가 좋은 것들은 저장을 한다. 먼저 우영팟에 땅을 깊숙이 판다. 그 위에 짚을 깔고 감저를 넣은 다음 짚으로 덮게를 만들어서 덮는다. 일종의 천연 저장고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겨울 내내 썩지 않고 싱싱한 감저를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먹을 수 있다.


이제 남은 것들은 감저 빼떼기를 만들어야 한다. 대부분은 좀 큰 것들이다. 손으로 잘 마를 수 있는 두께로 일일이 얇게 썰어야 한다. 양이 많은 날은 보통일이 아니다. 나중에는 감저를 놓고 돌리면 얇게 썰어지는 반수동 기계가 나오긴 했지만 그걸 만져보는 호사를 누리지는 못했다. 썰어 논 감저는 햇빛에 말려야 한다. 마당에 말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태양과 가까운 지붕 위가 안성맞춤이다. 사다리를 놓고 쓰레트 지붕 위에 얇게 썬 감저를 올려놓고 겹치지 않도록 펼쳐야 한다. 키가 짧아서 안 되는 경우는 기다란 막대기를 사용해서 펼쳐야 한다.

잘 건조한 감저 빼떼기

이 일은 우리 집에서 제일 키가 큰 아버지의 몫이지만 가끔씩은 어머니나 내가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위험성을 항상 상존하는 편, 서툰 일을 하다가 어머니는 사다리에서 미끄러져서 떨어진 적도 있다. 건조하는 일은 꽤나 번거롭고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날씨 상태에 따라서 거둬들이고, 널고, 뒤집고 해야 하니 말이다. 잘못 건조하면 마르지도 않고 까맣게 썩어버리기에 건조하는 과정을 꽤나 신경이 쓰인다. 이때쯤이면 학교 갔다 오면 해야 하는 일중 가장 중요한 일이다. 겨우내 비상식량이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직접 먹을 간식거리이기에 일손을 안 보탤 수가 없었다.


우영팟 감저 눌 속에 저장된 고구마는 날것으로 먹어도 왜 그리 부드럽고 맛이 있었는지, 지금도 한 입만 하고 싶은 맛이다. 감저 빼떼기도 그렇다. 잘 말려서 큰 자루에 넣어서 잘 안보이는 곳에 보관해 둔 빼떼기를 살짝 꺼내서 입에 놓고 씹으면 뽀도독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씹으면 씹을수록 나는 녹말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 몰래 움쳐 먹었던 맛들이다. 누가 보지 않는 나만의 맛이어서 더 그렇게 맛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에는 집에 난방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다.


겨울철 눈이 많이 내린 날은 온 가족이 안방 아랫목에 같이 모여있을 수밖에 없다.

당시에는 집에 난방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다.

유일하게 안방에 온돌이 있어서 부얶 아궁이(굴묵)에서 불을 때면 엉덩이가 뜨거울 정도로 뜨거워진다. 그러기에 어느 집이건 아랫목은 타서 항상 거므스레 하다. 불을 때서 온기가 사라지지 않게 아랫목에는 이불 한 장 정도는 항상 덮고 있었다. 밖에서 놀다가 돌아왔을 때 그 이불속에 언 손을 쏙 집어 놓았을 때의 안락함은 경험해 본 사람이 아니면 모를 거다.

온 가족이 모였을 때는 그 이불속에 발들을 집어놓고 옹기종기 모여서 얘기를 하거나 간식거리를 먹는 것도 추억이다. 별다른 간식거리가 없을 때 겨울철에 먹을 수 있는 감저 빼때기는 최고의 맛이다. 감저 빼떼기를 삶느라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안방도 따뜻하게 된다. 일거양득이다.



우리는 5남 4녀의 대가족이라 뭐든 한솥 가득 만들어야 조금씩이라도 나눠 먹을 수 있다. 어머니가 감저나 뻬떼기를 찐다고 하면 온 형제들이 모두 집으로 귀환을 해서 아랫목에 진을 치고 학수고대한다. 긴 기다림 끝에 어머니가 큰 차롱이나 낭푼이에 한가득 간식거리를 가져오면 이제 어머니 방식대로의 배분이 시작된다.


9형제들이 먹는 것에 대한 취향이 다르고, 속도나 버릇이 다르기에 어머니는 항상 일정량을 골고루 배분을 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먹는 속도에 따라서 많이 먹고, 못 먹고 가 결정되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걸 불합리하게 여기신 것이다. 이후에 자기 몫은 먹든, 다른 형제에게 나눠주든, 다음 날 먹든 자유다. 지금 생각하면 지혜로우신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뻬떼기를 찔 때는 단 맛을 내려고 당원을 사용했다. 지금 같이 단맛을 낼 수 있는 조미료가 많지 않던 시절 단맛을 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감자를 찌면서 물이 자작하고, 여기에 당원이 단맛이 깃들여진 솥밑창의 빼때기는 맛이 최고다. 여기에 살짝 바닥에 붙어서 탄맛이 나는 빼떼기를 먹을 수 있다면 최대의 행운이 된다. 모두의 잔치가 끝나고 부얶에 갔을 때 빼떼기를 삶았던 솥에 붙어 있는 끈끈함을 숟가락으로 긁어먹다가 어머니에게 발각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삶은 빼떼기


사실 어머니도 빼떼기가 먹고 싶었던 게다


1970년대 우리집 안방의 모습이다.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겨울철 눈 내리는 날이면 그리워지고 생각이 난다. 지금 나는 퇴직을 하고 조그만 농지를 구입해서 귀촌생활을 하고 있다. 매년 밭에 심을 농작물은 내 맘대로 고를 수 있다.   

나는 5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 그 시절 감저 빼떼기가 생각이 남인지 매년 고구마를 조금 심는다.

늘 하는 말이다. 내가 먹을 정도의 분량이다.


한 3년 전쯤이다. 밭에서 수확한 감저가 크고 양이 조금 길래 감저 빼떼기를 만들어볼 생각으로 아내에게 얘기를 했다.


"감저 빼떼기를 만들어 볼까?" 아내는 이미 오래전부터 내가 빼떼기에 대한 향수를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말리지는 않았다.  

"어떻게 말리려고?"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건조하는 게 걱정이 된 모양이다.

"촌에 가서 마당에서 말리지 뭐.."  장모님 댁 마당이 있었다.



"이거 뭐고?" 내가 직접 만든 감저 빼떼기를 서귀포 어머니한테 가져다 드렸다. 비닐봉지에 담아서 내미는 걸 무심코 보더니 던지는 첫 말이다.

"감저 빼떼기 마씸? "

"뭐? 어디 시난? "

"나가 어머니 생각나고, 옛날 생각난 만들어 쑤다.."

"집에서 먹쭈.. 무사 가져완.."

"어머니 삶아 드십써.., 경해도 되어?"

사실은 온 가족이 모였을 때 삶아서 먹으면서 옛 추억을 회상하고 싶었는데 그리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제일생각나는 어머니한테 가져다 드렸다.


그 후 얼마만인가 다시 서귀포에 갔다.

"어머니, 저번에 가져다 드린 빼떼기 어떻했쑤꽈..?" 살짝 당황하는 눈치다.

"저번에 나 먹으란 허난 엊그제 삶아 먹어신디.. 무사?"


어머니도 빼떼기가 무척이나 그리웠고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릴때는 어머니의 빼떼기를 내가 먹었는데, 이젠 내의 빼떼기를 어머니가 먹는다. 

기분이 묘하다. 마음 한켠 서글픔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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